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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패션 그래픽, 타투(Fashion Tattoo)

2014-05-23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면서 두껍고 답답한 옷들을 벗고 맨 살을 드러낸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추동 시즌에 비해 노출이 많아지는 봄 여름에는 의복에 뒤지지 않게 액세서리들이 핫한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근 몇 년 사이 패셔너블한 소재로 떠오르며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문신은 다른 어떤 액세서리보다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추세다.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문신이라는 단어보다 타투(Tattoo)라는 외래어로 불려지고 있는 패션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신체발부(身體髪膚), 수지부모(受之父母)'

소학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부모가 주신 몸을 스스로 사랑하고 조심하여 상하지 않게 하듯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 했다. 사실 부모가 만들어준 몸, 그 중 머리카락도 쉽게 자르지 않는다 했던 한국인에게 문신에 대한 특별한 역사적 이야기는 드물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나라들만해도 예부터 심심치 않게 문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 아메리카, 뉴질랜드 등의 원주민 부족들의 생활에서도 문신의 옛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문신의 형태는 현대의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에 사실 패셔너블하다거나 트렌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모양은 아니다. 그들의 문신이 목적은 멋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84년, 일본의 아이누족의 문신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전염병이 한 마을을 습격했을 때 마을의 모든 여성들이 악귀를 쫓기 위해 문신을 했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아이누족을 조사했던 학자들은 그들이 눈병이 생겼을 때 문신을 하면 치료가 된다고 믿었으며, 어깨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오른쪽 어깨에 문신을 했다는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오지브와 인디언들은 두통이나 치통이 악령에 의한 것으로 믿어 이마와 뺨에 신당(神堂)의 형상을 새기면 치료가 된다 믿었으며, 문신과 함께 악령을 쫓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집단적 의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당시 이런 사례들은 문신이 질병과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적인 치료로 행해지는 하나의 상징적 의료행위였음을 알 수 있게한다.

그 외 중국에서는 부족들간의 차별성을 지닌 표식으로 각각 부족마다 다른 문신모양으로 종족을 구분했으며, 일본이나 뉴질랜드(마오리족)에서는 계급을 표시하기 위해 계급에 따라 다른 문신을 새겼다고도 한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의복이 일종의 신분증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든 나라의 복식제도를 보면 신분의 위계에 따라 의복의 형태, 색상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복식의 일종인 문신('복식'은 인간의 몸 위에 표현되는 문신, 화장, 향수, 염색, 상흔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이 신분표시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옷에 비해 문신은 영구적이라는 점에서 좀더 강력한 신분표시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즉, 문신은 개인적 영역이 아닌 집단적 의례 또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장치였음을 알 수 있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의 문신이란 조폭이라 불리는 집단들의 무서운 아저씨들이나, 탈선한 청소년, 혹은 범법자나 뒷골목의 깡패와 악당을 연상시킬만한 소재였다. 다소 부정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문신 역시 자신이 소속된 집단, 혹은 자신이 어떠한 성향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식이었다. 문신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병역법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데, 몸에 문신이 있는 자는 병역이 면제된다(문신이 피부의 어느 정도 이상 덮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확실한 이유까지야 모르겠으나 단순히 생각해볼 때 이는 문신이라는 것이 혐오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부정적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에 군대라는 집단생활에 부적합하여 거부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확실히 21세기 문신은 달라졌다.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타투 아티스트(Tattoo artist)라는 전문 직업이 생겨나고, 어여쁜 소년 소녀들이 마치 귀여운 액세서리를 착용하듯이 그들의 피부에 문신을 세기고 있다. 티브이에 나오는 아이돌 스타들은 너도나도 각양각색의 문신을 그리고 나와 활동하며, 인기 연예인들이 세긴 문신의 문양들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며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모방의 행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전의 '문신'이라고 하면 떠올랐던 용이나 잉어 문양 등은 오히려 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적인 향수를 가진 이미지가 되었고, 현대의 문신은 별이나 하트 문양 등의 마치 작은 주얼리 같은 이미지이거나 문자 레터링을 활용한 문신이다(물론 때에 따라 해골이나 그 외 하드코어(hard core)한 무시무시한 그림들도 있긴 하다)

집단적 성향을 지니며 사회적 상징을 가지고 있던, 게다가 영구적이라고만 생각해오던 문신은 현대에 이르러 말 그대로 '패션 타투'로 변모하였다. 각 시즌에 패션과 유행에 맞게 새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는 일시적 문신 상품들이 팔리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지워지는 헤나를 사용한 문신이라던지, 어릴 적 과자 안에 들어있어 여기저기 문질러 붙이곤 하던 판박이 형태의 문신들은 이전의 문신이 가지고 있던 개념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며, 패셔너블한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기에 어렵지 않은 액세서리가 되었다. 또한 피부에 직접적으로 새기거나 그리는 문신 외에도 문신의 효과를 이용한 스타킹 등의 패션 아이템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즉, 현대의 문신은 이전의 집단적 성향과는 정반대로 개인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소품이 된 것이다.

21세기 문신은 패션이라는 새 이름의 날개를 달고 이전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여성들은 미용의 목적으로 눈썹 등의 부분에 문신 시술을 하기도 하며, 머리 숱이 적은 남성들은 두피에 문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우스운 캐릭터나 인터넷 유모어란에 등장하는 우리네 어머님 연세의 여성들의 무서운 아이라인, 입술라인, 검다 못해 시퍼런 눈썹 문신 등은 일종의 해학적 이미지까지 가지고 있다.

요즘 일시적으로 멋을 낼 수 있는 패션 타투 상품들이 잘 팔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청소년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역시 '멋을 위한 목적으로' 영구적 문신 시술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면 여전히 '문신'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떠한 부정적인 이미지들 일지도 모른다. 그 부정적인 부분은 분명하게 '한번 새기면 지우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며, 더불어 문신 자체가 주는 부정적 관념이라기 보다는 문신을 시술할 때나 그 이후 피부가 겪을 수 있는 고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신이 패션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영구적인 것은 이미 패션이 아니다. 패셔너블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신을 생각한다면 일시적인 효과를 주는 패션 타투가 적격 아니겠는가. 패션은 흐르는 물과 같아 고여있게 되면 패션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변화하고 달라지고 움직여야 패션이다. 다가올 이번 여름의 새로운 패션 타투 경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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