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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인터뷰

그 남자의 이유 있는 반항

2009-01-13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하 ‘KDF’)은 한국 디자인계의 두발을 자처한다. 그러나 작금의 시끄럽고 요란한 장단에는 영 관심이 없다. 작년 5월 첫 발을 뗀 후 지금까지, 재단은 한걸음 한걸음 신중한 행보를 걸어왔다. KDF의 김상규 팀장을 만나 그 발자취를 따라가봤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사진 | 스튜디오 salt


KDF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걸로 아는 사람들도 많더라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모태로 두고 있다. 전시와 아카이빙 등 기존 미술관의 기능을 이어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단은 사업을 다각도로 확장, 진행하는 중이다. 따라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디자인미술관의 설립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문화부에서는 문화예술정책의 일환으로써 디자인 역시 예술의 한 영역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의지를 담아 지원책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운영자금을 지원받고, 예술의전당과의 합의를 통해 전시 공간을 할애 받아 1999년, 디자인미술관이 생겨나게 됐다.


이곳의 디자인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권혁수 선생의 소개로 미술관 개관전에서 <주거의 풍경> 섹션의 작가로 참여해 연을 맺어, 2001년 1월부터 디자인 큐레이터로서 몸을 담게 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디자인 콘텐츠로 전시를 한다는 것에 필요성을 못 느끼며 이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때까지 우리에게 디자인 전시란 산업디자인 전람회와 같이 공모전의 결과를 나열하거나, 박람회에서 부스를 차려놓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형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2001년 큐레이터 업무를 시작했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지침이 될 텍스트도, 역할 모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의 디자인 전시 도록을 살펴보면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책을 훑어보니까 그들의 전시는 작품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분명한 전시 주제를 상정한 채 디자이너가 주체자로서 문화를 해석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무척 고무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디자인교육2001', 'Archigram', 'No design No style, Droog Design', '신화없는 탄생, 한국디자인 1910-1960' 전 등을 기획했다.


전시와 함께 아카이브 구축에도 힘썼다고 들었다
2001년부터 소장품과 자체 콘텐츠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디자인미술관은 전시공간으로서의 갤러리(gallery) 단계에서, 자체 소장품을 갖추거나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뮤지엄(museum)으로의 이행이 불가피했다. 유럽의 디자인 강대국들이 자국의 디자인 자산(이를테면 영국의 월리엄 모리스와 독일의 바우하우스)을 보여주는 형식이 바로 뮤지엄을 통해서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후 미술관은 본격적으로 소장품을 갖춰나갔고, 한가람디자인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자체 아카이브가 존재하는 뮤지엄으로 거듭나게 됐다.


재단으로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로 시대적 요구에 따른 건가
2006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미술관을 독립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불거져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자인미술관 직원들이 계약직이었음은 물론 관장이나 학예실장마저 없어서, 조직이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 정체성을 갖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공청회와 포럼 등이 열렸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다시 2007년, 법인화가 추진됐고 하반기에 이를 확정해, 준비 기간을 거쳐 2008년 정식으로 재단 등록을 밟았다. 앞서 갤러리에서 뮤지엄으로의 이행이 당대의 요구였듯이, 현재 국내 디자인 분야의 빠른 영역 확장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맡는 역할도 다각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런 때일수록 디자인의 개념을 다듬고, 디자이너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질 좋은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복안이었다. 디자인의 개념 접근에 있어서도 ‘협의의 디자인’에 집중되어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거나 디자인 산업 자체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광의의 디자인’에 중심을 두어 ‘디자인을 하는 사람’,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 ‘디자인에 관심을 두는 사람’, ‘디자인을 수용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을 모두 염두에 두는 활동을 펼쳐 나간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진행되었나
2008년 8월 출범 전인, 4월부터 아카데미 사업을 먼저 진행했다. 전시는 크게 <한국의 시각문화와 디자인 40년> 과 디자인미술관에서부터 지속해온 <디자인메이드 2008> 을 치렀다. 여기까지는 기존 미술관의 기능을 이어받은 것이다. 재단이 디자인미술관에서 더욱 확대된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조사연구와 아카이빙, 공모와 지원 사업을 강화했다. 디자인메이드의 작품 공모와 남산과 광화문 조선일보 앞에 설치된 디자인큐브의 작가 공모가 진행되었으며, 시범적으로 소규모 디자이너 모임을 지원하는 사업을 작은 규모로나마 시작했다. 스타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정책은 많이 늘어났지만, 과시적이며 표면적인 결과를 보이지 않더라도 젊은 디자이너들이 나름대로 토론을 하거나 책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 등 소모임의 활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은 액수라도 지원을 해서 그들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려고 한다. 출판 사업도 진행 중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출판사를 등록, 단행본과 정기간행물을 제작할 예정이다. 해외에 한국의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영문 서적을 기획하고 있다. 아무래도 공적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한국의 디자인 콘텐츠를 해외에 알리는 데 주력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조사연구와 아카이빙 사업 역시 ‘디자인 토대 다지기’의 하나인가
디자인미술관에서 하드웨어나 유물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 아카이빙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과연 한국의 디자인 유산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이를 목록화하는 작업을 기획했다. 여기에는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들이 만들어낸 생산품을 어떻게 디자인의 범주에 끌어들일지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 서구의 모던 디자인과 비교해서 보잘것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 디자인의 근원, 한국인의 잠재되어있는 조형적인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랭킹을 뽑는 방식은 아니다. 다양한 관심과 분야의 인물들을 선정, 그들이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서 100가지 디자인을 찾아보는 꼴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있으며, 만약 사라졌다면 어떻게 소멸됐는지 까지도 기록할 예정이다. 이른바 ‘Korea design 100’ 사업이다.


