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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오인욱 가천대학교 실내건축학과 명예교수

2012-04-26


국내에 인테리어라는 용어 조차 생소하던 시절,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실내건축 분야에 뛰어든 한 젊은이가 있었다. 스스로가 실내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저술과 연구활동을 통해 그가 실내건축이라는 한길을 올 곧이 걸어 온지도 어느새 40년 가까이. 바로 명실상부 한국 실내건축계를 이끌어 온 대표적 인물, 오인욱 가천대학교 실내건축학과 명예교수다. 편안한 미소와 함께 그가 들려주던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네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잔잔한 애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실내건축으로 들어선 계기가 된 세종문화회관

1974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오인욱 교수가 실내건축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에는 ‘세종문화회관’이 있었다. 1972년 화재로 타버린 시민회관 자리에 새로 들어설 세종문화회관 건립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 당시 엄이건축(엄앤드이 종합건축사사무소)에 몸담고 있었던 오 교수는 서울시로부터 다시금 화재가 나지 않도록 공간 전체를 철제(鐵製)로 구성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진 기술을 배우고자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방문한 독일에서 처음으로 ‘실내건축가’라는 직업을 접하게 된다. 이미 유럽 등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건축가’와 ‘실내건축가’가 전문 분야로 나뉘어 있었던 터. 새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와 다시 진행된 세종문화회관 프로젝트는 그에게 국내에서 생소하기만 했던 실내건축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오 교수는 이내 엄이건축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실내건축 분야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참고로 현재 세종문화회관은 철제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한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다. 오 교수가 유럽에 머물 당시, 친분이 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극장을 철제로 만든 다는 이야기에 “과연 철로 만든 기타가 있다면 무슨 소리가 나올 것인가?”라는 그의 만류 때문에 철제 대신 난연처리된 목재가 쓰이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다.


청와대와의 인연, 서울핵안보정상회의까지 이어지다

실내건축계에 들어선 오 교수의 발자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하나 있다면, 바로 청와대다. 세종문화회관 공사 현장 소장이었던 대림산업의 한 간부와의 인연으로 청와대에 소개된 오 교수는 청와대 본관 실내설계뿐만 아니라 전두환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였던 청남대를 비롯한 옛 지방청와대 5곳까지 설계를 맡아 진행하게 된다. 지방청와대는 군사정권 당시 지방에 설치된 대통령 전용시설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는 미술관 등 시민들에게 개방된 시설로 남아있다.

오 교수는 청와대 본관 설계에 있어 회랑(回廊) 구조를 도입했다. 회랑은 전통적으로 종교시설이나 궁전 등 신성하거나 웅장한 건축에 활용되던 양식으로 청와대 1층 홀에 묵직한 기둥들을 양쪽으로 4개씩 나열, 회랑이 지닌 이미지를 공간에 한껏 살려냈다. 오 교수의 후일담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측에서는 공간이 좁아 보인다는 이유로 기둥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둥이 남아있는 것에는 그 8개 기둥에 ‘팔도강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오 교수의 설득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청와대의 부정적 의견은 골조공사가 끝난 후 제기되었고, 이미 기둥을 없애기엔 늦어버린 상태에서 나온 재치 있는 설득이었다.


군사정권이 지나고 청남대나 지방청와대에 관해 좋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청와대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200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APEC, 2005), 한아세안정상회의(2009), G20 정상회의(2010), 서울핵안보정상회의(2012) 등 국내에서 열렸던 굵직한 국제 회의 장소 공간 설계가 그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오 교수의 손길을 거치게 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열렸던 서울핵안보정상회의에서 오 교수는 회의 주제에 맞게 행사장 전체의 컨셉트로 ‘평화’를 가져왔다. 그가 떠올린 평화의 이미지는 이른 아침 산하의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한국적 정서가 느껴지는 그 이미지를 곳곳에 그래픽으로 표현하거나 리셉션 당시 영상으로 띄우기도 하면서 평화의 감성을 공유하고자 했다. 회의장을 벗어나 정상들이 쉬는 라운지 공간은 전통 한옥의 대청과 마당과 같은 구성으로 자연스러운 휴식과 대화를 유도한다. 이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 맑은 아침 공기와 함께 마당을 쓰는 모습 등 우리네 평화롭고 소박한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또한 라운지에서는 전통 고가구와 조각보를 활용하여 한국적 미를 고스란히 전달하기도 했다.


