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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인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가기

2004-10-12

후덥지근하고 정신 없는 여름보다, 가을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좀더 많이 하게 되는계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왜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더라?’부터, ‘디자이너로 입봉한 후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디자인력(力)을 만들어내는 건 무엇일까?’ ‘과연 무엇으로 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자꾸자꾸 하게 됩니다. (-_-a)

진정으로 닮고 싶은, 빼어난 능력을 갖춘 이들이나 특별히 감동적인 작품은 디자이너가 살아가는데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그런 동료나 상사 혹은 후배가 여러분 주위에는 있는지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미지나 글귀가 있는지요?
무엇이 당신의 뒤통수를 두드려 당신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독려하고 있는지요?

스포츠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면 극적 반전을 이용한 재미있는 만화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아색기가’, ‘츄리닝’, ‘좀비콤비’, ‘시민쾌걸’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의 허를 찌르고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꾼들이죠. 그 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다 얻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디, 이런 만화 뿐이겠습니까.

<아이디어 창출을 위한 5단계> 를 비롯해 세상에는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합니다.
행태, 조건, 동기, 게슈탈트 이론 어쩌구 저쩌구 하며 인간의 심리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기도 하지요.
어떤 디자이너는 ‘WORK BOOK’이나 GRAPHIC DESIGN 서적을 뒤지며, 또 어떤 이는 ILLUSTATION나 TYPO, ‘ARCHIVE’, ‘AD FLASH’, ‘가정화보’를 탐독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습니다.
시장과 거리의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잡지, 신문 등을 부지런히 살피기도 하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그런 노력들이 너무 근시안적인 데서 멈추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당장 만들어야 할 시안이 급해서, 당장 이겨야 할 PT가 급해서 공장식 크리에이티브 개발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요?
멀리 보고, 크게 보는 눈을 키워 줄 스승이 있는지, 시각과 생각의 폭을 한 차원 올려 줄 그런 모범이 있는지, 이 가을 한번쯤 뒤돌아 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참스승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그러나 돌아보면 늘 내 곁에 있었던 – 자연!

산과 들과 바다를 가르며 흘러가는 사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색채와 비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엔 무궁무진 끝이 없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 자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백합, 장미…
이런 꽃들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단의 좌우에 핀 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상단의 왼쪽은 박꽃, 오른 쪽은 감자꽃입니다. 어쩌면 흔한 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도시에서는 무척이나 보기 힘든 꽃이죠.
‘꽃가게’에도 없고, 어느새 우리의 마음속에도 지워진, 가깝고도 먼 꽃들입니다.


잡초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농부들에겐 농약을 뿌려서라도 제거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에겐 아무 생각 없이 밟고 가는 풀일 뿐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신다면, 나름대로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만산홍엽, 오색찬란, 천산만학에 울긋불긋…
단풍은 늘 찬사와 감탄의 한 가운데에 서있죠. ‘아름답다’란 말로는 부족한, 차라리 ‘아싸’, ‘부라보’, ‘대단해~요’, ‘기똥차군’, 이런 과장스런 표현이 어울릴 듯합니다. (그 이상의 표현은 당신께 맡깁니다. ^^;)

눈은 세상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흑과 백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덮어 버리지만, 수많은 색으로 말 할 때보다 한 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만들지요. 도시에서야 눈의 아름다움보다는 녹은 뒤의 지저분함과 질퍽거림, 그리고 자동차 걱정으로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지만 말입니다.


정면으로 본 얼굴은 화장과 치장으로 최대한 가릴 수 있지만, 얼굴 측면 라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겨울엔, 눈엔, 그런 아름다움이 있지요.


“ 영차… 영차…” “으쓱~ 으쓱~”
만물의 탄생과 성장은 봄을 더 봄같이 만듭니다.
때마침, 꽃은 잎을, 잎은 꽃을 만날 수 없다(花葉不相見)는 상사화(꽃무릇)의 새싹이 보이는군요. 열매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꽃이지만, 생(生)에 충실한 그 초록빛 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십니다.


분홍의 진달래, 노란 개나리, 화사한 목련, 하얀 벚꽃들이 온갖 찬사를 받아가며 천지를 진동시킬 때, 시멘트 바닥 한 귀퉁이에선 어린 잎이 고개를 내밉니다. 간신히 붙어 있는, 너무나 작은 잎사귀지만, 누가 저 생명을 아름답지 않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이 가면서 ‘비’가 주는 의미도 많이 달라진 듯 합니다.
낭만을 일깨우는 매개체이기 보다는 산성비, 홍수, 침수, 장마, 폭우, 산사태의 다른 이름으로 더 익숙한 비… 춤추고 노래 하는 몸짱 얼짱 비만 있을 뿐… 비(雨)에선 늘 비(悲)가 느껴집니다.

비온 뒤 여름. 생명 있는 것들의 절정의 시간.


무심한 풀 속에 담긴 아름다움… 포토그래퍼는 그런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지요.


젊은 분들은 동해바다로 떠나고, 늙은 것들은 해지는 서해로 간다는 바다…
파도가 왔다리 갔다리 노닐며 만든 바닷가 모래밭. 들여다보면 혼자보기 아까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과학과 수학, 건축과 의학, 그리고 예술의 위로위로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과 자연, 그 둘을 잇는 철학과 만난다고 합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게, 그런 데서 시작된 말은 아닐까요.
아무리 사소한 내 주위의 자연일지라도, 그 안에는 어떤 궁극의 의미가 가득 차 있을지 모릅니다.
나를 새롭게 하고, 더 깊게, 더 넓게, 더 풍요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은, 어쩌면 그 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구요.

사람은 영원한 자연의 세입자라고 합니다만, 내가 없으면 자연도 의미가 없는 법. 일에 지치고, 사람에 들볶이고, 생각에 치일 때 복잡한 것 다 잠시 버리고 눈과 귀를 열어,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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