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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2013-08-12


누구나 한번쯤은 어딘가에 낙원이 있다고 생각해 봤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 만일 존재한다 하여도 그곳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낙원이라 명명된 희망은 힘들고 지친 일상의 위로다. 만약 정말 낙원을 찾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결코 쉽지 않았을 그 길을 떠난 화가가 여기에 있다.

글|김 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사진제공| 고갱 전시본부

주식중계인 이었던 본업을 뒤로하고 서른 다섯의 나이에 그림에 전념하기 시작한 고갱. 그래서 일까? 그가 남긴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마저도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소장자들의 손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만큼 고갱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어떤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낙원을 그린화가 고갱’ 전은 전세계 30여 미술관에 소장된 고갱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30여 미술관에서 빌려 온 60여 점의 진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을 맞이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고갱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1888,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황색 그리스도’(1889, 올 브라이트녹스 아트 갤러리 소장),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 1898, 보스턴 미술관 소장)가 한 자리에서 동시에 소개되는, 고갱 전시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전시이다.
‘설교 후의 환상과 황색 그리스도’는 인상주의와의 결별을 알리며 종합주의의 탄생을 알리게 된 고갱의 브르타뉴 시기의 작품이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폴리네시아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색채에 주목한 그의 작품은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 있지만 원시적인 색감덕분에 강렬한 아우라를 지닌다.

여유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그림에 전념한 이후 고갱은 가족들과 거의 만나지 못했고 가난과도 싸워야 했다. 하지만 자아가 강했던 고갱은 포기 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재미를 위한 요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작품 속에 여러 가지 모습의 자신을 담았다.

‘황색 그리스도’는 브르탸뉴 지방의 퐁타방에서 그린 그림으로 인근 성당에서 봤던 십자가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지방색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십자가상 아래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성서에 나오는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을 상징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숙연한 분위기로 묘사된 화면 중간에 담장을 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가 바로 고갱이라 해석되곤 하는데, 이는 변화를 바라는 그의 속내가 엿보이는 연출이다. 당시 아직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바라는 변화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후 그린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어두운 표정이지만 다부지게 다문 입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고갱이지만, 예수가 살았던 고난의 삶과 화가로서의 고난의 길을 동일시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원근법에 따른 아카데믹한 그림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갱의 종합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시도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장르를 뛰어 넘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 스스로도 외롭고 두려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그는 스스로에 대한 증명을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고갱은 사후에 더 유명해진 작가이다. 지금은 한 작품의 보험가만 몇 천억을 호가하지만 생전에는 팔리지 않아 그림을 팔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바꾸기도 했다.

“문명은 당신을 메스껍게 만든다”고 말할 정도로 산업문명으로의 변화를 싫어했던 그는 결국 문명의 흔적이 없는 곳, 타히티로 떠난다. 때가 묻어있지 않은 타히티에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한 고갱은 그토록 원하던 문명과 차단된 원시생활과 이국적인 매력에 빠져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지만 생각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불행하게 말년을 맞이한다.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의 폴리네시아 시기를 상징하는 걸작이자, 고갱 예술의 유언적 상징성을 지닌 작품이다. 탄생에서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운명을 단계적으로 서술한 이 작품은 고갱 예술을 철학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고갱의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폭 4미터에 달하는 벽화양식의 이 걸작은 고갱의 작품 중 크기가 가장 큰 작품으로 지난 50년간 단 세 번의 외유만 가능했던 보스턴 미술관의 소장품이다. 3년간의 섭외기간 끝에 극적으로 국내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고갱 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화면 좌측 상단의 타히티의 여신상을 기준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르를 불문하고 작가들은 자신의 역작에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고 싶어한다. 그것이 예술을 하는 이유와 목적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는 기차 안에 담았다. 어두운 화면과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싸움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녹을 것 같지 않았던 눈이 녹을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한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또한 그렇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어두운 색채와 생각이 많은 표정의 사람들 사이 한 켠의 아기와 동물들 그리고 천사들이 이를 말해준다.

그림 양측 상단에는 그림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밝은 노란색을 배경으로 왼편에는 작품명, 오른편에는 자신의 사인을 담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분명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은 고갱의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고갱의 작품은 오는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a href="http://gauguin.kr" target=blank>gauguin.kr)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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