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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누구냐, 넌

2011-01-12


핏기없는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 파란 눈에 금발을 한 소녀는 분명 동양인이다. 말도 안 되는 비율, 과하게 꾸며지고 포장된 인형처럼 소녀는 가만히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우리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눈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도로시 엠 윤의 작품 ‘Won Gang’의 이미지다. 마치 냉동된 것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진에는 아주 약간의 컬러톤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금발, 푸른 눈, 핑크 리본을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의. 게다가 약간의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담벼락을 배경으로 어깨를 드러내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퍼에 기대어 누워있는 여인, 해골을 들고 있는 여인,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꼽은 부조화스러운 깃털 등이 그것이다. 동과 서의 부조합인가, 현실과 비현실의 조합인가.


도로시 엠 윤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왜곡된 정체성을 드러낸다. 바로크시대 말기에 등장한 실내, 패션 양식인 로코코는 고전 미학의 원칙을 파괴하고 유기적인 장식 선을 특징으로 하는데 실내장식에 등장하는 조가비나 코키유(소라)모양을 지칭하기도 해 여성과 연관된 경박한 말로 쓰이기도 했다. ‘Rococo No. 33B’ 시리즈는 작가가 젊은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불교의 33명의 보살을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보살이라고 하기에 사진 속 여인들은 묘하게 뇌세적이다. 로코코가 전달하는 양식과 그 언어에 깃든 여러 의미, 동양의 유교적 가치를 동시에 전달하는 작품은 세속적이지만 비세속적이다. 위에서 말한 부조화가 바로 이것이다. 작품 속 여인들은 보살이 지녀야 할 후덕함 대신 요염함과 패셔너블함을 갖췄다. 비현실적인 화면의 이미지는 이 세상에 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보살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작품에서는 인류의 세속적 욕구와 도덕적 욕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동양에선 볼 수 없는 이러한 서구의 전통에 동양 사상의 내세적 존재인 보살 이미지를 가미해 현대적 동양여성으로 표현한다. 과거와 전통의 형식들을 통해 그가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의 사상이나 바람, 두려움과 같은 현재의 정서이다. 사진 속 여인들은 지금, 이 시대에 팽배해있는 여성에 대한 사고와 여성에 대한 기대 등 왜곡된 시선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직접 모델을 선정하고 모든 풍경과 소품을 제작, 설치할 뿐 아니라 인물의 포즈까지 철저하게 연출하며 전문사진작가 및 스텝과의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 도로시 엠 윤은 1976년 부산 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조소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골드스미스미술대학에서 MFA를 마쳤다.
도로시 엠 윤 ‘Rococo No. 33B’전, 16번지, 1월 12일부터 2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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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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