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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아프리카의 재발견 - 뜨거운 땅, 다나킬

2011-06-17


에티오피아를 가면서 이 나라에 대한 이미지들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TV로 보아온 연예인들의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봉사활동과 커피의 원산지라는 것 정도였다. 한 나라를 생각할 때 그 나라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됐다.

글, 사진 | 사진가 신미식



기아, 내전, 가뭄, 뼈만 앙상한 아이들과 문명도, 문화도 없이 헐벗은 원시종족들의 척박한 땅으로 기억되어진 에티오피아.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모로코, 튀니지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자연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일 뿐만 아니라, 솔로몬 왕 시대부터 시작되는 3천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초기 기독교 왕국이었으며, 고유 언어와 문자를 가진 독립국가다. 한반도의 5배에 달하는 에티오피아는 동서남북으로 전혀 다른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다. 그동안 편견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고유 문명과 경이로운 자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에티오피아로의 여행은 편견으로 보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또 다른 모습을 재발견하는 기회였다.




에티오피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다나킬을 꼽을 정도로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땅이다. 왕성한 화산활동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알려진 땅, 다나킬. 먼 옛날 바다였던 이곳은 물이 모두 증발해 1,2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땅엔 소금만 남았고, 그 양은 112만 톤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평균해면보다 116미터나 낮은 이 땅엔 연일 5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로 가득 차 있지만, 드넓은 소금사막과 소금호수,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간헐천, 가지각색의 유황호수, 유황과 소금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유황소금기둥 등.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오랜 세월 죽음의 땅으로 알려졌던 이곳을 찾았던 이들은 거칠고 용맹스럽기로 소문난 아파르족 뿐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의 소금을 세상에 내다팔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소금 캐러밴과 함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 다나킬.



다나킬에 가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의 소금 교역 중심도시인 메켈레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전국의 소금 상인들이 몰려들었다는 이곳은 다나킬 저지대로 가는 소금 캐러밴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먹을 음식을 사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나킬이 아무리 더워봤자 사람 사는 곳인데 얼마나 덥겠어 라며. 그러나 메켈레를 출발한 지 2시간 정도가 지나 나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바뀌는 창밖 풍경 때문이었다. 메켈레를 출발할 때는 푸르던 산과 들판이 점점 황폐한 땅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다나킬의 지형은 그야말로 척박함이었다. 나무 한그루 자랄 수 없는 땅. 이 척박한 땅에서 사람들이 산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이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다나킬로 가는 중간 거점도시인 베라힐레에서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사람과 차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곳부터 무장 경찰과 현지 가이드가 함께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다나킬로 들어갈 수가 없다. 보기에도 눈매가 날카로운 무장 경찰과 어려보이는 현지 가이드를 대동하고 아살레 호수의 인근 마을인 아메드 엘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메켈레에서 오전 8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9시간이 걸린 셈이다. 첫날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낮에는 더워서 여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잠자리라고 특별히 정해진 곳 없이 돗자리 한 장이 전부였다. 더위 덕분에 한숨도 제대로 눈을 못 붙인 채 목적지인 달로를 향해 출발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바다보다 무려 120미터나 낮은 곳. 이른 아침인데도 뜨거운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30분 가량 사막을 달리니 내가 이곳에 오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세상에서 가장 낮은 분화구에서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 1926년에 있었던 화산 폭발로 30미터 넓이의 분화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신비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이곳은 마치 외계행성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신비로운 풍광이었다. 뜨거운 열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이드가 팔을 잡아끈다. 날이 더 더워지기 때문에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소금 캐러밴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화산 지역을 나와 30분 정도 차를 달리니 사막의 모양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보니 바닥이 육각형 모양으로 솟아 있다. 바로 소금사막이다. 매장량이 122만톤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넘어서는데 소금사막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소금 캐러밴들이 일하는 시간은 12시까지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더위 때문에 머물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차에 올라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소금 캐러밴이 일하는 장소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이들은 이곳에서 소금을 채취해 4일을 걸어 베라힐레에 가야 한다. 그곳에서 소금을 판매하고 다시 돌아오는 반복되는 삶이다. 고단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생각하니 ''나는 참 편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숙여진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밤새 걸음을 옮기는 사람과 낙타와 당나귀의 뒷모습이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저들의 걸음이 싸하게 가슴을 흔든다. 평화로운 침묵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저 잔잔한 삶을 보면서 내가 가야할 길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루를 살며, 어떤 미래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방인의 눈에 비친 소금 캐러밴의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저들의 삶에 잠시 동참하는 일이다. 저들의 걸음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피사체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내가 만난 그 어떤 풍광보다 아름답게 그리고 경건하게 비쳐진 이 한 장의 사진은 사진가에겐 축복이다. 셔터를 누르면서 지금 이곳에 있음에 얼마나 많은 감사를 허공에 날려 보냈는지 모른다. 몸은 피곤하고 탈수증에 목이 타들어갔지만 셔터를 누르는 이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어느 누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순간의 행운을 가질 것인가?


저들의 걸음걸음 하나가 심장에 박혀온다. 가볍게 마른땅을 밀치고 나가는 걸음에서는 인내가 느껴진다. 영상 50도의 폭염은 이미 나에겐 기억조차 가물할 정도로 지금 시간을 즐기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다. 더위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해도 나는 지금이 좋다. 사진가에게 척박한 환경은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환경이 더 어려워질수록 나는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안락한 곳에서 남기는 사진이 주는 편안함은 이렇게 진한 향기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스스로 사진에 빠지는 그 달콤한 순간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다나킬 사막에서의 시간은 차라리 행운이다. 사진가의 길 위에 서있는 지금이 나에겐 선택보다 진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 소중한 한 장의 사진은 새로운 기록으로 남겨진다. 세상에 단 한 장 밖에 없는 이 사진이 사진가의 심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른 에티오피아의 다나킬 사막에서의 시간은 어쩌면 나를 위한 거대한 세트장이었다.

그 귀한 선물을 선사한 그 날의 인연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막에서 물은 생명이다. 한줄기의 물도 구경할 수 없는 이곳에서 물은 가장 중요한 식수원이다. 먼지 가득한 마른 바닥에 누워 뜬눈으로 잠을 청한 후에 맞이한 아침에 머리는 먼지로 푸석푸석해져 있었다.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싶었지만 이곳에선 너무 큰 사치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한 방울의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조차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난생 처음 영상 50도를 넘나드는 이곳에서 나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알게 됐다. 결국 그 시간은 스스로를 겸손으로 몰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는지. 그 풍요로움에 감사를 더하지 못한 내가 너무나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는 게 소원이었던 이곳을 벗어나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으로 돌아왔다.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에게 감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도저히 살 수 없었던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만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했는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후에 저장해둔 물 한 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들에게 물은 그 의미를 넘어 이미 생명이다.

그 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 여행은 그렇게 나란 존재를 겸손하게 하고 감사를 느끼게 한다.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어쩌면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워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땅에 존재하는 그들의 삶이 더 없이 풍요롭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그 귀한 어깨를 내어주며 인사한 가이드 ‘알리’에게 안부를 묻는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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