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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살아서 펄떡이는 브랜드

2004-05-24

브랜드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구축되기 위해서는 분명 일관성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면 브랜드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급 자동차를 만들던 포르쉐 자동차가 갑자기 실용적이고 힘좋은 트럭을 만들거나 자전거를 만든다면 포르쉐의 고급 스포츠카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포츠카라는 특화된 이미지보다는 일반적으로 잘 달리는 탈것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모호한 브랜드이미지로 변화될 확률이 크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모던한 스타일, 스포티한 디자인이라는 포르쉐 자동차의 디자인 일관성은 변화될 수 없다. 스포티하지 않다면 이미 그것은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국의 패션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은 항상 흰색 옷을 입는다. 그가 작품으로서 쇼에 내보이는 옷들은 결코 흰색으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다양한 색상과 환상적인 스타일로서 패션쇼의 관객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무대 위의 앙드레 김의 의상이 아무리 컬러풀하고 화려한 문양을 담고 있어도 정작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은 오직 흰색의 의상을 입는다.
약간의 특이한(?) 화장과 흰옷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어서 검은색이나 파란색, 붉은색 옷을 입은 앙드레 김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앙드레 김은 ‘흰색’이라는 일관성을 앞으로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김의 일관된 ‘흰색’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변화하는 흰색’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흰색이라는 색상은 고정되어있지만 백색이라는 색상 안에서의 무늬라던가 형태 그리고 질감은 내면에서의 엄청난 변화로서의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앙드레 김의 순수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흰색 의상에 늘 주목하게 된다.

매력적인 브랜드의 디자인이란 항상 2가지의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변화하는 일관성! 靜中動!
항상 똑같은 모양의 디자인이라면 일관성은 유지되겠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방 싫증을 느끼게 할 염려가 높다. 변화되지 않아 지루한 느낌이 드는 브랜드 디자인이라면 당연히 소비자나 구매자로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 적절한 일관성과 변화가 조화롭게 진행되어야 Good 브랜드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관성과 변화. 창과 방패처럼 모순되어 보인다. 하지만 창과 방패의 부딪침이 없다면 격렬한 싸움, 생명력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에비앙의 생수용기는 알프스의 모양을 조각하여 만든 효율적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디자인이다.
브랜드를 언어적으로 알리는 역할은 물론 조형적으로도 충분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말연시 또는 특별한 경우에는 그 동안 볼 수 없던 전혀 엉뚱한 디자인이 등장한다. 일관성에서 크게 이탈된다. 이런 새로운 충격은 에비앙이라는 브랜드이미지를 또다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멋진 계기가 된다.
20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만든 ‘천사의 눈물’이라는 애칭을 붙인 밀레니엄 용기의 형태는 몇 년동안 계속 만들어졌고 이를 소장하고 있는 매니아가 생겨났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항상 변화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천사의 눈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생명이 있다는 것은 변화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움직이지 않는 조형을 통해서 생명감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헤어스타일이나 화장을 바꾸고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고 어느 정도의 성격변화를 겪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육체와 본질은 고정불변이다. 본질은 변화되지 않지만 어떠한 외모를 만드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상은 완전히 변화되기 마련인데 이것이 일관성과 변화의 관계라 설명될 수 있다.

