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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새로운 자동차 시대를 열다

2011-05-17


현대자동차가 최초의 고유모델 개발을 위해 이탈디자인에 요구한 디자인은 ‘배기량 1,200~1,400cc, 좌측 운전형태의 5인승 4도어 세단’이었다. 이 조건은 신차의 스타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소형차의 일반적인 규격이었다. 이탈디자인에 파견되어 포니의 개발에 참여했던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은 당시 현대에서는 고유모델의 스타일이 어떠해야 한다는 방향이나 생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포니의 디자인은 쥬지아로와 스타일에 관한 협력 관계를 맺은 후 전적으로 그에게 맡겨졌고, 1975년 5인승 4도어 패스트백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글 | 이옥분 디자인학 박사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포니의 디자인은 해외업체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신차를 개발하는 현실에서의 한계와 열망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스타일의 개발에 영향을 미치며 포니의 최종 모습을 결정했다. 쥬지아로는 자신의 고유 스타일로 명성을 가져다준 폭스바겐의 골프를 참고하여 포니 디자인을 진행했다. 골프로 인해 대중화되고 있던 소형차의 디자인은 전륜구동방식 설계와 상자형의 해치백 스타일로 연비가 좋고 실내 공간이 넓은 구조였다. 전륜구동방식은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차체 앞쪽에 몰아넣어 더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 차체의 무게를 줄여 연비를 높여주는 설계였으며, 더불어 해치백도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뒷유리창과 데크를 연결하여 크게 열리는 문으로 설계함으로써 공간의 확보와 유동성을 높여 주는 스타일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주목받고 있는 쥬지아로에게 디자인의 전권을 맡기며 그를 통해 최고의 고유모델 신차가 탄생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포니는 이러한 소형차의 최신 트렌드를 완전하게 반영할 수는 없었다.


자동차는 내부 기계 장치의 구조에 따라 전반적인 외관의 형태가 결정되기 때문에 포니의 외형은 미쓰비시로부터 지원 받은 메커니즘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포니의 차체를 구성하는 기본 골격과 엔진, 트랜스미션 등 주요 기술은 렌서(Lancer)에 사용된 것으로, 랜서는 후륜으로 구동하는 3박스 구조(엔진룸, 실내, 트렁크룸으로 분할된 공간구조)의 노치백(객실과 트렁크 공간이 분리되고 트렁크가 계단식으로 각을 이룬 형태) 세단형이었다. 랜서의 설계를 이전받은 포니는 전통적인 자동차의 공간 구조로 설계되었고 따라서 포니의 실내는 기존 차량과 같이 비좁고 활용도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매커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에서만큼은 최신 트랜드의 적용점이 고려되었다. 포니의 뒷모습은 일반적인 노치백 세단의 형식이 아닌 해치백 스타일과 유사하게 설계되어 첨단의 이미지가 반영되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포니의 뒷모습은 뒷유리와 데크가 하나로 연결된 해치백 스타일이었지만, 사실은 분리되고 뒷유리가 고정되어 있으며, 해치백보다 완만한 경사로 길게 늘어진 패스트백 스타일이었다. 결과적으로, 포니 디자인은 전통적인 실내구조와 후륜구동방식을 유지하면서 외형적으로는 최신의 트랜드인 해치백과 유사하게 설계된 것이었다.

이러한 포니의 디자인은 쥬지아로의 최신 해치백 스타일과 미쓰비시의 일반적인 세단 기술이 혼합된 것으로, 현대는 미쓰비시로부터 낡은 기술을 이전 받았을지라도 외양에서는 최신의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첨단과 기존의 중간지점에서 포니의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었다. 포니는 최신 스타일을 도입한 한국 최초 고유모델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현대자동차는 첨단 디자인을 이루어 낼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고, 이러한 사실은 포니가 여러 해외 업체로부터 이전 받은 기술을 혼합하여 태어난 현실에서 그 한계는 명백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포니의 패스트백 스타일은 현대자동차의 최신 디자인에 대한 이상과 기존 기술에 의존하는 현실과의 간극에서 모색한 타협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포니의 패스트백 스타일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였으며, 해치백 스타일은 79년 포니I의 3도어 차량을 개발하면서 처음으로 시도되었고, 82년 포니II에서 2박스 해치백 스타일의 외양을 갖추게 되어, 실내 공간이 넓어졌고 거주성도 나아졌다. 85년 엑셀에 이르러 소형차의 최신 디자인인 전륜구동과 해치백 스타일을 완전하게 반영하여 연비와 공간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한편, 처음으로 선보인 포니의 스타일은 대중에게 선뜻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당시의 사회적 통념상 자동차는 부의 상징인 고급스러운 물건이었고, 전통적인 노치백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포니가 출시되기 이전에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차들은 코로나같은 노치백 스타일이었고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자각처럼 각진 형태의 패스트백 스타일로 출시된 포니는 “꽁지 빠진 수탉”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낯설게 여겨졌다. 둥글둥글한 선과 노치백형의 차에 눈이 익은 사람들은 포니 스타일을 “무릎이 다 보이는 미니 스커트를 입은 모양”이라 외면하고 구매를 꺼려했다. 그러나 포니가 한 두 대씩 팔리기 시작하면서 성능이 좋다는 평을 듣게 되었고, 이전과 달리 감색, 파란색, 주황색 등으로 다양해진 색채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 스타일이 대중에게 날씬하고 참신한 모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능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포니의 판매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해치백스타일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동차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시대에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취향은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가 새로운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는 환경에서 취향은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82년 출시된 포니II의 광고 카피에는 “포드의 그라나나, 도요다의 세리카 등의 앞면 스타일과 미라쥬, 피에스타, 호라이즌 등의 해치백 스타일로 하여 주행 시 공기저항을 극소화시킨 디자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광고는 해치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들의 새로운 스타일로 유행하고 있으며, 공기저항을 감소시켜 속도와 성능을 향상시켜주는 디자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광고를 통해 해치백 스타일을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하고, 포니가 그러한 최신 기술의 조류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반적인 고급차의 관념을 벗어나 쥬지아로가 제시한 패스트백을 수용한 현대자동차의 결정은 과감하고 진취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일반사람들이 자동차 구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성능과 가격이었고, 자동차가 부족하고 종류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의 취향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상 포니는 1973년 중반 프로토(prototype, 디자인 원형)타입을 개발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졌고, 그만큼 부족한 면도 많았다. 하지만 그 당시는 정주영회장이 “엔진만 좋으면 좋은 차”라고 할 만큼 고장 없이 달려만 주면 만족스러운 시대였고, 사람들에게 스타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편, 스타일보다 자동차 자체에 집중되는 시대였을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을 도입한 현대의 결정은 한국자동차산업의 발전적 모델을 이룬 매우 진취적인 결단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적인 시장상황과 조건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동차가 실용적인 도구로서 일상화되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며, 대중화를 이끌 선두주자로서의 포니를 기대하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현대는 포니의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자동차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 참고문헌
강명한,『한국차,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우사, 1998
강명한,『포니를 만든 별난 한국인들』, 정우사, 1986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50년사』, 2005
「교통신문」, 1982/3/25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과의 인터뷰, 2009.12.2
박종서 전 현대자동차디자인연구소장과의 인터뷰 200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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