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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장식을 통한 전통문화의 계승 - 히나마쯔리

문주영 통신원 | 2006-03-21



어린 시절, 필자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미미’나 ‘라라’라는 이름의 마론인형을 기억할 것이다. 해맑은 눈망울에 잠을 자고 일어나도 어디 하나 흐트러지지 않던 금발의 그녀는 정말 ‘인형처럼’ 예쁘기만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인형들도 없었고, 그렇다고 테디베어나 퀼트인형을 만들어 줄 만큼, 어머니들이 여유롭던 시절도 아니었다.

지금은 ‘미미’와 ‘라라’ 보다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바비인형과 테디베어가 더욱 소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유체관절 인형이나 피규어 등은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의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바비인형보다 먼저 갖게 되는 인형이 있다. 이번 칼럼 에서는 일본의 유명한 축제인 ‘히나마쯔리’를 통하여 일본의 전통인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취재 | 문주영 도쿄통신원(mm00nn@naver.com)


해마다 봄이 되면 일본의 곳곳에는 인형이 등장한다. 바로 3월3일의 히나마쯔리 때문인데 특별히 축제라고 하여 요란한 파티가 아니라, 바로 한 달 전쯤부터 집안에 인형을 장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2월이 시작될 무렵이면 전철역에는 행사 포스터가 붙기도 하고, 박물관에서는 ‘전통인형특별전’이 열리기도 한다. 또한 절이나 신사를 비롯하여 관공서에 인형이 설치 되기도 하고, 마을에 따라서는 큰 행사로 발전시켜 마을 전체의 축제로 즐기기도 한다.


일본은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히나인형을 선물 받는다. (핵가족화로 인해 요즘은 부모가 직접 고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 인형을 2월이 되면 꺼내어 집안에 장식을 해두는데 그것은 3월 3일까지 그대로 둔다. 3월 3일이 되면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여자아이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는데, 행사가 끝나면 인형을 잘 정리하여 넣는다. 마지막 정리까지 끝이 나야 비로소 하나의 행사는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날 축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인형과 단을 그대로 두거나 가족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지 않으면, 딸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못하게 된다는 미신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절 하루 전날 급하게 장식을 하게 되면 여자아이가 재수가 없어진다고 하여, 되도록 여유 있게 장식을 해두고 집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자아이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형을 장식하는 이러한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가 다. 고대 중국에서 3월 3일이 되면 자신의 몸에 붙은 질병이나 재앙을 물에 떠내려 보내면서 고사를 지내던 액막이 풍습에서 시작하여, 재난 등의 불결한 일들을 인형에게 옮겨,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던 일본의 풍습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아직도 일본의 곳곳에서는 이날이 되면 여자아이들이 모여 물에 인형을 떠내려 보내기도 한다.

이후 헤이안시대에 와서는 귀족여성의 사이에서 종이인형에 옷을 입히며 놀던 인형놀이와 결부되고 에도시대에 이르면 드디어 형태를 갖춘 하나의 축제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궁과 귀족들의 놀이에서 발전하여 지금은 국민 모두가 즐기는 하나의 축제가 된 것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궁중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을 붉은 단 위에 정해진 각자의 자리에 앉히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인형을 장식했던 것은 아니다. 에도시대 전기부터 왕과 왕비의 모습을 본 딴 인형이 나타났고, 중기에 접어들어 2,3단의 장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도구들이 장식되고, 거기다 금은의 쇠장식이 붙기도 한다. 또한 에도시대 후기에 들어서면 인형을 장식하는 대신 족자를 걸기도 했는데, 메이지시대 이후에 와서는 서민들 사이에 족자가 많이 보급되기도 하였다.


메이지시대에는 비로서 농촌까지 전해졌고, 19세기에 와서는 7,8단이 되어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많게는15단까지 설치하기도 한다. 한 때는 지나치게 화려한 단으로 인해 국가에서 ‘금지령’을 내려 제한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원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인형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형은 그 자리와 단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가장 위 단에는 '다이리비나(內裏びな)'라 하여 왕과 왕비의 모습을 본 딴 인형이 놓여지는데 오늘날, 일반 가정에서는 편의상 여기까지만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의 위치는 관동의 경우 (보는 방향에서) 남자가 왼쪽, 여자가 오른쪽이고 관서지방은 반대인데,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지금은 관동지방의 형태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어느 쪽으로 두어도 상관은 없다.


다음으로 두 번째 단에는 궁녀들이 자리를 잡는다. 보는 방향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궁녀는 오른손에 물건을 쥐고 왼손을 펴고 있으며, 중앙에 있는 궁녀는 결혼식이나 산보와 관련된 물건을 들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궁녀는 양손을 모으고 있는데, 이들은 여러 분야에 재능이 있었던 우수한 궁녀였다고 한다. 다음, 세 번째 단에는 흥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던 궁중음악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북, 피리, 소고, 등의 악기를 가지고 있다.


