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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졸업작품전, 이젠 해외에서 하자.

문주영 도쿄통신원 | 2006-04-10



미술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졸업작품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며칠 밤을 새는 것은 기본이며, 전시회를 마치고 마지막 평가가 있을 때까지 그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몇 년간 배웠던 것의 결실이기 때문에 학생도 교수도 함께 바쁘다. 최근에는 온라인전시로 다른 대학의 전시회 관람이 쉬워진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졸업작품전TETSUSON을 살펴보기로 하자.

취재 | 문주영 도쿄통신원(mm00nn@naver.com)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의 학교들은 2~3월이 되면 졸업작품전으로 바쁘다. 워낙 학교도 많고 좋은 전시회도 많지만, 특히 눈여겨 볼만한 전시회가 있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TETSUSON2006이 그것이다. 지난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요코하마에서 있었던TETSUSON2006은 전국합동 졸업작품전으로 디자인을 전공하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일본 최대의 졸업작품전이다. 참가비를 내고 미리 접수만 한다면 학교의 구분도 없고, 지역의 구분도 없다. 흥미롭지 않은가.

특히 올해부터는 해외 학생들도 참가가 가능해져서 그 규모가 더욱 커졌는데, 호주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로 일호간의 교류30주년을 기념하는 정식이벤트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전체 193명(일본 : 169명 , 오스트레일리아 : 24명)의 작품 중에 호주학생의 작품은 41점이었다.

전시회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요코하마에서 열렸다. BankART1929와 BankART Studio NYK 두군 데서 이루어진 전시는 전시장만으로도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역이나 마차도역 어디라도 좋다. 우선 마차도역에 내리자 역에서부터 전시회의 시작을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포스터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계단의 끝에서 전시장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전공의 디자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즐거움이었다. 더욱이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전시장의 넓이가 제한되어있지 않아서 공간의 자율성이 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이 디자인 한 실물크기의 포장마차를 내부에 전시하기도 하였다.

작품들은 패션, 공예, 제품, 가구, 그래픽, 건축, 아트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디자인과 예술이라고 붙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출품이 되었다. 더욱이 공모전이 아니라 졸업작품전이기 때문에 학생만이 가진 순수함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여러 참가자들 중 이번 전시회에 단체로 참여했던 동북예술공업대학의 프로덕트디자인 학과 학생들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관람자의 시선을 끌기도 하였다. 가끔 같은 학교의 학생들은 비슷한 분위기로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가 독립적인 색깔로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청바지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금속디자인 제품들과 슬리퍼라는 소재를 가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든 작품도 유머와 재치가 있었다. 학생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실용성보다는 창의성에 더 비중을 둔 작품들이 많았는데 특히, 기모노 수납가구나 지진과 같은 재해발생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식품저장용기 등은 우리나라의 졸업작품전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만의 특징이기도 하였다.






전시를 보고 있자니, 서서히 어둠이 밀려온다. 큰 유리창으로 인해 따로 조명을 설치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광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갤러리의 내부는 창 밖의 어둠으로 인해 함께 어두워져 갔다. 그 갤러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서서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한 곳이 남아있지 않은가.



바닷가 근처의 BankART Studio NYK를 찾아가기 위해 갤러리를 나섰다. 그러자 방금 내가 나온 갤러리가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갤러리 이야기는 뒤에 가서 하도록 하자. 대로를 걷다 보니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세탁소에서 사용하는 옷걸이들을 사용하여 만든 터널, BankART Studio NYK의 상징물이기도 한 옷걸이터널을 통과하면 바다가 보이고 그 옆으로 커다란 창고가 보인다. 겉만 보면 도저히 갤러리라고 믿기지 않는 그 곳에, 학생들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BankART1929에서보다는 규모가 큰 작품들이 많이 전시 되어 있었다.




