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4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었다. 95년을 기점으로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돌파하는 경제적 성과와 세계화, 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자유로워진 외국과의 소통과 넘처나는 정보로 인해 일상의 경험이 넓어지고 소비영역도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이에 고급화, 개성화, 다양화된 새로운 소비 태도가 대두되고 기업에서는 비용을 높이지 않으면서 개별화된 욕구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 전략과 생산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러한 변화는 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 상품에서 상품기호, 교환가치에서 기호가치로 변화하는 새로운 소비문화 시대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졌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새로운 소비 사회에서 사회적 의미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고 이미지화하는 일상생활에서 파생되었다. 개인의 선택과 욕망을 무엇보다도 우선시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술적으로 계획된 평균적인 디자인 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필요에 따른 세분화된 상품 유형을 요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디자인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들이 복잡하고 다양해졌으며 기능과 형태에 대한 순수성의 개념을 넘어서는 디자인이 출현했다. 표준화된 상품으로 대량소비를 하는 동질적인 소비자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사용자의 개별적인 생활양식을 대변하는 포스트모던적, 포스트포디즘적 상품이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시대로 이행해 갔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디자인은 기능적 형태보다는 기호로서의 가치를 갖는 상징적인 성격이 중요했다. 개인의 생활 스타일과 취향은 그가 선택한 상품의 스타일로 대변되며, 소비 행위를 결정했다. 삶의 초점이 소비에 맞춰지면서 유행과 같은 새로운 움직임을 재빠르게 수용하며 감각적인 만족에 탐닉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비를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차별화된 소비양식을 통해 타인과 구별했다. 이러한 소비에 담긴 상징은 사회구성원이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의미체계 안에서 통용되며, 삶의 기준으로 확대되었다. 소비는 개인의 정체성, 가치, 기호, 계층 등을 표현하는 사회적 기호로 이 시대의 주된 특징을 이루었다.
특히 자동차는 소유자의 사회적인 지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기호이며 어떠한 자동차를 탈 것인가의 문제는 자신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의미 있는 행동이 되었다. 운송수단이라는 측면보다 소유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며, 속도와 관련된 쾌락의 원천이기도 하는 상징적인 형태로의 소비와 더욱 밀접해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가족용의 일반적인 세단이 점차 줄어들고, 디자인과 이용가치 면에서 유형이 세세하게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카브리오, 로드스터, 4륜구동의 오프로드카, 도시형 SUV, 미니밴, 캠핑카, 픽업 등의 차량들이 확산되었고, 하나의 차종도 고급형, 기본형, 스포츠형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SUV와 미니밴 등의 차량을 통칭하는 RV(recreational vehicle)계열은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차량으로 자리 잡았고, 기능과 스타일을 혼용한 새로운 차종도 생겨났다. 이러한 차량의 유형 변화는 기능적인 용도보다는 소유주와 자동차가 서로 잘 어울리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사람들의 개별적인 삶에 밀착된 자동차는 유형의 세분화만이 아닌 심리적이며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새로운 스타일로 나타났다.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의 감정적인 영역을 이입하여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 형태를 시도하며, ‘감성 디자인’이라는 말을 스타일링의 최우선 개념으로 올려놓았다. 일부 자동차회사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찾기 위해 필립 스탁(Philippe Starch), 마크 뉴슨(Marc Newson)등 제품디자이너로 유명한 사람들을 끌어 끌어들여, 그들과 공동으로 개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컨셉카를 개발, 발표하기도 했다. 자동차 디자인은 기능과 기구 역학적인 내용물을 포함해야 하는 측면에서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경향은 한계를 가졌을지라도 이들의 참여는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기존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해외에서 다른 분야 전문가의 지원을 받았던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자동차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여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95년 처음으로 현대자동차에서 시행한 이 공모전에는 환경보전, 저공해 등의 사회 문제를 반영하고 기존의 기술과 디자인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특하고 재미있으며 초미래적인 컨셉 스타일이 다수 출품되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거치며 자동차 디자인은 새롭고 혁신적이며 개인적인 스타일에 집중되었고, 은유적, 상징적, 역사적이며 재미와 유머가 이입된 과장된 형태들이 유행했다. 이러한 형태들은 레트로 스타일, 펀 스타일, 뉴엣지 스타일, 올가닉 스타일 등으로 불리며 이 시대의 스타일을 주도했다. 자동차 자체의 기능에 충실하고 사용편의성을 극대화하며 더불어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결합하여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디자인이 자동차의 성공을 좌우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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