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2
일본 간사이 지방의 교토와 오사카 중간에 위치해 있는 아사히 맥주 오야마자키 빌라 뮤지엄(Asahi Beer Oyamazaki Villa Museum of Art). JR 야마자키역이나 한큐 오야마자키역에서 하차하면 토토로가 운전석에 앉아 있을법한 작은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 오솔길을 오르면 비로소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관. 한국의 웬만한 일본 여행 책자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이 건물은 본디 일본 근대 부유한 사업가 쇼타로 카가(1888-1954)의 사택으로 근대 역사적인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었다. 그가 죽은 뒤 10년 후 건물을 철거하고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아사히 맥주 기업의 도움으로 이곳은 근대 문화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술관으로 변형 및 보존되기로 결정됐고 1996년에 대중에게 공개됐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조숙현 객원기자
오야마자키 빌라 뮤지엄은 일본 근대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구관과 신관으로 나뉜다. 구관은 1912년 착공돼 장장 20년에 걸쳐 준공되었고, 현재는 일본의 유형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당시 건물주인 쇼타로 카가는 그의 취향에 맞게 내부와 외부의 설계를 직접 지시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건물에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서양의 건축 양식이 섞여있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기본 건축 양식은 잉글랜드 튜더 고딕 스타일을 따랐으되 맨틀피스(mantlepiece: 서양식 건축에서 거실이나 홀 벽에 만든 난로를 장식하는 부분)는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나무를 이용해 정통 일본의 감각 또한 스며있다. 또한 화장실 내부나 차를 마실 수 있는 테라스가 딸린 카페 등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는 것이 구관의 특징이다. 현재까지 구관의 내부는 쇼타로 카가가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곳곳에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컬렉션이 또한 범상치 않다.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전통 민예 작품들은 대부분 아사히 맥주의 창립자 타메사부로 야마모토의 유족들이 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기증한 것들이다. 그 자신이 열렬한 일본 민예 작품의 패트론이었던 야마모토의 소장품 중에는 도예가 간지로 가와이, 쇼지 하마다의 도자를 비롯해 섬유공예가 케이스케 세리자와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도 드가, 르누아르, 모네,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회화와 후안 미로, 자코메티, 헨리 무어 등의 조각 작품이 있는데 전시 중이라기보다는 건물 내부 곳곳에 자연스럽게 비치되어 있어 소장품을 억지로 내세운다든가 자랑한다는 기색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관람객은 마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열성적인 예술 애호가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근대의 고즈넉한 정취가 살아있는 구관과는 달리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신관은 최첨단의 양식을 표방해 구관과 대비된다. 안도 다다오는 신관을 ‘Underground Jewery Box’라고 자칭하는데 그 이유는 신관의 절반이 지하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원통형으로 설계된 신관은 구름다리 같은 통로를 통해 구관과 연결되어 있고, 구관과 신관의 조화와 건물 전반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경관의 조화를 강조한 안도 다다오의 설계 원칙에 의해 외관은 정원 사이에 숨어있어서 명확한 식별이 어렵다. 사실 이 미술관의 공간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미술관 외부에 딸린 정원인데,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형체를 여과 없이 반영할뿐더러 일본 전통 정원의 아기자기하고 의뭉스러운 조경과 서양식 정원의 넉넉한 산책로가 혼합되어 있는 미술관의 소중한 유산이다. 신관의 지하에는 컬렉션의 일부인 모네의 ‘수련‘이 상설 전시되고 있는데, 이 내부는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과 매우 흡사하다. 그 이유는 두 미술관 모두 건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연 채광에 조명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자연광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모네의 주문에 충실한 것이다.
현재 구관과 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Kansai Chair Now‘라는 전시로, 간사이 지방의 아티스트들의 의자 54개를 전시하고 있다. 원목 의자부터 소파, 아동용 의자 등 독특하고 예술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일본 민예 시대의 전설적인 래커 디자이너 타츠아키 쿠로다의 의자도 볼 수 있다. 전시 중인 의자에 관객이 마음껏 앉아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인데 기자가 방문한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방문해 조심스럽게 돌아가며 의자에 앉아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부디 이 의뭉스럽고 뜻 깊은 미술관이 대중들에게 너무 널리 알려져 비밀스러운 방문의 기쁨을 공유하는 일이 많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