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현 | 2003-08-09
안녕하세요, 박희현입니다.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많은 관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여러분께 우선 감사 드립니다. 특히 "Q&A"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은 저도 관심있게 읽고 있습니다. 더러는 제가 답변을 드리기에 쉽지 않은 질문들도 있지만,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로 인해 다른 분들의 질문과 답변을 읽는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거리로 이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번 이야기는 "유학 이야기: 4"가 아닌 "유학 이야기: 3.5"입니다. 그렇습니다. 약간은 다른 성격을 가진 글인데요, 여러분께 유학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전해드리는것이 목적이 아닌, 제 주관적인 유학에 관한 생각들을을 한번 얘기해 볼까...합니다.
졸업 후,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난 이후에 많이 받게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특히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에 아주 많이 받았던 질문인데요, 그것은: 제가 5년 전 결심했던 유학 결심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냐... 하는 질문입니다. 어찌보면 우문같을 수 있으나 그 질문을 했던 당시 사람들이, 어느정도 유학 생각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되어서 성의껏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질문에 전, 늘 상당히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제 스스로가 유학 생활을 통해 참 많은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의미하는 배움이라 함이 학교에서 얻은 지식만을 뜻하는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통해 습득한 배움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생각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배움들을 통해 "사고하는 방식"이나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등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
제가 얻은 소중한 배움들을 하나하나 나열할 순 없겠지만, 그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되는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자신감"을 들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신감"이라 함은 성공적(?)으로 유학 생활을 끝냈다는 투의 자만도 아닐것이며, 제 디자인 실력이 남다르게 뛰어나다는 식의 오만함도 아닙니다. 제가 의미하는 자신감은 (그 의미 그대로) "나 자신에대한 굳건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이것은 아무리 큰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수백만원짜리 가방(!)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 하면서 많은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 배울게 많겠구나.., 혹은, 한번 살아 볼 만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과 판단을 (설령, 자신의 기준과 판이하게 다르다고 해도) 그대로 받아드리며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한참 유행이 지난 옷을 걸치고 다녀도,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시내를 활보해도, 다 늦은 나이에, 말도 관습도 다른 나라에 와서, 큰 돈 쓰며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그 쉽지 않았을 결정을 격려하고 모든것을 그 사람만의 독특함으로 인정할 줄 아는 이들의 생각에서 전 펀안함까지 느낄 수 있더군요. 나이 들어서 유학 간다고, 남들 평범하게 사는것처럼 살 지 않는다고, 얼마나 대단하게 성공하겠다고 나이들어 고생을 사서 하냐며...걱정 반, 비웃음 반인 말들에 익숙했던, 지나치게 간섭받던 생활에 반한 새로운 생활은 참으로 신선했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누누히 말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유학하는 친구들끼리 자주 하던 말이 있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우리는 "시민권자"이지 않느냐...하는 얘기입니다! 외국인 신분으로 벼텨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 상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는 말입니다. 이쯤해서 제가 당부하고 싶은 얘기는, 절대로 "한국을 떠나기 위한 유학"이나 "무조건 미국에서 체류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학"을 피하시라는 겁니다. 건강 잃고, 돈까지 낭비하는 가장 쉬운 길입니다!!!
제가 "유학 이야기를 통해 전해드리는 얘기들이, 어찌보면 제 무용담을 떠들어대는것 처럼 들리실 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분이 "Q&A" 페이지에 올리신 글을 보니, 저를 성공한 유학생으로 비유하시던데요..., 유학의 목적이 다양할 수 있듯, "성공한 유학생활"의 기준도 개개인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대우 좋은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것을 무조건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듯,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 디자인 선진국에서의 배움을 한국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경우를 두고 실패한 유학이였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어제 저녁엔 YoungChu라는 친구와 함께 조그마한 French Bistro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약 4시간 가량의 저녁 식사를 통해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5살에 미국으로 이민 온 그 친구와는 약 2년 전, 제가 근무 하던 회사에 그 친구가 3개월간 freelancer로 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일한 한국인이던 제게 많은 관심을 갖아 주어서 친해졌고, 지금껏 마음 열고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답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지만 그래도 (독학으로) 읽고 쓸 줄은 안다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그 친구와 어제는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 친구가 본 한국의 디자인은 큰 특징이나 매력은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가끔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 방송이나 잡지등을 보기도 하는데,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한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일본의 디자인이 이곳 사람들에게 독특한 개성의 매력있는, 좀처럼 모방할 수 없는 디자인으로 인정되는것에 비교하자면 한국인으로썬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죠?
YoungChu라는 친구가 친척분들을 만나 뵈러 (딱 한번)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던 이 친구에게, 친척분들이 전공을 물어보시기에 말씀드렸더니, 혀를 차시며 공부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고 하시며 빨리 시집이나 가야겠다고 하셨답니다. 그 친구는 한참을 그 이유를 몰라 궁금해 했다고 하는데...
요즈음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기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면의 재교육을 계획하고 있고, 이곳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경력 쌓아가는 많은 유학생들이 있는것을 생각 해 본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들 세대쯤엔 훨씬 나은 디자인 문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유학 이야기"에서 너무 벗어났나요?
...
제 가까운 친구들은 제 "유학 이야기"들을 보고 조심스레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하면 무조건 다 된다"라는 식의 글들이 자칫 무모한 유학을 유도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제 솔직한 얘기들이 좋은 간접 경험으로 여러분께 다가갈 수 있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건 자기 자신인만큼, 스스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하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