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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바비칸 센터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2012-08-10


바실리 칸딘스키의 <원 속의 원들(circles in a circle)> , 나즐로 모홀리-나기의 <에나멜 속 구조 1 (construction in enamel 1)> , 파울 클레의 <쌍둥이 빌딩(doppelturm)> 을 포함한 400점이 넘는 회화, 사진, 가구, 건축, 디자인 작품을 통한 바우하우스(Bauhaus) 13년 역사와 정신의 총체적 조명. 전시의 서문이다. 바우하우스에 관해서라면 건축과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으며,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시가 기획되었는데, 새삼 총체적 조명이라니. 무엇이 새로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작 런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에서 8월 12일 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가, 그리고 무엇보다 바우하우스 자체가 유난히 신선하고 동시대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이런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요하네스 이튼(Johannes Itten, 바우하우스 초기 마에스터)의 한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놀이는 축전이 되고, 축전은 작품이 되며, 작품은 비로소 놀이가 된다.”

글│구영은 영국통신원
기사제공 │퍼블릭아트

1919년 독일의 일차대전 패배 후, 새로운 시대정신과 삶의 방식의 건설에의 요구가 절실하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원 속에 초대 학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지휘 하에 시작된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스(Nazis)의 탄압 속에 해체될 때까지 지속되었던 예술 학교였다. 당시 유럽 순수미술은 일상생활에서 유리되어 부유층을 위한 장식미술로 전락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에 대항해 예술이 일반인의 삶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영국 작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주장하였다. 모리스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회화에서부터 가구, 무대 디자인, 광고에 이르는 모든 장르에 새롭고 총체적인 시도를 하기를 요구하였으며, 이를 통해 학교는 탐험가적 모더니즘 이상의 실현이 되었다. 이 개략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는 실용적이며, 간결하고 이성적인 바우하우스 특유의 디자인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대신, 그 정제된 소위 ‘국적 없는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의 디자인과 건축을 만들어낸 학교는 어떤 곳이었을까? 바비칸 센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까지 디자인의 그늘에 가려져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놀이(play)로서의 바우하우스를 살펴보고 있다. ‘학교’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바우하우스는 아마 우리가 학교라는 단어와 쉽게 연관하여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장 동떨어진 성격을 지닌 공간이었다. 개인의 창의력 실현과 전통과의 단절을 위해 “마에스터(선생)와 학생간의 친밀한 관계”를 중시하였던 바우하우스에서 사교모임, 축제, 파티는 중요한 교육적(?) 활동으로 간주되었다. 창조적 배움은 그들에게 학교 수업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과 여가를 허물고, 우리 삶 자체에 녹아있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질문과 토론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즉,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와 사고방식 해체하기(unlearning)가 바우하우스 교육의 핵심이었던 것이고, 그 중심에 놀이가 있었다.

특히 바우하우스가 지원금 삭감문제로 데사우로 1925년 이전하면서 세운 학교 건물과 그 속에서 그들의 삶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통유리창과 간결한 철골구조의 외관, 작업·사교·삶을 하나로 통합한 내부구조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놀이/연극/play을 위한 강당은 식당과 학생들의 주거공간과 연결되어 학생과 선생이 즉흥적으로 아이디어 구상을 하거나, 파티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반짝이는 금속’과 같은 기이한 주제로 테마파티를 열기도, 자체 밴드를 결성하여 포크송과 재즈를 연주하기도 하였던 바우하우스인들(Bauhausler). 사진 속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그들의 머리스타일, 도무지 언제 입어야 할지 난감하게 만드는 파티의상, 건물 옥상에서 한여름 쨍한 햇살을 맞으며 점심을 즐기며 뒹굴고 있는 그들. 전시장 곳곳을 채운 그들의 재기 발랄한 작품(팽이, 장난감을 포함한)과 일상을 찍은 사진들은 바우하우스의 시끌벅적했던 삶의 소리를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 작업과 놀이의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회화, 건축을 통합하는 총체 예술(Total art)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울 클레의 50살 생일을 맞아, 제자들이 경비행기를 빌려 수제작한 선물을 천사모양으로 포장해 그의 집 위에서 낙하시켰다는 일화. 그리고 이 재치 있는 선물에 대한 회답으로 클레가 제작한 . 이는 놀이가 곧 작업이었었던 그들의 삶의 방증이다.

이제 나치스가 왜 그렇게 바우하우스를 억압하였는지 긴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바비칸 센터의 이번 전시는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넘어 그것이 실현하였던 독특한 철학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창조 교육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는 학교 교육 개혁의 요구와 현대 기술의 또 한 번의 극적인 진보를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 이 속에서 기술은 예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 창조교육은 진정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현재의 교육과 삶이 완벽하다고 믿는 다면 지금까지 읽은 글을 잊어버리길.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질문하길, 그리고 무엇보다 원 없이 뛰어 놀기를 바란다.


글쓴이 구영은은 예술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고려대학교에서 역사교육을 공부 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골드스미스대학(Goldsmiths College)에서 현대미술사와 문화이론이라는 학문의 바다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SUUM Project & Academy 에서 교육 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졸업 후 청년실업의 압박 속에서 제3섹터에서 커리어를 키우고자 문화개발 NGO에서 리서처로 일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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