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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 리뷰

디자인은 ‘뚝딱’이 아니라 ‘뭉근’ 하게

나태양(tyna@jungle.co.kr) | 2015-03-27


바야흐로 ‘오디션 춘추전국 시대’라 하겠다. 음악, 춤, 요리, 패션, 아트 등 재능을 요하는 모든 분야에서 피 튀는 경쟁이 벌어지고, 그 과정은 치열하고 혹독할수록 재미있다. <더 메이커스> 역시 서바이벌의 급류에 속도를 더할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더 메이커스>에는 여타 오디션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유례없는 ‘대국민 산업디자인 오디션’이라는 점, 그리고 ‘스타’가 아닌 ‘디자인’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디자인 공모전의 전 과정을 TV 브라운관에 오픈한 셈이다.

에디터 ㅣ 나태양(tyna@jungle.co.kr)
 

디자인 오디션 <더 메이커스>의 이면에는 어떤 과정이 숨어 있을까. <더 메이커스>의 기본 구조는 ‘참가자’와 ‘클라이언트’, ‘멘토’로, 이는 삼각 구도를 이룬다. 클라이언트가 미션을 주면 참가자들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멘토는 참가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상용화 가능한 디자인으로 발전시킨다. <더 메이커스>의 첫 번째 클라이언트는 서울시. ‘I♡NY’이나 ‘I am sterdam’처럼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서울시의 대표 아이콘을 찾는 것이 그들이 부여한 미션이다. 도시의 상징성을 담은 상품 개발이 목표인 만큼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김홍탁(플레이그라운드 대표), 아이덴티티&브랜딩 전문가 오기환(인피니트 대표),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치호(치호앤파트너스 대표), 콘텐츠 프로듀서 이나미(스튜디오 바프 대표), ‘뽀로로’를 기획한 아트디렉터 우지희(오콘 상무) 등 관록 있는 현업 전문가들이 멘토로 참여했다.

3월 10일 오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나눔관에서는 <더 메이커스>의 본선 심사가 열렸다. 본격적인 인큐베이팅 과정을 시작하기 전, 멘토 당 한 팀의 멘티를 선발함으로써 총 5팀의 파이널리스트를 결정하게 된다. 1월 중순부터 7주간 작품을 공모한 결과 590명 이상이 지원했고, 30대 1에 달하는 서류 심사 경쟁률을 통과한 20팀만이 이날 본선 심사대에 올랐다. 오픈 크라우드를 지향하는 <더 메이커스>의 공모 철학은 ‘아이디어를 가진 누구나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심사장 대기실도 다양한 군상으로 붐볐다.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인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프레젠테이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가영(女, 28세) 개인 지원자

Jungle : 자기소개 부탁한다.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스토리를 가진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고, 지금은 영국 구매대행 쇼핑몰에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더 메이커스>에서 연락을 받은 게 지난 목요일(3월 5일)이다. 오늘 아침 막 한국에 도착해서 정신이 없다(웃음).

Jungle : 특별한 지원 계기가 있는지.

페이스북에서 <더 메이커스> 홍보 포스트를 보고 지원했다. 20대 초반에는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는데, 당시 기념품 가게에서 근무한 경험을 계기로 브랜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관광 상품은 평소에도 줄곧 생각해온 콘텐츠라 큰 고민이 필요 없었다.

Jungle : 본인의 디자인 시안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느꼈던 서울의 장점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저렴한 교통비, 편리한 생활, 맛있는 음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어떻다’기보다는 ‘그래서 서울이 좋다’는 방향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THANKSEOUL’이라는 슬로건 자체도 ‘서울 참 살 만한 도시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쉬운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다.

팀JJ(서지민(女, 19세), 이재하(男, 16세))

Jungle : 최연소 참가자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등대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다. 학교 선후배 관계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는데 공모전까지 함께 참여하게 됐다. 서지민은 패키지 디자인에 관심이 있고, 나(이재하) 같은 경우는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유튜브에서 <더 메이커스> 광고영상을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지원을 결심했다. 어쩌다 보니 본선까지 진출하게 돼 얼떨떨할 따름이다.

Jungle : 본인 팀의 디자인 시안에 관해 설명 부탁한다.

지금 서울의 아이콘이 ‘해치’인데, 해치를 보면서 품은 의문은 ‘해외 관광객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서울을 떠올리면서 해치를 연상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해치는 관광객들에게 기억될 만한 특색이 약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활용했다. 한강, 남산타워, 경복궁, 63빌딩 등을 일러스트화해서 서울의 한글과 영자 표기에 자모음으로 사용했다.

Jungle : 향후 진로에도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재미있는 것을 좇는 중이다.

팀119(김혜원(23세, 女), 안채원(23세, 女), 허태구(23세, 男))

Jungle : 지원 동기는 무엇이었나.

허태구의 전공이 경영학이다 보니 아무래도 발표를 할 기회가 많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시각적인 표현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PPT 템플릿을 무료로 배포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블로그에서 우연히 <더 메이커스>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Jungle : 본인 팀의 디자인 시안에 관해 설명 부탁한다.

‘I♡NY’을 예로 들자면 굉장히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는 ‘I♡NY’처럼 ‘돌직구’를 던지는 디자인이 없었던 것 같다. 남산을 아이콘으로 사용하거나 상징적 동물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서울의 이미지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디자인’을 콘셉트로 잡았다. ‘매력있서울(GORGEOUSEOUL)’, ‘맛이있서울(DELICIOUSEOUL)’ 등 언어유희를 이용해 내외국인 모두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Jungle : 프로덕트 디자인의 경우 20대를 주로 겨냥한 것 같다.

