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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연평도에 나타난 철수와 영희

2012-05-30


“사진은 폭력적이에요. 연평도 같은 곳에선 더 그렇죠. 현실을 알아야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고 실체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우리나라 교과서의 대표적인 주인공인 ‘철수’와 ‘영희’가 커다란 얼굴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연출사진을 찍어온 오석근(34)은 세상이 연말연시 기분에 들떠 있을 때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고 연평도로 향했다. 연평도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연평초등학교의 졸업앨범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연평초등학교의 올해 졸업생은 8명. 그는 하루에 한명씩 8일간 졸업생의 일상을 따라다녔다.

글│이종화 기자
기사제공│월간사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서해프로젝트 시작

오석근은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서해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등 서해5도를 찾아 철수와 영희가 등장하는 ‘교과서’ 사진시리즈를 비롯해 오브제 작업과 슬라이드 영상작업까지 영역을 넓혔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라 언론의 관심이 잦아들 때였다.

처음 섬을 찾았을 때 주민들이 보내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는 충분히 예상했지만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섬의 아이들이었다. 덩치가 크고 인상을 쓰면 꽤 위압적으로 보이는 그에게 아이들은 다짜고짜 다가와 욕설과 주먹을 날리고 돈을 달라며 쫓아다녔다. 처음 보는 외지인에게 가차없이 위협을 가하는 아이들, 외지인을 경계하면서도 보상은 언제 이뤄지는지 조심스럽게 바깥소식을 물어오던 주민들, 포격 당시의 혼란과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민들, 반공전시물로 보존돼 파괴현장을 마주보고 살아야 해 지금도 악몽을 꾼다는 노부부 등. 오석근은 아이들의 낯선 반응이 주민들에게 내재된 강박과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다. 분단으로 인해 강요받는 이데올로기, 그럼에도 가치가 부재하고 분노가 대물림되는 한국사회의 심리와 현상은 서해5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가치들에 끌려오듯 살아왔다. 하지만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부재했으며 지금도 풀어내지 못한 많은 질문들에 쌓여있다.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외부에서 위에서 강요되는 열강과 남북의 가치들이 강압적으로 파고들어왔다. 국가에서 개인으로 전이되는 강박의 가치는 민족의 비극을 동반하며 증오를 증식시키고 그 속에서 개인의 인간성을 매몰시켜왔다. 이렇게 국가의 트라우마가 개인의 트라우마로 전이되는 순간, 실재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개인만이 아닌 역사와 무관한 듯 보이는 후세들의 내면에까지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해5도 짓누르는 강요된 이데올로기와 분노

하루에 한명씩 졸업생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연평초등학교의 이색적인 졸업앨범은 섬 아이들의 심리와 정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였다. 앨범에 다 담기지 못한 많은 사진과 이야기들은 서해프로젝트에 소개된다. 이밖에 오석근은 기존의 철수와 영희를 등장시킨 연출사진, 숨겨진 긴장감이 교차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인 ‘파편’, 오브제에 글씨를 적은 설치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서해5도를 억누르는 실체에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실체, 현실을 보기 위해 기존에 해왔던 방법론을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찰나를 인지하는 순간, 깊게 내재된 수많은 강박과 트라우마는 해소될 수 있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들을 채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연출사진에서 보여지는 방식이 더욱 다양해졌다.작가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구체화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어떤 사실을 주장할 때는 외피를 감싸고 있는 역사, 심리, 패러다임 그리고 상반된 입장까지 모두 보았을 때 더 풍부해지고 구체화된다. 철수와 영희가 등장하는 ‘교과서’ 작업은 욕망이 통제되는 현실을 얘기한다면 다음 작업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한국 교육의 더 구체화되고 파생되는 현상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이번 서해프로젝트는 국가주의, 욕망의 강요, 심리적인 것까지 다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어떤 큰 덩어리에 접근하는 느낌을 받았다. 덩어리는 실체에 가깝다.

서해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가 되면서 구상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말로만 듣던 서해5도를 가서 보고 느끼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작업에 반영되었다. 군대에 있을 때 안보교육을 받았고 군인으로 동티모르 분쟁지역을 경험하고 왔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 하는 이유를, 총을 맞아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죄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 죄 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모순된 상황과 폭력적인 행위는 오래 전부터 되풀이 되고, 교육을 통해 분노가 되물림 된다. 교과서 306p와 307p는 이런 고민 아래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서해5도 주민들의 많은 생각과 심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생각을 갖게 한 이야기는 포격현장을 남겨 역사를 마주하게 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과 그 옆에서 공포에 떨며 살아가야 하는 주민의 상황 중 우리는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 였다. 역사와 개인의 고통 중 우리는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교과서 325p 사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한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 우리의 보금자리와 가정이 얼마나 쉽게 붕괴되고 사라져버리는지에 관한 무력함이 교과서 324p 사진이다.

교육3부작 마지막과 인천 아카이브 작업도 구상

2012년에도 서해프로젝트는 계속되나? 2012년 계획은? 포격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겠지만 누구도 실체를 보지 못했고 여론의 관심도 떠나갔다. 우리 속에 내재된 강박과 트라우마는 그 순간을 인식함으로써 해소하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할 수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 기간을 1년 더 연장 신청했다. 올해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서해프로젝트를 계속해 나갔으면 한다. 그리고 2012년에는 ‘철수와 영희’,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이은 세번째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교육3부작 중 마지막이 될 이 작업은 가족문제와 교육을 결부시키는 작업이다. 제작비가 너무 들어 구상만 해오다 올해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현대와 근대가 교차하는 인천에 관한 아카이브성 작업도 계획하는 중이다.

30대 작가로서 작업 현실은 어떤가? 따로 돈을 벌어 작업비를 대고 생활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현실이니 극복하는 수밖에는 없다. 반면 지금쯤 되니 무엇을 찍을지 시각이 생기고, 무엇을 빼고 넣어 어떻게 표현할지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상업적으로 많이 팔리는 작가는 아니다. 누구랑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를 필요 없이 내 흐름과 목표에 맞게 작업을 해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요즘은 해야 할 작업들이 정말 눈에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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