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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하늘 위의 엔터테인먼트 기내지 편집 디자인

2007-09-11

해외 출장이든 여행이든 비행기 안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영화, TV 프로그램, 음악, 게임 등 각 항공사에서는 승객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무료로 제공되는 기내지 역시 빠질 수 없는 읽을거리, 볼거리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기내지는 문화지, 영화 편성표, 그리고 면세품 카탈로그로 나눌 수 있다. 기내지 역시 일반 정기 간행물처럼 흥미로우면서 유익해야 하며, 해발 2만 피트 위를 날고 마하의 속력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의 제약도 감안해서 만들어진다.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기내에서 보여주는 영화나 프로그램이 비슷한 상황에서의 콘텐츠 차별화다. WAEA가 주최하는 ‘에비온 어워드(Avion Award)’ 수상작을 포함한, 항공사의 기내지 디자인의 특징을 소개한다.

글 │박경식
에디터 │ 전은경
사진 │ 박건주

원화의 강세와 주 5일 근무의 정착으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해외를 찾는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자리를 찾고, 짐을 올린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마도 좌석 앞 주머니에 꽂혀 있는 기내지를 꺼내보는 일일 것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들의 기내지는 그 나라의 특징만큼이나 다양하다. 판형•인쇄•색감 등 디자인 요소뿐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접근으로 영화, 여행, 각종 엔터테인먼트 등 엇비슷한 콘텐츠를 차별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기내지가 지니는 독특한 특징은 기내에서의 규제와도 관련이 있다. 각 기내지의 질량은 항공사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 질량의 규제가 기내지의 판형, 종이 그리고 쪽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비슷비슷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거의 정해진 판형으로 다른 항공사에서 발행하는 것과 다르게 보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자국인만 보는 잡지가 아니다보니 그야말로 글로벌한 감수성이 필수다.

기내지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엔터테인먼트 편성표가 나오는 기내 엔터테인먼트(In-Flight Entertainment) 잡지로 이달의 영화, 단편, 오디오, 게임을 소개하고 그런 콘텐츠에 어울리는 기사들을 함께 준비한다. 이 기내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은 다음, 안전벨트를 착용한 후에 처음으로 찾는 잡지이다. 두 번째는 문화지로 각 항공사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하는 ‘문화 다반사’ 잡지이다. 여행 명소, 여행 팁 등 여행 및 문화 관련 기사가 수두룩하다. 이는 장시간 비행할 때 모든 영화를 본 다음 지루해 죽을 것 같을 때 들춰보는 잡지다. 마지막은 우리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면세품 잡지로 말 그대로 착륙하기 한 시간 전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판매하는 면세품 카탈로그다. 물론 이 세 종류의 잡지는 각 항공사 실정에 따라 각각 별개의 기내지로 제작되기도 하지만, 두 종류나 또는 세 종류 모두를 한 권에 묶기도 한다. 싱가포르 항공은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잡지를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로 구분해서 발행하기도 한다. 버진 항공은 주마다 영화, TV, 오디오, 문화 순의 주간지 형태로 기내지를 발행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내지를 클래스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일등석, 비즈니스석 그리고 일반석에서 보는 프로그램도 다르지만, 기내지 자체가 다른 것이다. 대통령이 타는 비행기의 기내지도 특별 제작된다. 참고로 이번에 소개되는 기내지에는 이런 ‘특이한 케이스’와 면세품 잡지는 제외했다.

기내지들 대부분은 소식지 같기도 하고 주간지 같기도 한, ‘정체성’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기내지만의 ‘맛’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미있는 것은 에어프랑스가 이런 ‘단점’을 장점으로 치환했는데, 단순한 기내지에 그치지 않고 여성지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에어프랑스 마담(air france madam)> 이라는 별도의 기내 패션지를 발행해 프랑스 항공사만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누군가가 두고 내린 패션지로 착각할 만큼 <보그> <바자> <엘르> 등 기존 패션지와 흡사한 스타일이다. 최근에 CI를 바꾸고 새로운 탈바꿈을 시도한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지도 디자인적인 ‘독특함’으로 시선을 끈다. <아시아나 엔터테인먼트> 는 통합된 디자인 형태로 묶기 위해 노력한 바가 크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타이포그래피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점이 때로는 어색해 보이지만 분명 기내지 분야에서 꼭 해볼 만한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튼튼한 재원과 꾸준한 성장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기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이야말로 틈새시장이라 할 수 있다. A380의 등장으로 또다시 ‘하늘을 나는 도시의 꿈’에 우리가 가까워졌으며, 점점 더 많이 보급되는 기내의 광속 인터넷으로 인해 곧 ‘콘텐츠의 한계’를 극복할 조짐이 보인다. 이미 몇몇 항공사는 실시간 인터넷을 상공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조만간 모든 기종에 보급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비슷비슷한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각 항공사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객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콘텐츠란 영화, TV 오락 프로그램 외에 게임, 뮤직 비디오, 실시간 뉴스, 화상 채팅 등으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며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콘텐츠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연재소설, 만화, 시사 주간지 등이 승객의 취향에 맞게 제공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차별화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보고 항공사를 선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기내지에 대한 ‘정의’가 재조명되면, 그에 따른 디자인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잡지를 차별화하는 주된 요소는 물론 콘텐츠이다. 얼마나 참신하고 유용한 기사가 실려 있는지로 좋고 나쁜 잡지가 판가름 난다. 기내지는 그에 더해 다른 장애물이 많다. 형태나 질량의 규제 말고도 선정적인 내용, 추락 사고, 화재, 지나친 폭력은 물론 소개되는 영화나 여행 명소에 대해서는 신랄한 리뷰나 코멘트가 거의 불가능하다. 즉 콘텐츠가 자극적이거나 아주 새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참신한 디자인’이 기내지의 승부수다. 그러나 기내지의 대부분은 독특한 디자인보다 안전하고 익숙한 레이아웃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인포메이션 그래픽스에 가까운 정보 디자인 페이지들이 아마 기내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기내지에서 흥미롭게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정보 디자인’이다. 엔터테인먼트 잡지의 프로그램 편성표, 문화 잡지의 각 항공사 노선도, 기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입국 절차, 공항 안내도, 도표, 다이어그램 등 복잡하고 많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꼭 살펴보아야 한다. 항공사마다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고 엇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공사별로 접근부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지도에 표시하는 노선은 크게는 화물, 그리고 여객선으로 나뉘지만 도시마다 표시하는 방법, 그리고 요즘은 항공사들이 협력해서 서로의 노선을 공유•연결하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선도 다르게 표시한다. 무심결에 지나치는 정보지만 많은 고민이 수반되는 작업이다. 지도, 도표, 인공위성 사진이나 전기회로 같은 복잡한 패턴에 관심 있는 디자이너라면 자세히 살펴보고 넘어갈 부분이다.

모든 잡지가 그렇듯이 대부분의 기내지 역시 표지에 승부를 건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보면, 한번쯤은 거들떠볼 수밖에 없는 잡지지만 당연히 차별화되길 바라고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잠시 기억되길 원한다. 그런 이유로 화려한 이미지는 물론 별색 사용, 엠보싱 같은 특수 인쇄까지 총동원한다. 엔터테인먼트 잡지의 경우 그 달의 ‘미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표지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영화라도 각각의 기내지마다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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