그렇다. 텀블러, 휴대폰 케이스처럼 가볍게 휴대할 수 있는 제품들이 대다수다. 20대들은 유머러스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를 즐기지 않나. 하지만 젊은 세대만 타깃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도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 메이커스>는 서바이벌 자체보다 인큐베이팅 과정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에 멘토들은 디자인의 완성도보다는 아이디어의 발전 가능성을 헤아려 멘티 선정 의사를 밝혔다. 본선 심사 현장에서 한 팀에 주어진 프레젠테이션 시간은 단 5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참가자는 5분 이내에 자신만의 그래픽 이미지와 상품 아이디어로 멘토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다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프레젠테이션 후에는 질의응답 세션이 시간제한 없이 이어졌다. 멘토들은 디자인의 상품화 가능성, 그래픽과 프로덕트 간의 유기성, 프레젠테이션의 논리성 등을 따져가며 후보자들을 날카롭게 평가했다. 멘티 선발도 본선 심사 당일 이루어졌다. 멘토링의 목표는 아이디어를 상품화 직전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3D 프린팅을 활용한 프로덕트 실현화를 포함한다.

5인의 멘토와 5팀의 멘티가 다시 모인 것은 지난 3월 23일,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중간 심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간 심사는 각 파이널리스트들이 진행 상황을 발표하고, 멘토들의 평가와 조언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하게끔 이끄는 자리다. 본격적으로 개시된 멘토링 덕택에 프로토타입도 두드러지게 정돈되었다. 어떤 후보자들은 기존 아이디어를 개진시켜 온 반면, 초안을 뒤엎고 새 제안을 선보인 후보자들도 눈에 띄었다.

열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5인의 멘토는 개별 인터뷰를 통해 중간 PT를 관전한 소감과 멘토링에 임하는 자세 등을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각기 다른 개성의 멘토들이 공유하고 있는 멘토링 철학이었다. 이들은 모두 ‘순위 매기기’를 지양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 무게를 실었다.  

김홍탁 멘토는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짝이는 키워드나 아이디어에 집착하다 보면 최초의 생각에서 탈피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원자들의 이 같은 태도가 근본적으로는 오디션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촉박한 일정 내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환경이 점진적인 단계 밟기를 방해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멘티가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도록 돕는 멘토링을 지향하는 만큼, 시간을 두고 콘셉트를 보완해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창작물에 ‘완성’이란 없다. 마감 전까지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채워나갈 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혁신(revolution)도 진화(evolution)가 거듭 축적된 결과다. 중간 심사까지는 그 진화의 한두 단계를 본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수 없는 과정이 더해져야 한다.”

“초기 작업들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했다. 멘토링을 거치며 멘티들 실력도 일취월장한 것 같다. 멘티들끼리 중복되는 아이디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마다 다르게 전개해 나가는 걸 보니 흥미진진하다.”

중간 심사를 마친 우지희 멘토의 소감이다. 우 멘토가 중간 PT를 평가하면서 비중 있게 고려한 점은 소비자, 즉 ‘서울 시민’의 시각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로고와 디자인을 접하는 소비자들이 호감을 느껴야 좋은 디자인이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뛰어난 콘셉트에 훌륭한 설명이 뒷받침된다 해도, 워딩이나 로고 자체가 거부감을 일으킨다면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지론이다. 이 때문에 그는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전략을 함께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멘티와 함께 최종결선을 준비하는 우 멘토의 목표는 예상치 못한 순간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제품 발굴. 그는 ‘상품화가 이 팀의 필살기’라며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을 밝혔다.

“다들 본질적인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디자이너들도 작업하다 보면 본질 추구를 방해하는 욕심들을 걷어내야 할 때가 있다.”

이나미 멘토는 참가자들이 중간 심사에서부터 결과를 내려 급급했던 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간 심사 단계에서는 관점을 다양하게 넓히고 문제의식을 발견하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멘토가 더불어 강조한 것은 ‘가능성 열어두기’의 중요성. 그는 “멘토링은 멘토가 훌륭한 해답을 지니고 있고, 멘티가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숨바꼭질이 아니”라며,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디자인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으니 결론을 닫아두고 시작하지 말라는 의미다.

멘토와 멘티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이 멘토에게는 멘토링 또한 일종의 ‘관계 디자인’이다. 그는 멘티가 최대한의 가능성을 발휘하도록 서로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멘토의 역할이라고 표현했다.

“경쟁이 성장을 만들어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성숙해 나간다면 전체적으로는 더 큰 결실이 아닐까 싶다.”

한 달여의 멘토링 과정이 끝나면 5팀의 파이널리스트들은 발전된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최종 심사를 거치게 된다. 우승 디자인은 멘토 5인, 심사위원단, 일반인이 공동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심사위원단 대다수는 전문적 시각을 지닌 원로급 인물들로 구성했다. 김성천(CDR어소시에이츠 대표), 정일선(소디움파트너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경미(㈜사이픽스 대표), 정석원(X4디자인브랜딩 대표), 김현(디자인파크 대표), 손혜원(크로스포인트 대표)과 서울시 도시브랜드추진위원회 대표 1인, 시민대표 1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50여 인의 일반인들도 우승자 투표에 동참할 예정이다.

<더 메이커스>의 이자은 PD는 “<더 메이커스>는 오픈 크라우드를 접목해 참가자, 클라이언트,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 디자인 상품을 메이킹해 나가는 방송이다. 디자인은 뭇 사람들이 생각하듯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동반되는 과정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청자에게는 한 가지 미션에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간접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거친 아이디어가 정제된 디자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궁금하다면 <더 메이커스>에 주목해보자. <더 메이커스>는 서울디자인재단이 후원하고 SBSCNBC가 제작하는 2부작 리얼리티 오디션 다큐멘터리로, 오는 4월 말(21일, 28일) 방영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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