브랜드디자인은 어떠한 조형환경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그 존재감이 달라진다. 항상 디자인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느낌은 반감되기 시작한다. 흔히 적절한 시기에 브랜드 디자인을 리뉴얼하지 못한다면 그 브랜드는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반면에 디자인에 적절한 충격과 변화를 주면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게 브랜드의 특성이다. 더불어 변화되지 않아서 소비자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브랜드는 존재할 수 없다. 곧 브랜드는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로서 살아 움직여야만 존재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의 본질적인 속성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는데, 바로 브랜드 디자인이 색깔을 바꾸거나 모양을 변화시켜 브랜드를 새로운 이미지로 변신시키는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항상 광고의 내용이 일정하게 반복된다면 고정된 브랜드이미지가 구축될 수 있겠지만 똑같은 광고가 반복되기 시작하면 시청자는 즉시 채널을 돌릴 것이다. 광고는 늘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광고회사는 늘 바쁘다. 덩달아서 모델들도 바쁘고 긴장한다. 다음 번의 광고에 선택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브랜드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져서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기도 한다.
이들 중에서는 죽은 브랜드로 버림받는 것이 있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브랜드도 있다. 시름시름 죽어가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살아서 펄떡이는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왕성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브랜드는 매출을 증대시키기도 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며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다양한 하위 브랜드를 낳기도 하고 기존의 기업이미지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리저리 꿈틀거리면서 그 에너지를 여러 곳으로 발산시킨다. 이렇듯 생명력이 왕성한 브랜드는 가만히 있지 않고 늘 변신한다는 특징이 있다. 좋은 브랜드가 되려면 브랜드에 강인한 생명력을 부여해야만 한다.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변화와 진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광고, 홍보는 물론 제품의 기능이나 속성 등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은 가장 효율적이고 매력적인 자양분이 된다.

요즈음 기업에서는 브랜드디자인 리뉴얼 작업이 한창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고유한 브랜드디자인을 유지하던 상품들이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품명을 버리거나 변형시킨다. 10여년 이상 사랑받아온 장수브랜드 페리오 치약은 그동안의 오랜 옷을 바꿔 입혀 브랜드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페리오라는 브랜드에 또 다른 생명력이 부여되었다. 매출이 급증하는데 여러 요인이 있다고 주장되지만 디자인이 획기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브랜드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브랜드네임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 브랜드네임은 변화되지 못하는 절대조건이어서 상품명이 바뀌면 그 브랜드의 생명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선한 생명력을 만들어주는 것은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디자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색다른 브랜드디자인은 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특수성이 있다. 당연하다. 소비자가 일일이 제품을 사용하고 변화의 폭을 측정하는 방식보다는 디자인의 변화를 통해 인식되어지는 강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곧 브랜드명칭은 일관성을 지닌 절대조건이고 브랜드디자인은 생명력을 부여하게 되는 변화와 진화의 요건이요 근원지다.

스와치의 경우, 자랑할만한 고급 기술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술보다는 감성적 가치를 선택해서 죽어가는 브랜드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70년대 후반 일본과 홍콩의 기술력이 강해지면서 고급 기술로 대표되던 스위스의 시계산업이 급격하게 경쟁력을 상실하자 스와치는 기존의 고급 기술력의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기술력보다는 대중지향의 패션 시계라는 새로운 컨셉의 수혈을 통해서 생명력 넘치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패션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제품의 수명을 제한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스와치 디자인 연구소에서 예술성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등 일관성과 변화의 적절한 처방을 통하여 살아있는 브랜드로서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여성들의 메이크업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메이크업에는 트렌드가 있다.
80년대에 얼굴 피부를 하얗게 하고 입술을 붉게 연출하는 선명한 스타일이 유행했다면 90년대 후반부터는 피부의 색과 가장 유사한 자연스러운 색상을 연출하는 투명한 스타일이 아직까지도 압도적이다. 메이크업을 다르게 한다고 해서 타고난 얼굴의 생김새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이 주는 느낌은 달라진다. 아무리 타고난 생김새가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21세기에 19세기의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면 아름답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상품, 하나의 브랜드는 일관성을 유지하되 변화되어야 한다. 고유의 특징적인 표정을 유지하되 다채로운 변화를 지속시켜야 한다. 사회적 문화적 트렌드는 대중의 욕구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브랜드의 고유한 표정에 조금씩 터치를 해나가야 한다. 바로 이러한 작은 진보적 행위가 브랜드에 생명력을 주입시키는 주요한 작업이다. 흔히 ‘명품’을 만들려는 이 ‘작은 차이’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feel이 꽂혔느냐?’ 그것은 브랜드디자인의 다양성과 창의력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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