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2
80년대초 편집사무실 하면 두 손 안에 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 회사가 충무로에 몰려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 기업체들은 내부에서 소화해내지 못한 편집물들(여기선 주로 사외보, 사사, 기업 애뉴얼 등)을 외부 전문회사에 맡기는 추세였다. 수작업으로 편집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일을 해야 했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1976년 설립돼 충무로 편집사무실 중의 하나였던 대통기획은 1991년 현재 건물의 대지를 매입하여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짜리 총 면적 250평 공간의 자사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직원 25명에 연매출 20억원의 규모를 갖춘 편집전문회사 대통기획의 조우기 사장(42세).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한 사람이라면 디자인 분야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더욱이 그가 오너로 시작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그 어느 곳보다 이직율이 높아서 이런 현상을 ‘메뚜기떼’나 ‘철새떼’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대통기획의 조우기 사장은 군 제대후 1984년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우직하게 한 길만을 걸어온 고집스런 사람이다. 그는 1997년, 창업주이며 회장인 최성현(59세) 씨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5년째 전문경영인으로서 제2의 대통기획을 열어가고 있다.
인터뷰 / 박희연 객원기자
한 직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저도 처음엔 참 힘들었어요. 그 당시 대지작업하고, 사식 부치고 다 수작업이었잖아요. 여자가 해도 되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하지만 그땐 회사, 집 밖에 몰랐어요. 그냥 한군데에만 푹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쉬웠던 점도 있네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변화가 없었다는 것. 하지만 오래 있다 보니까 제게 지금처럼 좋은 기회도 왔고, 또 경영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돈을 버는 것과 쓰는 것은 경영을 해보지 않으면 잘 모르거든요.
경영권은 어떻게 해서 물려받으셨어요?
절 잘 봐 주셨던 것 같아요. 해봐라 그래서 했어요. 오래 있다 보니까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론 사무실 바닥에 붙은 껌자국도 떼고, 포장끈마저도 재활용해야 한다며 아꼈다던 분이 창업주이신데, 그런 분이 택했던 사람이라면 뭔가가 있었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평생을 바쳐서 만든 회사인데 친인척도 아닌 제게 선뜩 맡기고 훌훌 털어버릴수 있다는 것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분에겐 미술하는 자제분도 있거든요. 그분도 디자이너 출신이고. 처음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도 했어요.
지금 그분은 미국에 있어요. LA에 있는 낡은 호텔을 사서 직접 건축을 하셨어요. 언어가 통하지 않은 그곳에서 일꾼들과 직접 벽돌을 나르면서 그렇게 이뤘어요. 지금은 잘돼서 한국과 미국을 오갑니다. 가끔 사무실에 나오시긴 하지만 경영엔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아요.
여전히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최회장과 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답을 찾고 싶었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최회장은 충무로 편집회사에선 전설적인 인물로 근면.성실 하나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교육이나 외부활동을 통해서 특별히 경영수업을 받은 적은 있으세요?
전혀 없습니다. 저는 회장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절 키우려고 일부러 그러셨던 것 같아요. 서류 한장 쓰는데도 딴 직원들은 아무말 안하는데, 제게는 유난히 신경을 쓰고 엄하게 하셨어요. 저도 교육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죠. 그런데 고속진급을 하다보니 뭘 배우고 할 시간이 없었어요. 일 익히기에도 바빴죠. 대신 여러가지를 회장님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십니까?
인재교육이예요. 사람관리가 가장 중요해요. 저는 경력자보다는 주로 신입사원을 뽑습니다
결원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한두명 정도는 미리 뽑아 1달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는 이직율이 낮습니다. 10년 된 경력자도 많구요. 경력자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잘 안 쓰는 편이예요. 왜냐면 나름대로의 주관이 있어서 우리 회사의 철학과 분위기를 잘 흡수하지 못해요. 전 성실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이직율이 낮은 이유는 뭡니까? 월급이 많다거나 뭐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요?
월급이 높다는 소문은 안났어요. 다만 대통에서 일했다면 제대로 일을 배웠다고 평가하죠.
전 일부러 수작업을 시킵니다. 정확한 감각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3년 이상된 직원들은 반드시 일본엘 보냅니다. IMF때 어려워서 잠깐 중지했지만 매년 하는 행삽니다. 기회를 많이 가져야 좋은 디자인을 할수 있어요. 이번달 19일엔 3박 4일 일정으로 전 직원들과 함께 오사카에 갑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적은 없었습니까?
IMF때죠. 저희 회사는 매년 매출액이 꾸준히 상승했던 편입니다. 97년 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98년 매출액이 30% 정도 하강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직접 영업도 했습니다. 그 외엔 특별히 어려웠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회장님이 물러나셨을 때 회사 시스템을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 놓으셔서 전 힘 안들이고 운영했던 것 같아요.
현재 클라이언트는 몇군데나 되며 매출 비중은 어떻습니까?
사내외보 같은 정기간행물과 애뉴얼 리포트, 기업사, 카다로그 같은 비정기 간행물들, 한 20여 군데 됩니다. 매출 비중은 50대 50 정도고, 그중에서 엘지이숍의 홈쇼핑 카다로그는 별도 팀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앞으로 기대가 좀 됩니다. 미국 대표적인 의류 전문 홈쇼핑 카달로그
가장 오랫동안 일해온 클라이언트는 어디입니까? 특별히 관리하는 방법이 있는지요?
