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그래픽 | 리뷰

일상 속에 숨겨진 환상의 세계를 그리다

2012-06-20


신화의 나라 일본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요괴가 존재해 왔다. 일본의 요괴는 현대로 오면서 신(神)의 존재에서 벗어나 일정한 성격과 형상을 갖춘 ‘이미지’로 정착된다. 그 결과 상상의 산물 요괴는 현대일본에서 소설, 영화, 만화, 일러스트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친근한 모습으로 캐릭터화돼 등장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포켓몬스터’,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요괴가 주인공이다. 이렇듯 일상에서 요괴를 접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요괴의 나라’ 일본에서 우리에겐 다소 낯선 ‘요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시구로 아야코(石黒亜矢子)를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에디터 | 오윤주 객원기자 ( ozz55@hanmail.net)

이시구로 아야코는 「토미에」 시리즈, 「소용돌이」 등으로 국내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호러만화가 이토준지(伊藤潤二)의 부인이다. ‘요괴 일러스트레이터’와 ‘호러만화가’. 이 둘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환상의 커플’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녀와 남편 이토준지는 많은 작업을 함께하지 않았다. 최근 「이토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동거인으로 잠시 얼굴을 비춘 정도다.

그녀에게 요괴 일러스트라는 다소 생소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원래 공상의 생물을 이야기하고, 설정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스스로 판타지라고 생각해 그렸던 생물이 사람들에게는 요괴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봐서도 안 되고, 보여서도 안 되는 무섭고 불길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이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요괴의 나라 일본이라지만 기괴한 형상의 요괴만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업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제가 확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심미안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 감각을 가지고 돌진할 수 있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매우 소중하고 때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감각이므로 당신의 뿌리만은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찾아 왔던 때가 있었다. “저는 제가 보고 싶은 풍경과 생물을 창조해 그려왔습니다. 제 마음에 강렬하게 와 닿는 세계를 묘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때 다른 사람들이 저의 그림을 부정한 적이 있어서 ‘내 그림이 필요 없는 걸까?’라고 스스로 질문하다가 수렁에 빠져 몇 년간 붓을 잡지 않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에도시대 우키요에에 그려진 망령들을 보고 ‘자유롭게 그려도 좋은 거구나.’ 라고 생각해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영향을 받은 작가는 소가 쇼하쿠(曾我蕭白)다. 소가 쇼하쿠는 18세기 후반 에도시대 교토 화단에서 미인도, 귀녀도 등으로 기괴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화가다. 이러한 요괴의 존재를 상상해서 그리는 독특한 화풍을 지금 그녀가 이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표현대로 “근처의 밥공기조차 요괴가 되어버리는” 일본에는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요괴가 존재한다. 일본뿐 아니라 온 세상의 요괴가 일러스트의 소재가 되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특별히 공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올리거나, 마음 속에 있는 상 자체를 그림에 옮기는 것이다. 대신 풍부한 상상력을 위해 동물이나 식물, 어류도감을 자주 본다고 한다. 그녀에게 요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소재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상상으로 만들어지지만,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요괴 연구가인 쿄고쿠 나츠히코 (京極夏彦)와의 삽화작업에서는 지정된 요괴를 정해진 설정 안에서 나름대로 해석해 그렸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입장을 존중해 자유롭게 그리게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관을 뚜렷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요괴 외에도 그녀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고양이다. 그녀에게 고양이 욘(よん)은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녀는 작년 2월 아들처럼 여기던 고양이 욘(よん)을 잃었다.) 그녀에게 고양이는 그리는 것만으로도 화면이 온화해지거나 긴장감을 주는 중요한 주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티스트 친구들을 모아서 고양이작품 투성이 전람회를 해보고 싶다”며 고양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시구로 아야코는 현재 올해 여름에 있을 그룹전, 겨울에 있을 개인전(물론 두 전시 모두 요괴가 테마)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토트백이나 티셔츠, 손수건 등 손수 만든 일러스트 상품도 함께 판매할 예정이다. 그는 “이제 아이도 있다”며 “앞으로는 요괴 외에도 일상적인 소재를 많이 다룰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