“국제 회의장은 우리 나라의 국격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라면 회의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허술하게 해놔도 미국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했구나’라고 생각해 버리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각국의 정상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시선은 ‘얼마나 발전했나’입니다. 너무 과시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허술해서도 안되죠. 또한 우리의 것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쁜 일정의 정상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소로 드러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주로 사용되는 장소인 코엑스는 그마저도 쉽지가 않죠. 때문에 회의장 실내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한국 근대 건축 속 공간 디자인을 탐구하다

오 교수는 최근 「한국 근대 건축 속의 공간 디자인」을 출간하며, 그간 매진해온 근대 건축 공간 연구의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근대 건축 연구에 있어 주로 건축물 외관에 집중되어온 것과는 다르게 오 교수는 내부 공간에 주목했다. 그 계기를 살펴보자면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구 청와대 보수 공사를 할 때였다. 구 청와대는 예전 조선총독부 관저였던 건물로 이승만 대통령 이후 1991년 지금의 청와대가 지어지기 전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공사를 위해 뜯은 천장 너머에 예전 조선총독부 관저 시절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당시 구 청와대는 기존 건물의 높았던 천장을 낮게 새로 친 상태였었다. 오 교수에 의하면 그때 드러났던 공간은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모습이었고, 이를 계기로 그와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근대 시대 건축물들은 급속한 경제성장 속 개발논리와 맞물려 상당 부분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에서라도 근대 건축물에 대한 실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대 건축물을 복원한다고 해서 건물 껍데기만 세워 놓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생활방식과 사고로 살아갔는지는 내부 공간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가구 배치나 공간 구성 등에서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근대 건축 속 공간디자인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위해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일본에 있는 제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직접 그 곳의 서점과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한국 근대 건축 속의 공간 디자인」에서는 근대 백화점의 시초인 미쓰코시 백화점, 국내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과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 그리고 경성부청사(서울시청)까지 우리 근대 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건축물들과 그 속의 생활양식들을 두루 담아낼 수 있었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또 다른 발걸음

국내 실내건축계에서 오 교수는 후학양성에도 많은 힘을 쏟은 인물이다. 1991년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실내건축학과 설립과 동시에 교수직을 맡아 실내건축 디자이너를 꿈꾸는 수 많은 청춘들의 디딤돌이 되어준 교육자다. 올해 20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공식적으로 퇴임식을 가진 오 교수는 이제 디자인 업계의 권익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한다. 매년 배출되는 수많은 건축, 디자인관련 학과 출신들로 디자인 인구는 무시 못할 정도로 급성장 한데 비해 여전히 처우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오 교수는 무엇보다 국내 디자인계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마지막으로 말을 맺었다.

“그 동안 디자인 업계가 서로 뭉치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디자이너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있어 서로 분야를 나눌 것 없이 함께 발벗고 나서야 할 때 입니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후배 디자이너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그 토양을 가꾸어나가는 것이 저 뿐만 아니라 지금 디자인 업계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공통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인욱 명예교수 주요약력

가천대학교 실내건축학과 명예교수
사)한국공간문화디자인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간디자인단체총연합회 회장
사)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
사)한국실내건축가협회 명예이사
사)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명예이사
사)한국실내디자인학회(KIID) 명예회장
아시아실내디자인학회연맹(AIDIA) 명예회장
서울핵안보정상회의 자문위원장
서울시디자인위원회 부위원장
청와대 관저 및 본관 실내설계 및 감리
U.N. 한국대표부 관저 설계 및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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