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7
누구나 새로운 세상을 꿈꿔보곤 했을 것을 것이다.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꿈은 밤하늘의 별 하나 찾아보기 힘든 도시, 하늘 한번 올려다보기 힘든 삶의 무게 속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변하곤 한다. 의사, 검사, 선생님 등등. 그리고 어른이 된 아이들의 꿈은 더 구체적이 되곤 한다. 내년에는 연봉 얼마가 되어야지, 얼마나 큰 집으로 이사 가야지 등등. 그 꿈에서 사회라는 큰 그림은 사라지고 ‘나’만 중심에 덩그러니 남아 있곤 한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회 건설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의 증가 때문일까?
글 | 구영은 영국통신원
기사제공 | 퍼블릭 아트
만약, 그런 우리가 여행 중 우연히 무인도를 발견하였다면? 아직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Nowhereisland(아무데도 없는 섬)’는 알렉스 하틀리(Alex Hartley)가 2004년 북극권 탐사 중 발견한 섬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프로젝트로, 이번 여름 런던에서 열릴 2012올림픽의 문화 프로젝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 7월 축구장 크기만 한 섬이 재현되어 영국 남부 해안을 항해할 예정인데, 그때까지는 런던 북부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과 프로젝트 진행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영국작가 알렉스 하틀리는 사진, 조각, 설치 작업을 통해 대안적 주거공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다양한 태도에 대해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북극과 남미를 촬영한 대형 사진 작품 19점이 관객에게 소개되는데, 단, 이 사진들은 단순한 풍경사진이 아니다. 작품에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하틀리가 다양한 조각과 물질을 사진 위에 혹은 사진 ‘속’에 삽입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 지역의 석산을 촬영한 작품(
<미래는 분명하다(the future is certain)>
)에 작가는 직접 돌과 이끼를 붙이고, 심지어 동굴까지 파 놓았다. 또한 우림 속에 원시적 텐트를 쳐 놓았나 하면(
<여행하는데 지쳤어(i'm tired of travelling)>
),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박스를 덩그러니 들여다 놓기도 했다. 관객은 그의 정교한 기술에 놀랄 뿐 아니라, 정지된 풍경 위에 작가가 입힌 새로운 내러티브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흥분되는 유토피아적 공간의 탄생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그 어떤 공간의 성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세밀한 작품 속에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작가조차도.
전시장 위층으로 올라가면, 눈에 반쯤 덮여 있는 샛노란 일인용 텐트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북극 탐험을 한다?’라는 물음을 가진 채 갤러리 뒤뜰의 연못으로 나가면 부유(浮游)하고 있는 기이한 돔 형태의 집을 만나게 된다. 암탉이 때를 모르고 울어대고 있고, 돔 위에서는 장작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문이 살짝 열린 돔 안을 들여다보니 작가가(살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돔은 하틀리가 1960년대 실험적 작가 커뮤니티 드롭 시티(Drop City)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 재현한 것으로 전시 기간 동안 작가는 이곳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 한창 대안적 삶에 대한 열망이 유럽과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을 때, 작가들은 미국 콜로라도에 모여 실험적 집단 공간을 창출했었고, 하틀리는 이 대안 거주공간을 전혀 다른 문맥 속에서 재현해보고자 하였다.
여행하는데>
미래는>
이렇게 작가는 다양한 형식으로 개척된 거주공간과 미개척의 황무지, 소속감과 소외라는 주제를 탐구해 왔다. 전시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젝트 스페이스에는 Nowhereisland 프로젝트의 발단과 현 진행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작가는 2004년 북극권 탐사 중 노르웨이 령 안에서 무인도를 발견하였고, 이 섬에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추진하고자 섬의 시민을 찾아 ‘직접’ 섬(섬에서 채집한 물건들로 만든 인공섬이 실제 사용)을 끌고 남쪽으로 여행하는 프로젝트를 고안하게 되었다. 올림픽 기간 중 섬은 영국 남부 해안을 항해하며 여러 항구에 정박하여 문화 행사를 가질 예정이며, 육지에서는 대사관 설립도 계획되어 있다. 또한, 온라인상에는 섬의 준비와 진척 상황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시민의 적극적인 소통의 공간도 마련되어 이민, 식량, 주권 등 다양한 주제들이 토론될 예정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평소 개인작업을 많이 하는 그로써 다소 이런 상호 토론과 협업 작업이 부담된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Nowhereisland의 무(無/No), 자기를 지우는 행위는 나와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와 의견의 차이를 실험할 수 있는 창조의 장을 여는 시발점이라 생각한다. 즉, 고정된 나와 공간을 부정함으로써 유동성과 창조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라고, 더 많이 소비하라고 소리치는 사회에서 나를 비우는 행위. 이는 새로운 삶과 사회의 가능성은 단순히 경쟁의 꼭대기에 올라간 나 하나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의 장 속에서 시작되고 생성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Nowhereisland에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가치들, 오해와 소통의 경계, 자유와 소외의 대립 등이 토론되길 바란다. 이 속에서 그려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돔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희망의 연기가 아닐까? 필자의 가슴은 오랜만에 설렘으로 두근거린다.
너무 멀리 있어 참여할 수 없다고 한국의 독자들은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온라인으로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Nowhereisland의 시민이 될 수 있으니. 아무데도 속하지 않으니 어느 장소에도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Nowhereisland 프로젝트: www.http://nowhereisland.org/
글쓴이 구영은은 예술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고려대학교에서 역사교육을 공부 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골드스미스대학(Goldsmiths College)에서 현대미술사와 문화이론이라는 학문의 바다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SUUM Project & Academy 에서 교육 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졸업 후 청년실업의 압박 속에서 제3섹터에서 커리어를 키우고자 문화개발 NGO에서 리서처로 일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