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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공간에 대한 시선

2012-03-15


인구 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로 급속히 팽창한 서울. 그 발전의 이면에는 불과 몇 미터 간격으로 고급 호텔과 철거직전의 허름한 판자 주택이 나란히 놓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사회 경제적 용어로서 비공식 영역은 무허가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극심한 빈부 격차나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한 공간의 정치적 재편성을 고려할 때, 소외된 도시의 비공식 공간은 언제나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산재해있는 비공식 공간을 통해 서울의 또 다른 얼굴에 주목한다. 미관상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이유로 천대받고 있는 도시의 비공식성을 바라보는 태도를 질문하고 비계획적이고, 혼잡하며, 정형화되지 않은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싣고자 한다.

글,사진 | 이은정 (chunglyang1@naver.com)

비공식 거주지

공간 계획 분야에서 비공식영역은 공간을 전유하는 지역 특유의 방식과 기존의 공식적인 지역 개발지침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독특한 도시 상황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제도적 방법으로 계획, 통제되는 구역들의 틈새에서 소외되어 발생하는 도시 활동을 통해 구체화 된 곳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최소한의 건설자재를 사용해 지은 노숙자의 초저비용 거주지라든가 노점상, 이동식 차량이나 가판대, 골목길 무허가 건물 등이다.

비공식 공간은 단편적인 계획과 정부 부처들 간의 의견 대립으로 인한 제도적, 물리적 공백을 틈타 형성된다. 활발한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정부 당국은 기생적 공간들을 일일이 처리할 만한 여유가 없어졌다. 따라서 그와 같은 틈새 공간에는 어쩔 수 없이 비공식적인 전략을 적용한다. 서울의 고속도로 밑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공식 공간이 무엇인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비공식 거주지는 어떤 제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다만 그 곳에서 압도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규범은 대개 지역적이고 국부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사회 집단의 요구에 부응한 비공식적인 승인을 기반으로 한다. 비공식 공간은 중앙 혹은 지방 정부가 계획한 공간과 민간 개발업자가 세운 건물들 사이에서 가변적인 프로그램 혹은 무계획적인 사용과 같은 양상으로 드러난다. 즉 공간에 약간의 변화만 발생해도 무허가 거주자들, 노점 상인들, 리어카 상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적이고 일시적이다. 게다가 빠르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지역 정보 및 이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가 무척 어렵다. 결국 비공식 거주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지역 환경에 반응하고 새로운 요구와 갈등에 즉흥적으로 대처한 결과라 하겠다.

전 세계 다른 도시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비공식 거주지 역시 일정한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은 공식적인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지역들, 예컨대 접근이 어려운 지역, 달동네라 불리는 고지대, 다리 주변 등을 점거한다. 불법 무단 점유자들은 그러한 지역에 재활용 합판, 슬레이트, 대나무 돗자리, 파형금속 지붕과 같은 최소한의 건설 자재를 이용한 초저비용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 사실 저소득 계층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토지 점유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공식 거주지는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하거나 임대하고 다양한 서비스 시설들을 유인하며 도시 개발에 기여하지만, 그러한 지역들에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되면 그 곳 주민들 사이에는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조된다. 따라서 비공식 거주지는 불확실한 경제, 정치 상황에 대처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비공식 거주지가 새로운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인 과정 또한 창출한다는 사실이다. 거주지를 형성하려면 새로운 도시를 세울 때와 마찬가지로 보도, 거리, 집 등을 건설해야 한다. 무언가를 건설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적인 과정이며 인간과 도시 공간 간의 상호작용을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주지 형성은 공공공간의 확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리적인 환경을 창출하는 작업은 도시의 여러 지역을 통합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법을 유도하기도 한다. 우리는 도시 내 건물의 미관상 형태에 집착하는 대신, 공간의 변화와 사람들의 사용 패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민촌은 당초에 무허가 불법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건축법상의 규제를 완화해 본들 현실적으로 그들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완화된 기준에 맞추어 양성화된 집과 땅은 소위 공식부문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토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땅값이 오르면 월세값도 안 오를 수 없다. 따라서 확실한 주거 안정 대책이 세워질 때까지 절대 철거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고 도시 빈민이 목마르게 바라는 시설, 예컨대 상하수도, 공중변소 등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주거 환경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달동네의 건축은 건축가의 손을 거친 것 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 도시미관의 기준은 사는 사람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마땅하지 보는 사람 입장에서 결정될 수는 없지 않은가.

비공식 행위와 지역에 대한 이해

도시 공간의 비공식적인 전유 및 활동은 도시의 생산과 재생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활동들은 비공식 공간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공간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게 될지를 예측한 종합적인 계획은 존재하기 어렵다. 계획 지역이든 비계획 지역이든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특정 용도의 공간을 통합하거나 변화시킨다. 그리고 무허가 점유나 그에 따른 협상 과정을 거치려면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역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비공식 공간에서 무허가 행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이것은 마치 도시 성장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들이 실패로 끝남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해주는 생생하고 종합적인 자료나 다름없다.

이른바 낙후된 곳이라 불리는 철거위기의 달동네의 삶 역시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다. 비록 그곳의 주민들은 주변의 개발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전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개발로 인한 삭막한 콘크리트 블록과 이런 비공식 지역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활기가 도는 콘크리트 정글로 도시를 구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발이라는 대명분 아래 정이 깃든 도시의 한 귀퉁이를 잘라내어 새 옷을 입힌들 그 속에 살아있는 세상사마저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급속히 커져버린 서울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을 찾지 못했다. 반면 설계와 관계없는 비공식적인 해결책들-단순한 시공, 작은 공간, 다용도 활용-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무조건적으로 무허가 공간을 옹호하거나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풍요로운 환경 뒤에 숨어 있는 매우 단순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논리를 이해하고 우리만의 전략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마도 ‘빨리빨리’가 몸에 밴 서울 시민인 우리는 공간을 그렇게 추상적이고 질서 정연하게 조직화하기 힘들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원시적인 본능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너와 내가 더불어 살기를 원하고 있다. 흉물스럽다, 위생적이지 않다, 거추장스럽다는 일방적인 시선으로 낙후된 지역을 갈아엎으려 들고 길거리 노점은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만들어 놓는 것이 과연 서울을 업그레이드하는 지름길은 아니리라. 콘크리트 정글에 살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사람들이 본능적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얼마간의 공간을 남겨두는 배려있는 시선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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