Korea design 100에는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흔히 시장에서 유통되는 오브제나 버내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 디자이너 1세대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의 구체적인 작업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어떠한 기준과 시각으로 디자인을 바라볼 것이냐’다. 결과적으로 100가지가 무엇인지도 궁금하겠지만, 한국 디자인을 아카이빙하는 과정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까지 디자인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자체만으로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현대 디자인과의 연관성을 짚어 나가다보면 한국 디자인 정체성을 추적하는 근거도 될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고답적인 방식의 아카이빙을 지양하고, 좀더 현실적인 대답이 되며 디자인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지식의 축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업이 ‘왜’ 중요한가
현재, 디자인이 첨예한 관심을 받게 된 건,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갑자기 스타 디자이너가 등장해서 하루 아침에 판도를 뒤바꾸는 식의 영웅 만화 같은 발상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흔히 말하는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이 절실한 때다. 아카이브와 출판과 같이 지속적인 지식 축적을 통해 한국 디자인만의 묵직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디자인 경쟁력이다. 또한 아카이브는 역사의 박제가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유추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간단한 예로 연구자가 논문을 쓸 때,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얻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정보를 가공하는 과정, 그리고 이에 따른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하다.


이미 예전부터 시작됐어야 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다
한국 디자인은 요란하고 빠르게 돌아갈 뿐, 원칙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본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질문했을 때 100명이 모두 “난 성공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 중심에는 디자이너가 없다. 이를테면 디자이너의 행사인데 개막식에서 디자이너의 입장을 제한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북치고 장구칠 때 따라 춤추고 있는 판국이랄까. 물론 가볍게 멀리 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과 대구를 이루는, 진지하고 집요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디자인계의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건가
지금 상황을 보면 ‘디자인계’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스럽다. 국가가 국민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왜곡해서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며 정책을 집행하듯, 오래 쌓아온 디자인에 대한 개념을 누군가 함부로 곡해해서 쓸 때 속된 말로 ‘맞장 뜰’ 조직이 전무하다. 영화계만 보더라도 스크린쿼터 문제와 같이 영화의 어떤 순수한 개념이 함부로 다뤄지면 응집된 목소리가 터져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한국 디자인에는 그것이 없다. 차라리 디자인 동네라고 부르고 싶다. 각자의 번지 수에 살다가 누가 집 앞에 쓰레기를 던져놓으면 나와서 뭐라고 떠드는 정도랄까. 아무래도 자체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간 공통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계가 입은 타격은 무엇인가
정작 마이크가 디자이너에게 넘어온 지금, 우리가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가 문화산업에서의 파급력이나 대중들에게 의식적으로 미치는 영향력 등을 피력하면서 독립영화 육성을 지원받고, 지자체에서 영화제를 개최하는 모습과 비교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왜 디자인이 중요하냐고, 왜 돈을 지원받아야 하냐고 물었을 때 설득할 만한 언어적인 논리가 없다. 상관없이 ‘내 사업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디자인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이너들은 계속 주체에서 소외된 상태로 머무를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디자인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비즈니스 일 뿐이구나 라며 그 관심과 기대를 접을 것이다. 우리는 한낱 기술자로 남을 것이다.


아마도 오랫동안의 고민이 KDF를 통해 실질적인 대안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그전에는 공적 자금으로 진행됐던 프로젝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자로서 글을 썼다. 지금은 KDF 직원으로서 이전 프로젝트들과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디자이너와 연구자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대중과 소통할 공간을 여는 것에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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