숲속에 설치를 해서 손쉽게 나무를 탈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은 학생의 천진함을 엿볼 수 있었고, 어떤 곳에서도 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텐트는 모두 분리가 가능하여 장난감 블록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직접조명과 간접조명의 효과를 동시에 노리며 그것 자체로도 훌륭한 조형미를 가졌던 조명 역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일본 집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문을 곧 벽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그러한 특징을 살려 벽이었던 것을 문으로 사용하고 그 문을 다시 벤치로 사용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작품은 간단하면서도 좋은 아이디어이면서, 실용성도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1층의 작품들을 다 보고 감상하기에도 벅찼지만 아직 2층이 남아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이곳엔 사람들이 많았다. 갤러리 내에 카페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디자인작품들이 특히 많았으며 아무리 봐도 끝이 없는 작품들로 이것이 전국 아니 국제졸업작품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쌓여진 책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은 간단하면서 실용적이어서 명쾌하기도 하였고, 겉과 속을 두 가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숨긴 Nanase Suzuki씨의 ‘이면성에 관한 연구’라는 작품은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치마를 뒤집으면 상의가 되거나 재킷의 안쪽에 인형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깃을 걷으면 시계와 목걸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누가 눈치나 챌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몇몇 작품들은 전시된 작품의 1/3도 되지 않는다. 양쪽 갤러리에 각각 세 층과 두 층에 전시된 작품들은 체력이 모자라서 다 보기 힘들 정도로 그 수가 많았고, 작품 하나하나가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TETSUSON이 수도인 동경이 아닌 요코하마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올해로 3년째인데, 예술과 실험의 도시인 요코하마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의미이다.
BankART 1929는 요코하마시가 추진하는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한 문화예술 실험 프로그램의 하나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29년에 세워진 은행건물이다. 150년 전, 외국문물을 활발하게 받아들였던 요코하마에는 당시에 세워진 건물들이 많다. 그러한 건축물들을 지금까지 잘 보존하여 갤러리의 용도로 새롭게 사용한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던 도시가 바로 요코하마였기에, 학생들은 3년 동안 이 도시에서의 전시를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시회 홍보용으로 제작한 비닐봉투에서도 갤러리에 대한 학생들의 애착은 그대로 들어난다.




전시회 홍보용 비닐봉투(앞과 뒤). 두 곳의 갤러리 모습이 프린트 되어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갤러리를 나오니 밖은 이미 깜깜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멋진 요코하마의 야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150년 전의 개항시대부터 국내외의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는 이곳의 한 켠에 자리잡은 갤러리와, 그곳에 앉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멋진 해변의 야경은 전시를 찾은 사람들을 위한 보너스였다. 통유리를 통하여 내부로는 학생들의 작품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그 옆으로는 유람선과 아름다운 요코하마의 해변이. 많은 작품들을 보느라 지쳐버린 몸을 쉬어가기에 충분했다.




전시회의 기획과 작업은 모두 학생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진행을 위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전시가 있기 일년 전부터 모여 차근차근 기획회의를 가지며 준비를 했는데 학생들의 정성과 고민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에서 충분히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낯선 지방의 학생들끼리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전공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교내에서 전시회를 하는 경우 지도교수와 선배들의 조언에 따르는 경우가 많아 좀더 자율적이고 주관적으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미 이토록 큰 규모의 전시회를 통하여 스스로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전시회에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 현직 디자이너들과 기업의 관련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나와 같은 학생들끼리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고 평가 받을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기업과 연결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이다. 또한 전시회뿐만이 아니라 춤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자, 혹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졸업작품이라면 2년제와 4년제, 대학원의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크기의 제한도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형태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또한 교내나 국내에서 한 번 전시를 열었던 작품이라도 상관이 없다. 한화로 20만원이 조금 넘는 참가비가 있기는 하지만, 갤러리 대관료 정도라고 본다면 비싼 금액은 아니다. 특별한 심사도 필요 없고, 자신의 프로필과 작품에 대한 설명을 영어나 일본어로 간단히 작성하여 접수를 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학창시절에 졸업작품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도 없지 않은가. 그 작품들을 한번의 전시회로 끝내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남들과 다른 의미 있는 졸업작품전을 열어 보고 싶다면, 그리고 나의 졸업작품으로 외국의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이 맞는 동기들끼리 다 함께 참여하여 학창시절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학창시절 이 시기쯤 일본배낭여행의 계획을 잡아 보는 것은 또 어떨까. 당신이 학생이라면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는 데에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도 잊지 말자. 안타깝게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작품들이 그곳에 있다.

http://www.tetsus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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