네 번째 단에는 흥을 돋우며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이 앉혀지고, 다섯 번째 단에는 활을 가지고 있는 무관이 자리를 잡는다. 그 아래 여섯 번째 단에는 요리와 청소 등 궁중의 잡무를 담당하던 사람들로, 빗자루, 구두, 갈퀴를 가지고 있어 다소 익살스러운 모습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단에는 잡기에 해당하는 도구들과 우마차가 놓인다. 잡기들은 장롱, 찬합 등으로 혼수와 관련된 물품이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히나장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귤나무와 벚꽃인데, 보는 방향에서 왼쪽에는 귤나무, 오른쪽에는 벚꽃이 놓인다. 예전에는 복숭아 나무였다고 하나, 지금은 벚꽃이 일반적이다. 이 두 나무로 인해, 히나장식은 봄을 알리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과 금빛의 병풍, 그리고 축하 메시지 역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비록 인형들은 자리와 역할이 정해져 있으나, 얼굴 모습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다. 모든 인형은 손으로 만들어지며, 간단하게 판매되는 인형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격은 싸게는 몇백 엔에서부터 비싸게는 몇백만엔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아이를 위한 날은 없는가? ‘코도모노히’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5월 5일 바로 그날이다. 히나인형과 마찬가지로 그날은 남자아이를 위한 인형이 만들어지고, 일본의 애니매이션 등에 자주 등장하는 잉어모양의 물고기 연을 지붕에 매달아 남자아이의 건강을 빌어준다. 물고기는 부모를 포함하여 남자아이의 수만큼 달아준다고 한다.



히나마쯔리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면 이제 그 축제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에는 단순한 인형장식 이외에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달이라는 큰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인형이 자신과 닮은 얼굴모양을 하고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아이는 자라면서 해마다 집안에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장식된 그 인형을 만나게 된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전통의상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어릴 적 인상적으로 보며 자랐던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생활 속에서 전통의상을 즐겨 입는 그들의 습관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전통공예의 보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전통 인형은 있다. 하지만 일본처럼 전통인형이 발달되고 보급된 나라는 드물다. 경우에 따라 외국인에게는 전혀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 인형일지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과 닮은 전통인형에 열광한다. 그래서 취미로 인형을 만들거나, 마니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대형문구점에 가보면 전통인형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이 나와있다. 그들은 생활 속에서 전통공예를 놀이로 즐기는 것이다.


일본의 인형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누구나 그것을 보면 일본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일본이 외국을 방문할 때 인형을 자주 선물해서 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외국인이 일본을 방문할 때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인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시기 쯤에 일본여행을 한다면, 가까운 백화점이나 문구점에서도 쉽게 전통인형과 관련된 상품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TV에서는 인형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물건들이 선보인다. 전통문양의 종이나 팬시용품, 축제와 관련된 전통식품들, 그리고 다양한 공예품까지, 하나의 축제가 쏟아내는 콘텐츠들은 실로 다양하다.


다음은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박물관에 전시 되고 있는 인형을 보면 100년 전의 복식문화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기모노의 디자인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액세서리와 원단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마치 한복에도 유행이 있듯이 말이다.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인형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원단으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실제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의 인형들,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인형들은 얼굴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서서히 사람들의 신체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을 모델로 만든 히나인형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가정의 화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족들은 봄이 시작될 무렵 인형을 통하여 여자아이의 행복을 빌어 주고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특히 이날은 인형장식뿐만 아니라 특별한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삼색떡과 대합요리를 먹고, 단술을 마신다.

혈압을 낮추는데 좋다는 마름으로 흰떡을 만들고, 액막이의 기능이 있다는 쑥으로 푸른 떡을 만들며, 해독작용이 있다는 치자로 분홍떡을 만들어 세 가지를 겹쳐 올린다. 이것들은 땅의 기운과, 생명, 그리고 건강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합은 딸이 자기와 잘 맞는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살라는 뜻에서 먹는다고 한다.

딸을 낳으면 온갖 눈치를 받으며 출산을 한 본인은 물론이고 친정부모까지 죄인이 되어버렸던 과거 우리의 조상들을 생각하며 잠시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모든 가족들의 축복 속에 축하를 받으며 태어난 딸과, 태어나면서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딸이 어떻게 자라면서 같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히나마쯔리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필자는 조사과정에서 일본인에게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어린이를 위해 전통적으로 어떤 행사를 합니까?”, 그리고 “한국은 이날이 무슨 날입니까?” 라는 두 가지 질문이다. 잠시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도 너무나 비슷한 풍습이 있지 않은가!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여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는 다던 바로 음력 3월 3일의 삼짇날. 삼짇날이 되면 어른들은 진달래꽃으로 분홍빛 화전을 지지고 쑥떡과 앙금이 든 흰떡을 만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불고, 여자 아이들은 대나무에다가 풀잎으로 머리를 땋아 감아, 헝겊으로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히며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병풍을 치고, 살림살이들을 챙겨 인형놀이를 했다고 한다. 신라시기에는 물가에서 몸을 씻으며 재앙과 불운을 씻어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어떤가. 우리의 삼짇날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달과 날이 홀수로 일치하는 날인 1월 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은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이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도 명절이었다. 어쩌면 히나마쯔리는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우리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는 우리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새로운 것에 젖어 소중한 전통을 잊고 있을 때, 그들은 비슷한 풍습을 전통공예로 발달시켜 특색 있는 문화로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화이트데이만 기억할 때 그들은 ‘히나마쯔리’와 ‘화이트데이’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많은 상점들은 히나마쯔리가 있었던 3월 3일을 기점으로 비로소 화이트데이 상품들을 진열하는 곳이 많았다.


우리나라에도 우리의 전통인형을 만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장이 좁다는 것이다. 바비인형이나 테디베어가 한복을 입는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여러 공모전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문양들은 그 이후 어떻게 응용되고 활성화 되고 있는가. 그리고 지방자치제 이후 활발하게 생겨난 지역의 생소한 축제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면 사라져 가는 역사 속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전통과 첨단이 공존 하는 곳, 묘한 나라 일본에서 필자는 더 늦기 전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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