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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치밀한 이미지들의 조각맞추기 - 애니메이션 BG

2003-10-01

"정상웅 감독은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하는 멋진 사람"
'원더풀데이즈' 조감독이었던 한제성 감독의 표현이다.
함께 같은 일을 해 온 동료에게, 이 정도의 찬사를 받을만한 ‘분’ 이라면,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일 해 왔을까?
또, 과연 어떤 작품들이었을까?


애니메이션의 배경작업은 전통적인 ‘영상’에 가까운 요소이다.
스타일적인 배경을 표현할 때는 배경과 등장인물 간의 연결기법을 주로 유의해야 한다.

연극의 무대장치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같이 애니메이션 배경 디자이너도 배경으로 건물이나 혹은 다른 지형을 그릴 때 설득력 있게 정확한 외양을 그릴 필요가 있다.
때문에 캐릭터와의 합성 전에 따로 놓고 보면 하나의 ‘순수회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이 대부분이며, 애니메이션 작품에 필요한 그림의 분량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누군가가 ‘스케치북에 풍경화를 300장 그려오라’ 라고 한다면, 막상 그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선뜻 그 일을 맡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대단한 분량과 엄청난 붓질을 당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애니메이션 시리즈 작품 한편 당 300여장의 BG가 필요하며, 이런 믿기 힘든 작업을 ‘업’으로 가진 사람이 있다.

10단계가 넘는 복잡한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 속에는, 각 분야를 맡은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며, 일단 그 일을 맡게 되면, 각자의 스케줄을 엄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스케줄의 변동 없이 멋지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보통의 노력만으로는 가능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가능케 했던 정상웅 감독을 만나 지금까지 해온 작업과, 사용했던 재료나 도구들 하나하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정글 :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하게 된 시기, 초기의 작업에 대해…

96년 처음, 출판사의 일러스트를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잠시 쉬는 사이에 자연스러운 기회가 닿아 애니메이션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BG배경 팀]의 일원으로, 배우며 일을 시작하였다.
배우는 시기에는 주로 쉽고 간단한 배경을 맡아 그리게 되는데, 예를 들면 처음에는 ‘실내’ 부분을 그리게 된다. 실내에 익숙해지면 조금 어렵다고 볼 수 있는 ‘건물’, 그 다음으로는 ‘야외’ 순으로 차차 다양하게 그리게 된다. 보통 이 순서로 그림을 배워 나가며, 많이 그리면서 배우고, 스스로 노력할수록 점차 틀린 부분의 리테이크(수정)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도 점차 짧아지게 된다.


정글 : 원더풀데이즈의 작업은 어떠했는가?

원더풀데이즈의 작업은 2000년도부터 2년간, 총 360여 장의 작업을 했다.
2년간의 작업기간이란 보완 및 수정작업이 포함된 것이어서 일정이 그리 타이트하지는 않았다.

원더풀데이즈의 배경작업은 미니어쳐와 3D+2D 작업이 병행된 것이 특색이다.
따라서 제작초기에는, 상대적으로 2D제작 분량이 적을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제작의 후반, 미니어쳐로 제작 예정이었던 것들 중 스케일이 컸던 CUT들의 일부를 2D로 그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작업분량이 늘어나기도 했었다.

정글 : 그림의 사이즈나 제작시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 얘기해달라.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그림의 크기는 극장용 그림 사이즈는 2048 X 1152 pixel (해상도는 72dpi), TV시리즈는 720 X 486 pixel (역시 해상도는 72dpi) 재료는 포스터 물감과 수채물감, 컴퓨터 작업 등 그림의 재료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종이는 스코틀랜드紙를 즐겨쓰며, 배경의 특성에 따라 포토샵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도 한다. 포토샵으로 처음부터 작업 할 때에는 보통 종이에 연필선으로 스케치를 한 뒤에 스캔을 받아 바로 펜마우스로 그림을 그려준다.
현재는 주로 포토샵7.0을 사용하지만 다양한 그래픽관련 프로그램이나 3D 작업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

정글 : 애니메트릭스의 작업에 대해

2001년, 애니메트릭스 중에서 피터정 감독이 연출한 Episode 9, 허가 (Matriculated)에서 일부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작업했으며 제작기간은 2달 정도였다.


정글 : 그림의 자료들은 필요에 따라 사진촬영을 직접 하는가? 아니면 감독에게 요구하는 방식인가?

- 직접촬영하기보다는 직접 인터넷 이미지를 찾아본다. 주로 Gettyimages 라는 사이트를 사용하여 참고할 이미지들을 찾아본다.
(http://creative.gettyimages.com)


정글 : 한 작품당 몇 장의 그림을 그리는가? 또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는가?

시리즈물 한편 당, 보통 300장 정도의 그림이 필요하다.
원더풀데이즈의 경우에는 직접 미니어쳐를 제작하여 촬영한 씬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제외한 제작분량 360cut 정도를 작업하였다.
가장 바쁠 때는 한달 동안 TV시리즈를 5편 작업했던 적도 있었다. 300장씩 5편이었으니 총 1500장이 되는 셈이었는데, 함께 작업한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컴퓨터작업은 종이보다는 시간이 좀 단축되는 장점이 있다.
포토샵 7.0을 즐겨 사용한다. 몇 년 전까지 맥을 사용했었는데, 3D작업과 호환이 어려운 단점이 있어서 지금은 IBM을 사용하고 있다.

정글 : 애니메이션의 BG는 캐릭터나 다른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가?

그렇지 않다. BG는 캐릭터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제작에 앞서 기획 회의에서 어떤 작업이 될 지 윤곽이 잡힌다. 작품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줄만한 배경이 먼저 제작되며, 캐릭터는 배경에 따라 약간씩 조절된다.
예를 들면, 낮시간, 밤시간, 조명의 색, 조명의 위치 등에 따라 캐릭터의 그림자나 색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정글 : 작품을 계속하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지는 않는가?

3년에 한번 정도는..(웃음)




자신의 일에 무섭게, 끊임없이 돌진하는 사람들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듣고 나면, 반나절은 내가 갖지 못한 재능과 힘에 대한 질투로 가슴이 울렁거린다.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

게다가 원고를 정리하다가 그림 파일들을 찬찬히 보니, 그림이 작업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인터뷰를 핑계로 한국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10년 후 한국의 미야자끼 하야오(아니, 더욱 위대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거장)의 모습을 여기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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