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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한여름의 꿈

월간사진 | 2015-06-29


카린느 라발(Karine Laval)의 수영장 시리즈에는 꿈결같이 나른한 한여름의 오후가 잔잔히 물결치고 있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카린느 라발(Karine Laval)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여름날, 잔잔히 흘러가는 수영장 물결을 침대 삼아, 시공간이 불분명한 공간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기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오묘한 작업을 완성한 작가는 누구일까.

사진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외가가 위치한 파리 소도시 비에브르(Bievres)는 프랑스 최초의 사진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할머니 댁에 갈 때 마다 그 곳에 들러 빈티지 카메라와 사진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사진의 매력에 눈떴다. 할머니 집에 있는 다게레오타입을 포함한 19세기 빈티지 프린트 사진들을 보며 옛날이야기를 듣던 일, 11살때 할아버지가 물려 주신 코닥 카메라로 주변사람들과 풍경을 직접 촬영 했던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는 문학, 철학, 그리고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카메라를 들고 뉴욕 거리를 탐험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진가와 아티스트들과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사진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 2001년 9월 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일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자신의 열정과 직관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직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The Pool’과 ‘Poolscapes’ 시리즈 모두 수영장이 배경이다. 어떤 연관성이 있나?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유럽을 여행하며 공공 야외 수영장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작업이 ‘The Pool’ 시리즈다. 몇 해 뒤인 2009년 여름, 수영장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다 수면 위에서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나는 물결에 마음을 빼앗겼다. 태양과 구름이 풀장 위에서 넘실거리다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았고, 그 순간 ‘Poolscapes’ 시리즈의 영감을 받았다.

두 작업의 차이점은?
유럽 공공 수영장에서 촬영한 ‘The Pool’ 시리즈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 촬영한 ‘Poolscapes’는 미국의 개인수영장이 대상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일상의 반영이자, 마치 꿈속 장면을 재현해 놓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물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물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보통 물을 심플하고 평범한 물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복잡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나에게 물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심리전 안정을 갖게 하는 명상적 도구이자, 유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수영장은 당신에게 어떤 공간인가?
수영장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다. 주목할 점은 그 곳에는 언제나 자연 환경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맞닿은 곳에 존재하는 긴장감이 묘한 충돌을 일으킨다. 최근 작업 중인 ‘Heterotopia’ 시리즈는 고여 있는 물이 품고 있는 정신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는 프로젝트다. 누군가에게 물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 않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The Great Gatsby’, 존 치버의 단편 소설 ‘The Swimmer’ 등의 문학 작품에서 물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 중 선호하는 작업 방식은?
1960년대에 제작된 롤라이플렉스가 내 작업의 중심에 있다. 우리의 눈은 보통 파노라마 형식 즉 수평의 직사각형 형태로 세상을 감지한다. 롤라이플렉스 카메라 특유의 정사각 포맷은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뚜렷한 차별점이 있다. 뷰파인더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촬영 방식 덕분에 피사체가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점도 있어 좀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The Pool’, ‘poolscapes’, ‘Altered States’ 시리즈 모두 롤라이플렉스로 작업했다. 최근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 모바일 카메라를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는 10년 전 상파울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1960년대 올림푸스 펜으로 하고 있다.

‘poolscapes’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kney)의 수영장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솔직히 말해 수영장 시리즈 작업 당시,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 전혀 몰랐다. 내 작업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의 페인팅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고, 나 역시 데이비드 호크니의 실험적인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사실, ‘Poolscapes’ 시리즈를 진행할 당시에는 이탈리안 르네상스 회화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최근 작업은 추상작업이 주를 이룬다. 어떤 매력이 있나?
실제의 색상과 이미지를 왜곡시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구상과 추상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에 대한 탐구가 바탕이 된다. 구체화 되지 않은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감각을 일깨워 환영을 창조하는 것이 사진의 능력이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소통하는 대부분의 것은 유동적이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를 둘러싼 삶에 혼돈을 일으킨다. 최근 진행한 여러 작업 역시 그런 이슈들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슈타이들에서 사진집을 발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을 통해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작가는 사진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잠재된 창의성이 도출되기도 하고, 독자는 편집된 이미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 운 좋게도 몇 해 전 슈타이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가 흔쾌히 사진집 발행 결정을 내려주어 그 결과물이 곧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다. 내 작품이 꼭 갤러리에 걸린 상태에서 관람객과 호흡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젝션, 실감 미디어 심지어 페이스북 등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방식을 좋아한다.

평소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를 꼽는다면?
수영장 시리즈는 빛에 대한 연구가 무척 중요했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댄 플래빈(Dan Flavin), 카를로 크루스디에스(Carlos Cruz-Diez), 빌 비올라(Bill Viola), 울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등의 작가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에는 존 케이지 (John Cage),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마그리트(Magritte), 피터 도이그(Peter Doig)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물론 사진가도 빼놓을 수 없다. 리즈 드샨느(Liz Deschenes), 토마스 루프(Thomas Ruff), 토마스 디맨드(Thomas Demand) 등이 그들이다.

Karine Laval
프랑스 파리 ‘La Sorbonne’에서 Diploma in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를 미국, ‘Cooper Union School of Art’에서 Photography and graphic design를 수학했다. 2003년 ‘The Pool’(Cappellini, Paris)를 시작으로 2013년 ‘Altered States’(Bonni Benrubi Gallery, New York)에 이르기까지 총 20여 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가졌다. ‘Citibank Collection’, ‘Sir Elton John hotography Collection’, ‘The Dow Jones’외 다수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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