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6
‘아치와씨팍’의 뜻은(아는 사람은 다 아시겠지만) ‘양아치와 씨팍새’의 줄임말로, 제작초기부터 배우 류승범과 임원희가 목소리 연기를 한다는 소식에 관심이 증폭된 작품이다.
‘UP & DOWN STORY’로 1997년도 SICAF 대상, 97 대한민국 영상대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조범진 감독을 중심으로 ㈜제이팀이 2001년부터 기획/제작하였다.
발칙하다고 소문난 이 작품은, 제작 초기에 만든 플래쉬 단편들이 300만의 조회 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 당시 어느 기사에서는 원자폭발적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 2001년 2월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디지털 시어터 부문에서 공식 초청 상영되었는데, 인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초청 상영되었고, 10월에는 “동경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에 공식 초청, 상영 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인 2005년, 제58회 깐느영화제 공식 초청되었다.
작품의 개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요즈음,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기존 플래시 작품에 비해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은 확실히 달라도 많이 다르다.
붓으로 그린 듯한 묘사가 아주 정밀하고 감각적이며, 색감은 세련되고 풍부하다.
특히 생동감 있는 배경 씬 하나 하나는, 액자에 넣어 따로 전시를 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낸 좋은 작품들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 많은 그림들을 묶어내는 일관성, 그리고 저마다 개성을 뿜어내고 있는 컷 하나하나가 마음이 끌었다.
수 많은 배경들을 그토록 디테일하게 살려낸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또한, 그 작업을 한 작품으로 뽑아낸 사람은 누구일지 상당히 궁금해서 꼭 만나보고 싶었다.
아트디렉터 김윤기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제이팀의 사무실은 이미 많은 인테리어 잡지에 소개된 특이하고 재미있는 건물이다.
입구에는 멋스럽게 기댄 자전거와 포스터들이 있고, 들어서면 마루로 깔린 복도에 할로겐 조명빨을 받고 있는 백 여장이 넘는 그림들로 벽들이 온통 반짝거린다.
막 구워낸 따끈따끈한 그림들. 바로 ‘아치와씨팍’ 이 한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작은 회사에서 2D로 CD ROM 타이틀에 들어가는 디자인 작업과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완전 똑.딱.이.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당시 작품인 ‘UP & DOWN STORY’가 97년 SICAF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료들과 대담하게 여러 작품을 시도할 수 있었죠.
‘아치와씨팍’ 은 캐릭터가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예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보자!!” 하고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거죠. 남산에 있는 ‘애니메이션 센터’ 사무실로 입주하게 되었는데,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던 기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잘 맞았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합류하게 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되었죠. 그 뒤에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거예요.
극장용을 제작하면서는 최근까지, 그러니까 작품이 제작되는 내내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98년부터 설정작업이 시작되었다) 사무실이 지금의 압구정동으로 옮기게 되면서 2000컷 정도 되는 배경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어요.
어떻게 진행되었나
제일 처음으로는 설정을 위해 잡지와 사진, 영화 등 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이미지 자료들을 수집했죠. 그 다음엔 사진을 그림으로 변환해서 색감과 분위기를 맞춰보고, 다시 조정하고 조정해서 아주 신중하게 정했어요. 사진 자료들은 설정에 아주 중요한 자료예요.
처음 2명이 이렇게 설정작업을 했고, 나중에 5명이 ‘아치와 씨팍’에 관한 본격적인 배경 작업을 한 거죠. 또 작업하면서 그때 그때마다 각종 브로셔나 포스터 등 영화제나 홍보에 관련된 작업을 했구요.
처음 설정작업을 한 것 중에서 실제로 쓰이게 된 부분은 아주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씬 별로 한 30컷 중에서 20컷은 빼게 되고, 나머지 10컷 정도만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합성으로 넘기기 전에 ‘셀 채색’은 외주를 통해 작업하게 되고(캐릭터 부분) 배경은 내부 작업으로 했는데, 배경에 셀을 얹을 때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조정이 필요해요.
이것도 씬 별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을 일일이 다 지정해주어야 하고, 컷 별로 수정을 거치게 되는 거죠.
배경작업은 포토샵(Mac)을 주로 이용하고, 셀과 배경을 합치는 이펙트 작업에는 ‘애프터 이펙트’라는 소프트웨어도 사용하지만 주로 ‘임페르노’ 라는 합성시스템을 거쳐서 최종 컷 들을 만들죠. 그 다음에는 제일 까다로운 필름현상작업이 기다립니다.
필름에서는 사실 많은 색 정보들이 손실되기 때문에 DLP(디지털상영기) 상영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필름상에서 최대한 보정을 보려고 노력하고요.
개봉하기 전까지 해야 할 일
이제 개봉 전까지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셀과 배경 등 합성하는 작업을 체크하는 것이죠. 처리할 배경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그 동안 2,000컷 넘는 배경을 만들며 팀원들이 고생 참 많았어요. 또 많이 고맙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의 아트디렉터로서, 김윤기님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볼 수 있어 무엇보다 기뻤다.
‘아트디렉터’란 일은 멀리서 볼 때 어렵고, 화려하며, 냉정할 것이라 상상했었는데, 직접 만나 들여다보니 오히려 미술적 감각과 리더쉽. 그 두 가지가 있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때론 너무 많은 관심과 의욕에 눈 앞이 가려서 허둥거릴 때, 시간이나 에너지가 낭비되고 만다. 묵묵하게 자신의 일과 주변 사람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김윤기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리고 싶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15분 분량의 필름을 살짝 볼 수 있었다.
사실적인 배경에 잘 먹어 들어간 캐릭터가 힘차게 뛰어다니는데, 툭툭 튕겨져 나오는 대사에 계속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더군다나 폭발하는 먼지나 피 색상도 밝고 예쁜 색상이어서 작은 부분에 세심히 노력한 흔적들에 감동하며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사무실에 폐를 끼칠 수가 없어서 곧바로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왔다. 그런데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던지, 인터뷰 다음날 아침 나도 모르게 투자배급사로 알려진 튜브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인터넷으로 확인 할만큼 이 작품에 대해 ‘어 이거 뜨겠다’ 싶은 확신을 가지게 되고 말았다.
부디 작품만큼, 작품에 어울리는 개성 넘치고, 과감하며, 치밀하고 쎈 홍보작업으로! ‘아치와씨팍’ 이라는 작품이 멋진 날개를 달고 내 앞에 나타나 주기를 고대한다.
2005년 겨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