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스페이스 | 리뷰

음악과 진한 커피 속에서 아날로그의 시간이 흐른다

2011-10-10


언제부턴가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주요 상권에 새로 생기는 가게의 대부분은 카페형 매장이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은 최신식의 커피 머신과 로스팅 기계를 구비하고 커피를 대량 생산해낸다. 그 집만의 독특한 향기와 맛은 없지만 일정 수준의 커피와 트렌드라는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커피프랜차이즈는 성황을 이룬다. 작은 굴에 들어가는 느낌의 ‘커피볶는 곰다방’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낸다. 손으로 돌려 커피를 볶는 통돌이를 쓰고, 기계 대신 손흘림으로 커피를 생산한다. 멜랑꼬리한 카푸치노와 라떼 류는 찾을 수 없다. 오직 커피만 판다. 사장이 우유를 먹지 않는단다. 자기가 먹지 않는 것은 손님들에게도 내놓고 싶지 않단다. 음악과 진한 커피가 있는 ‘커피볶는 곰다방’은 남성미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투박하지만 정겨움과 포근함이 있는 공간. 테이블에 커피를 흘려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골방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곰다방으로 오라고 곰 탈을 쓴것 같은 주인장이 손짓한다.

글| 한정현 기자 (hjh@popsign.co.kr)
사진|신혜원 기자(shin@popsign.co.kr)


개성의 거리 홍대, 자본과 함께 몰개성이 밀려온다
예술가와 젊음의 거리 홍대 일대는 개성있는 가게들이 골목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간판들이 많은 것도 홍대 거리의 특색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홍대 거리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젊은 음악인들의 유일한 무대였던 음악 클럽들이 하나둘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작은 가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밀물처럼 자본이 예술의 거리에 밀려 들어와 상업 논리가 기존의 가치들을 잠식하고, 홍대의 특색을 이루던 작은 가게들은 썰물처럼 외곽 지역으로 밀려난다. 이는 비단 홍대 뿐 아니라 상업화되어가는 모든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홍대 거리의 가게들은 자신만의 색깔과 철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타인과 나누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포용이 홍대거리의 가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트렌드를 좇는 자본이 점차 홍대에서 타인의 취향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성이 강점이었던 홍대가 점차 자본으로 인해 몰개성 상업지대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손님들이 만들어가는 곰다방, ‘타인의 취향’을 공유
홍익대학교 정문 앞 작은 골목 안에 자리잡은 작은 다방 ‘커피볶는 곰다방’은 홍대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작은 가게’의 가치를 지켜가는 공간이다.
2007년 ‘커피볶는 곰다방’의 문을 연 박준호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다방을 차렸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직장에선 이어폰으로밖에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스피커로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가게를 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출판사에 오래 다녔는데 사무실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보니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싶더라고요.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고대 앞에 있는 보헤미안이라는 커피집에서 맛본 커피 맛에 충격을 받아 ‘그래, 다방을 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홍대 골목에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의 집에 있던 책이며, LP 등을 주섬주섬 챙겨나오면서부터 곰다방은 시작됐다. 처음 1년 간은 가게에서 숙식을 했단다. 어떻게 보면 곰다방은 박준호 사장의 생활을 타인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다. 취향과 비슷한 손님들이 곰다방 박 사장의 영역으로 들어와 그들은 단골 손님이 되었다. 단골들은 자신이 곰다방에서 읽고 싶은 책이며, 음반따위를 가게로 가져다놓아 곰다방이 자신을 영역임을 표시했다. 음악 일을 하는 권요섭씨도 곰다방의 단골이었다가 곰다방이 좋아 눌러 앉아 직원이 된 경우다. 박준호 사장은 “LP만 온전히 제가 갖다 놓은 것일뿐 대부분은 손님들이 두고 간 것들이에요. 소품들 대부분은 손님들이 가져다놓은 것들이어서 저는 세금 내는 사장일 뿐 이 곳의 주인은 이제 손님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간판을 크게 달아야지 그게 뭐냐!”
곰다방은 문을 연지 채 5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수십년이 지난 오래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박사장을 비롯해 손님들이 자신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가게에 가져다놓아 공간 곳곳에 사람들의 손때와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오는 손님들도 공간을 낯설어하지 않고 쉽게 분위기에 동화된다. 오래 지낸 방처럼 편안함이 ‘별다방’, ‘콩다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곰다방만의 매력이다. 소박한 내부 인테리어는 여러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졌다. 목공소를 하시는 아버지의 지인들, 박 사장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분들의 도움이 컸다. 벽면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그림을 그리는 선후배들이 재능을 기부했다. 곰다방 내부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 는 그림 그리는 친구가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박 사장이 밤새서 선을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먹물의 농담은 전공자가 작업했지만 그림 속 말 그림은 제가 직접 그렸는데, 작업을 직접해보니까 피카소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 느끼게 됐어요”라고 곰다방에서 피카소를 재발견한 사연도 소개했다.

