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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히말라야의 여름나기

2011-05-16


인도의 오월, 태양은 마치 땅위의 모든 것들을 다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다. 그 불더위 속에 멀리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지친 대지가 몰아쉬는 긴 한숨이다. 이미 히말라야의 아래쪽 마을에는 풀들과 나뭇가지들이 바스락하게 말라 붙어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우리 초식동물들에게 먹을 것이라곤 마른 풀들 뿐이다. 이런 마르고 거친 풀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는 동물은 무덤덤하기로 소문난 낙타들뿐이다.

글, 사진 | 사진가 고빈



이렇게 불볕더위가 오면 소와 염소와 양떼들과 같은 우리 초식동물들은 히말라야에 펼쳐진 푸른 풀밭을 향해 여름나기를 떠난다. 인도 평원에서 히말라야의 풀밭까지는 부지런히 걸어도 꼬박 한 달은 걸어야 한다. 히말라야의 싱그러운 풀밭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 후, 9월 하순이 되면 히말라야에 눈이 내려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산 아래쪽 평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히말라야에서 지내는 동안 산 아래쪽 평원지역에는 장맛비가 내리고 이 비에 메말랐던 대지는 다시 초록으로 되살아나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우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계절을 거슬러서 이동해 다니는 지혜로운 여행을 해왔다. 이 걷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고 자연의 위대함과 그 가치를 깨닫는다. 평원에서 히말라야에 다다르기까지는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한다. 이렇게 걷는 운동은 자연스럽게 근육의 힘을 키워 건강을 지켜준다. 또한 히말라야의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와 빙하가 녹으면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도 마실 수 있다. 우리는 걸을 때 항상 우리의 먹을거리인 풀들이 자라고 있는 곳을 따라 걷는다. 풀들은 햇볕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늘지지 않은 하늘이 넓게 열린 곳을 따라 자라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풀밭을 따라 걷는 것은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넓은 하늘 아래서는 낮으로는 따듯한 햇볕을 듬뿍 받을 수 있고 밤으로는 히말라야의 별빛과 마주할 수 있다. 이렇게 항상 하늘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정화되고 건강해질 수 있다.

이 여름나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우리들은 튼실하게 살이 오르고 몸에 윤기가 흐르게 된다. 아마도 히말라야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암컷들은 이 여행 기간 동안 새끼를 낳는다. 새끼들은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엄마의 젖과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여행이 시작될 때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머릿수가 많이 늘어나서 돌아오게 된다.



이 여름나기 여행은 소와 염소와 양떼들과 같은 초식동물들만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이 여행을 함께 해왔다. 사람을 따라 개와 말들 그리고 심지어 닭들까지 덩달아 이 여행에 따라나섰다. 처음에 사람들은 젖과 양털을 얻는 조건으로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주겠노라고 따라 나섰다. 개들은 곰과 늑대로부터 다른 동물을 지켜주는 보디가드가 되겠다고 동참하였고, 말들은 사람들의 짐을 나르는 짐꾼이 되는 조건으로 여름 한철을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풀밭에서 보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날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닭들은 히말라야의 일출을 바라보며 목청껏 울어보겠노라고 나팔수를 자처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젖과 양털 그리고 우리 초식동물들의 고기를 얻기 원한다. 우리는 그것을 사람들이 가진 훌륭한 지혜와 맞바꾸는 것에 대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초식동물들은 지천에 널린 풀을 먹고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우리처럼 풀을 먹고 살 수가 없다. 자연(自然)이 애초에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우리 육신의 일부를 기꺼이 나누어줄 수 있다. 만약 우리를 잡아먹는 자가 없다면 우리의 머리수는 너무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뜯어먹을 풀이 부족하게 될 것이고 우리 중 일부는 굶어서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고기를 먹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많은 수의 피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필요로 하는 아주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잘 알고 자연의 이치를 지키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바람이 불어와 귓가를 스친다. 우리는 바람을 통해 우리가 가보지 못한 먼 세상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언젠가 바람은 사람들에 의해 사육되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들은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에 갇혀서 힘들게 지낸다고 한다. 그곳은 햇볕도 잘 들지 않고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풀 대신 인간이 만든 사료라고 하는 것을 먹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가슴이 아파왔다. 우리도 사람들처럼 가슴 속에 고동이 뛰고 따듯한 피가 흐르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처럼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생명들은 자연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듯이 우리 동물들도 자연스러움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자식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야 한다. 인간이 진정 지혜로운 존재라면 자연의 조화를 알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빈(GOWIND)은 사진가로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와 티베트를 여행하며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6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www.gowind.net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8년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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