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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빛의 사원(The Temple of Light)

2013-04-08


그림을 본다. 화면 위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작가와 마주한다. 어떤 그림은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고, 어떤 그림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작가는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기 때문이다. 하얀 대지 위가 아닌 차가운 금속 위에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조현익작가의 개인전을 찾았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3년 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필자의 시선을 먼저 잡았던 것은 그림의 대지가 된 차가운 금속판이었다. 몽환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는 작품들의 정체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금속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4월 3일부터 4월 16일까지 관훈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그간 작업해왔던 작품의 연장선을 볼 수 있다. 작업에 주축을 이루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한층 깊이 감이 무르익은 것 같다. 작가는 "여성은 거룩한 빛의 여신이 되기도 하고, 암흑과 공포의 메두사가 되기도 한다. 빛과 어둠, 환희와 공포, 낯섦과 신비로움, 성(聖)과 속(俗),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 가는 빛의 양면적 속성이 그것이다"고 말한다.

빛이 없으면 사물을 분간 할 수 없다. 빛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평면 위에 입체적인 느낌을 그려 낼 수 없다. 그리고 조현익작가의 작품의 재료인 금속은 빛을 통해야 더욱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이번 전시 타이틀을 “빛의 사원”이라고 하였다.

화면에서 수동적으로 갇혀있기만 하던 여인이 두 손을 곱게 모으고 활짝 웃고 있다. 물론 금속판 위에 있던 여인과는 다른 여인이다. 언젠가 여행했던 태국의 새벽사원 노점상에서 본 작은 불상과 여인 조각상이 순간적으로 마음에 와 닿아 구입한 조각상이 오브제가 되어 작품이 되었다.

그에게 여인이란 어떤 의미일까? 작품 속 여인들은 작가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관능적인 여인들은 이성을 유혹한다. 그러나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처럼 늘 완벽하지 않다.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면 차가운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때의 어두움은 그 어떤 시간들 보다 차갑다. 아픈 기억들은 희미해지긴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 속을 맴돈다. 다소 섬뜩했던 것은 눈을 감고 있는 여인 위에 국화꽃들이 흩어져 있는 작품이었다. 마치 죽은 여인이 하늘로 승천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느 순간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여인을 작품을 통해 죽음으로 묘사해서 스스로의 기억에 남은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것 같다.

어쩌면 무서운 복수라고 생각 될 수 도 있다. 함께할 수 없다면 마음속에서 그를 죽이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순간순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삶과 죽음은 한 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인간은 신에게 의지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포의 크기와 숫자는 가늠 할 수가 없다. 그 옛날부터 수많은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신과 사원이 만들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곳 “빛의 사원”에서는 그간 작가에게 애증의 감정을 만들었던 이들에 대한 조금의 용서가 존재했다. 사원에서는 미움과 원망보다는 용서와 기대를 비는 기도들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새로운 공포감은 사실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 분명이 존재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저 먼 우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존재하듯 인간의 세계에는 각자의 우주와 이야기들이 있다. 조현익작가의 세계는 숨기지 않고 욕망을 표현하는 세계 같다.

20대 중반까지는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싶었다. 고통이나 아픔과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 없이 시간이 흐르고 서른즈음이 되니 외면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인가 싶다가도 여전히 좋은 것만 보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투정을 부려보기도 한다. 다소 편협한 시선을 그의 세계로 돌리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해야겠다.


참고자료
관훈갤러리 http://www.kwanhoon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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