커피볶는 곰다방의 간판은 가게 문 위에 설치한 작은 아크릴 박스가 유일하다. 아버지의 지인이 간판 가게에 부탁해 달아줬다고 한다. 박 사장은 “큰 간판이 싫어 사이즈와 형태를 직접 정해줬는데 간판을 사주시는 아버지 지인께서 ‘간판 크기가 그게 뭐냐. 돈걱정 하지 말고 식당 간판처럼 크게 달아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간판 글자도 중앙에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도 불만스럽다고 하시더군요.(웃음)”

곰다방엔 커피가 있고~ 곰도 있고~
‘커피볶는 곰다방’이라는 가게 이름 탓에 “곰다방에는 곰이 산다”는 말을 이 곳을 아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던진다. 박준호 사장의 외모가 곰과 오버랩되기 때문에 박준호 사장을 단골들은 ‘곰사장’이라고 부른다.
박 사장의 외모때문에 ‘곰다방’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했는데 원래는 한자로 ‘之於’라는 간판을 달 계획이었다고 한다. 박 사장은 “之자와 於자는 뜻글자인 한자에서 뜻을 가지지 못한 문자이지만 이들 어조가가 없으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잖아요. 이 글자처럼 자신을 드러내놓고 잰체 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곳이 되자는 의미를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너나 알지 누가 그런 뜻을 알겠느냐’면서 쏘아붙인 말이 ‘미련 곰탱이 같은 놈’이었다고 한다. 커피볶는 곰다방의 이름은 이렇게 친구와의 소소한 농담에서 비롯됐다. 또한 ‘다방’이라는 이름에는 동네 사람들이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커피숍이라고 하면 커피를 쇼핑하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파는 것보다는 쉬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에 다방이라고 지었어요”라고 설명했다. 테이크 아웃 커피를 팔면 장사가 잘 될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해 있지만 공간을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박 사장은 다방 문화를 고집한다.

곰다방, ‘작은 것’의 가치를 지키다
곰다방 문을 연 이후 한 번도 매출이 높았던 적이 없긴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한다. 커피를 파는 곳이 너무 많이 생긴 탓이다. 곰다방이 문을 열 당시에는 홍대 일대에 커피를 직접 볶아 드립커피를 만드는 곳은 칼디라는 곳과 곰다방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150여개가 운집해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많이 생기면서 곰다방처럼 작은 커피집 중 문을 닫는 곳도 많다고 한다. 흡사 SSM이 재래시장 근처로까지 확대되면서 상인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과 같은 풍경이 홍대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신이 작은 다방을 운영해서가 아니라 박 사장은 대형화, 자본화에 체질적 거부감이 있다. 프랜차이즈에는 절대 안가고 대형마트도 안가려고 노력한단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심지어 개봉관에도 안간다. 주로 찾는 곳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다. 영문학을 전공한 박 사장은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자막을 번역하는 자원봉사 활동도 한다. 최근 1973년作 혹성탈출을 번역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됐다.

“대형마트가 물건 값이 싸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됩니다”고 대기업 위주의 시장경제가 재편되는 것을 우려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홍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쉬어가고 함께 음악을 즐기기 위해 마련한 ‘커피볶는 곰다방’. 박 사장은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만 장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운영난에 처한 곰다방의 현실은 홍대의 현주소에 다름아니다. ‘작은 것’의 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취향과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한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나타낸다. 이는 또한 사회적 소수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도 맥이 닿는다. 자신의 소비 패턴이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 커피볶는 곰다방의 작은 간판에서 느낀 감상이다.




facebook twitter

월간 POPSIGN
SP, Sign, Lighting Design 전문 매거진 월간 <팝사인> 은 국내 최초의 옥외 광고 전문지로, 국내 사인 산업의 발전과 신속한 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또한 영문판 잡지인 발간을 통해 국내 주요 소식을 해외에 널리 소개하고 있으며, 해외 매체사와의 업무제휴 들을 통한 국내 업체의 해외전시 사업을 지원하는 등 해외 수출 마케팅 지원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