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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미술품의 사진 사용, 차용인가 도용인가?

2011-10-24


최근 한국 1세대 사진가인 고 임응식(1912~2001)의 장남이자 현대사진연구소장인 임범택(73)씨가 선친의 사진이 두 명 화가의 작품에 무단으로 사용되어 사진저작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해 주목받고 있다. 고 임응식이 1946년 꽃바구니를 이고 가는 3명의 여성을 촬영한 사진인 ‘아침’은 서양화가 김정운의 ‘A Flower Girl’(2006)에, 1950년에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찍은 사진인 ‘전쟁고아’는 류영도의 ‘비극’(2010)이라는 작품에 사용되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원본의 사진을 그대로 묘사한 두 작품은 여러 번의 개인전과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전 등 대형전시에 출품되기도 했다.

글 | 월간사진 김보령 기자


세세한 부분까지 그대로 묘사한 도용 vs 고의적 도용 아닌 차용, 법에 위배 안돼

임범택씨는 “지난 해 10월, 두 작가가 동의를 구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아버지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6개월 간 몇 차례 전화와 이메일로 공식적인 사과와 합의를 요구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이 없어 언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70~90년대에도 비슷한 사례를 겪고 법적인 대응을 했지만 소송과정이 소모적이고 일일이 계속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번에는 법적 대응 대신 저작권 침해 사실을 여론화 해 사진에 대한 미술계의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김정운, 류영도 작가는 임씨 측과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차용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고의나 명예훼손 의도가 없었고, 엄밀하게 저작권법에도 위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임응식 작가의 작품임을 안 이상 앞으로 출처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김정운씨는 “작품 제작 당시 누구의 사진작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대적 향수가 있는 사진을 현대적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제가 불거진 후에는 문화관광부 저작권위원회 법제처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고, 이를 임씨 측에 알렸다는 것이다.

양측은 1946년과 1950년에 촬영된 사진작품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언제부터로 볼 것인지에서 입장이 갈린다. 먼저 김정운씨가 저작권위원회에 문의해 받은 답변에선 임응식 작가의 작품이 현행 저작권법이 아닌 촬영 당시의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아 보호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며 따라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즉 현행 저작권법에서 작가의 사후 50년인 보호기간이 1957년의 저작권법에는 ‘사진저작권은 발행이나 원판을 제작한 해의 익년부터 10년간 존속한다’고 돼 있어 1946년에 촬영된 임응식 작가의 사진작품은 1956년에 보호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범택씨는 저작물 보호기간의 산정기준이 되는 발행연도를 작품 촬영일이 아닌 발표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또 “타인의 사진작품을 본인의 허락 없이 표절해 마치 자기 작품인양 발표한 것은 원작자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킨 것”이라며 저작권은 물론 인격권까지 침해받았다는 입장이다.


원작자의 양해 구하고 출처 밝히는 문화 필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최명기 교육원장은 “저작권 발효 시점이 지났거나 오래된 사진의 경우 법적 해석이 애매모호해 분쟁 조정이 쉽지 않다”며 “결국 도의적 차원에서 양측의 해결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작품에 차용할 경우 미리 원작자와 저작권을 양도받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품 정보에 출처를 정확히 명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전했다. 사진을 작품의 재료 정도로 인식하고, 사진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작품에 사용해온 관행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설치예술가인 정호진씨는 “미술가의 입장에서는 사진을 콜라주로 이용하거나 부분 모티브를 옮겨 그리는 것은 사진 원작자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고 저작권을 침해당한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지적재산에 대한 미술계의 인식 전환과 경각심을 강조했다.


해외사례 _ 법정으로 간 사진저작권

해외에서도 미술품의 사진작품 차용에 대한 논란이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 생존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받는 사진작품이라 사진가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미국 사진가 모튼 비비(Morton Beebe)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꼴라주 작품에 그대로 사용된 것을 보고 서신을 보내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작품이 기성작품에서 영감을 받거나 모티브를 따온 레디메이드 작품처럼 공정한 사용에 해당된다는 답장을 보냈다. 결국 모튼 비비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라우센버그는 금전적 보상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모튼 비비에게 선물하면서 사건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진저작권 침해 논란의 한 가운데는 유명한 현대미술가인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가 있다. 그는 패트릭 카리우(Patrick Cariou)의 사진집 ‘Yes, Rasta’에 수록된 사진 41점을 자신의 꼴라주 작업 ‘Canal Zone’에 사용했다. 패트릭 카리우는 자메이카 섬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종교집단인 라스타파리안과 약 6년간 함께 생활하며 어렵게 촬영한 사진이 어떤 동의나 양해 절차 없이 무단으로 사용된 점에 분노하며 2008년 리처드 프린스와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출판한 가고시안 갤러리와 리졸리 출판사를 고소했다. 2년 반 동안의 긴 법적공방은 올해 3월에 패트릭 카리우의 승소로 끝났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1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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