엘지나 한화그룹입니다. 특별히 뭘 하는 건 없습니다. 접대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같이 고민하고 방향 검토하고 그렇게 풀어나갑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 변칙이나 요령을 부릴 줄 모른다. 그저 성실하게 일에 열중할 뿐이다. 창업주인 최회장의 모습을 참 많이 닮은 것이 그가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 동기가 아닐까 싶다.
그 흔한 디자인 관련 잡지 어느 곳에서도 그의 이름 세 글자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다만 사보편집자들이 모여 만든 책
<책방에 나온 사보>
에 그의 글이 실렸다. 그가 회상한 과거를 통해서 얼마나 우직한 모습으로 일만 했는지 그 단편을 볼 수 있다.
책방에>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예전만 하여도 하청업체가 만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강매하고 물품 대금을 상품으로 치루던 업체들도 있었다. 아침 회의가 끝나자 자리로 전화가 왔다. 모업체의 담당 사보기자인데 부장이 통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느낌이 안좋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은근히 사줄 것을 강요하는 말투였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자 전화에서 ‘뚜 ~~~’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사보는 경쟁사에 넘어가고 담당자는 무척이나 안타까워 하였다. ”
“예전처럼 대지 위에 색 지정과 교정을 끝내고 고개를 드니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며칠간의 밤샘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근처의 여관에 잠을 청하러 갔다. 여관 문을 열고 주인을 부르니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나가면서 돈을 내지.’하고 잠을 청하고는 제판집이 문을 열기 전에 서둘러 여관을 나섰다.
제판집에서 곰곰히 생각하니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필름 교정이 더 급했다. (중략) 그로부터 한 달 뒤…..
양심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그 여관을 찾아 전후 사정을 말하고 숙박비를 내려고 하자 주인의 멱살과 더불어 날아온 한 마디에 인생이 이렇게 꼬이나 싶었다. “이 도둑놈, 이제야 잡았다.” 연유인즉 그 날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둑이 들었고, 얼마 안 되는 숙박비와 집기가 없어졌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은 뒤 난생 처음 생두부를 먹어보았다.
사장님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입니까?
인간적인 디자인입니다. 요즈음 젊은 디자이너들은 아름답게만 보이는 비주얼에만 관심이 있어요. 예전에 비해서 프로그램도 많고 도구들이 발달해서 마우스 하나로 뭐든지 할 수 있다보니 손으로 직접 하는 작업들엔 서툴러요. 기초가 없이 디자인을 하다 보면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인간적인 디자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죠.
물과 공기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소중하지만 늘상 우리곁에 당연히 있는 것처럼 대접받지 못한 천덕꾸러기들이 많다. 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경쟁시대에 그저 한길만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 있다면 모두들 ‘별볼일 없는 사람이겠지’ 라고 예단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느날 그 진가를 확인하게 되는 날은 ‘그에게도 뭔가가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기자랑 할 줄 모르고 그저 ‘운이었겠죠’, ‘오래 있다 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폄하하는 사람. ‘디자인업계의 언더그라운드’라며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일할 땐 욕도 서슴지 않아 자신을 ‘욕쟁이’라고 하는 그는 최회장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후일 능력있는 직원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희망사항을 간직하고 있다.
조우기 사장 약력
- 1960년생 : 두살 터울인 형과의 군대문제 때문에 더 젊어진 나이.
실제는 1958년생이라고 한다.
- 출신과 전공 : 중학교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다. 평택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만류했던 뼈아픈 과거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학교도 학과도 아무것도 모른다.
- 직장 경력 : 대통기획에 들어오기 전 잠시 친척이 하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단추장사 몇 개월 한 것 외엔 오직 대통기획에서만 일해왔다.
☞ Artfilm- 채플린의 표정연기
☞ Button- 평화시장에서 단추장사할 때의 모습
☞ Creative- 별, 반짝반짝-어휴
☞ Dislike- 불일치 (말=행동)
☞ Experience- Endless…
☞ Fear- 대자연
☞ Gold- 좋아 좋아 마니마니=올바로 쓰자
☞ Handicap- 5:5
☞ Introduction(회사설명)- 좋은 편집회사이고 더 좋은 편집회사로 발전할 것임.
☞ Jump(도약계기)- 꾸준한 상승
☞ Killing Time- 운동+낮잠+뭐든지 본다
☞ Leadership- 德+time
☞ Message(맘에 담고 있는 격언)- 좋아하는 말 (노나메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올바로 잘 사는 것.
☞ New(호기심)- 항상 즐겁다
☞ Occupation-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이세상 어떤 것보다도 행복한 일이다
☞ Partner- 애인=(인생, 비즈니스 동반자 등= 애인 대하듯 해야 함)
☞ Quickness- 시원하다
☞ Revolution- 좀 늦더라도 변화의 단계를 느끼고 싶다
☞ Style- 무스를 바른 수더분한 옆집 아저씨
☞ Track- 산전수전을 겪다- 한길로 이십년 가까이 go하고 있다
☞ Useful Books-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
☞ Vain- 내 청춘 돌리도
☞ Weekend- 나를 위해 기도한다
☞ Xanttippe(크산티페, 소크라테스 부인, 사랑 또는 결혼 생활)- 믿음
☞ Young- 편안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