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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예술가들의 프로보노(Pro bono)

박수연 | 2015-07-08


예술가들이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장르는 다르지만, ‘프로보노(pro bono)’의 미명하에 하나가 된 이들. 〈예술! 나눔의 가치〉 전시는 각기 다른 분야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소외된 약자의 기억을 돋우려는 움직임, 도덕적 의무를 지려는 예술가들의 바람이다. 여기서 소외된 약자는 의미 그대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주도권과 먼 사람인데, 그중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그들은 이 시대에 전쟁의 기억, 아픈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남았다. 그 아픈 기억이 잊히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다.

위안부 소녀들의 삶을 그린 〈귀향〉은 초기 이슈화로 투자와 섭외에 난항을 겪고 지금까지 자금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많은 분야에서 후원이 잇따랐지만, 시각 예술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인 건 처음이다. 〈예술! 나눔의 가치〉 전시를 기획한 이수철 교수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사회에 기여하는 소통의 한 통로이며, 모인 사람 모두 영화 〈귀향〉의 완성을 바란다”고 전했다.

에디터 ㅣ 박수연 (sypark@jungle.co.kr)
 

돌아와요, 고향 잃은 소녀들을 위한 영화

영화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10대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 속에서 무자비하게 끌려가 타향에서 생을 마친 소녀들이 당시의 기억을 안고 등장한다. 조정래 감독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쓸쓸히 죽어간 소녀들을 영화에서나마 고향으로 데려오고 싶었다”며 ‘귀향’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귀’ 자가 돌아갈 귀(歸) 대신 ‘죽은 사람의 넋’의 귀(鬼)인 이유다.

조 감독이 시나리오를 처음 쓴 때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위안부 할머니의 그림에서 시작된 시나리오는 촬영으로 빛을 보기까지 자그마치 11년이 걸렸다. 지인의 도움으로 1차 촬영을 마치고 3분짜리 티저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기부의 물꼬를 틔웠다. 이후 자발적인 기부 행렬이 이어졌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4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 6억 원 가량의 제작비를 모았다. 총 제작비 25억 원에는 못 미치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관심 덕에 13년 만에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배급사를 찾지 못해 8월 15일 계획한 시사회 및 개봉 일정이 미뤄졌고. 후 작업에 필요한 제작비 지원도 불투명한 상태다. 그럼에도 영화 〈귀향〉은 국민에게 큰 의미가 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지원하고, 재능기부로 마음과 뜻을 보여준 배우, 파트너, 지인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마음과 뜻을 모은 ‘나눔의 가치’

〈예술! 나눔의 가치〉는 앞서 언급한 ‘우리’의 범위를 한 단계 넓힌다. 사실 시각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강했다. 자발적 참여보다 의무를 강요하는 형태로 재능기부의 취지가 왜곡되기 일쑤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의 또 다른 면을 부각한다. 조정래 감독의 친한 선배인 이수철 교수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예술가들의 재능기부’가 ‘예술의 형태, 형식의 변화’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비췄다.

“지금까지 예술은 어떤 이데올로기 같은 사회적 도구로 활용됐다.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발휘한 결과물을 기부하는 식으로 진행됐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취지를 가지고 기부를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예술 쪽 움직임의 변화는 권장할 만하다.”
 

이 교수는 조정래 감독이 건넨 ‘귀향’의 시나리오를 읽고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며 어렵게 제작을 이어가는 모습에 도움이 되고 싶어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예술! 나눔의 가치〉 전시는 영화 〈귀향〉을 후원하기 위한 자리다. 이수철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이들에게, 애써 잊으려는 누군가에게 우리 식으로 힘을 보태고 싶었다. 조정래 감독의 처절한 절규에 목소리를 더하기 원했다. 이에 의식 있는 작가들이 작품을 기부하고 Gallery ON 후원을 받아 전시를 열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70%는 2년 전부터 시작한 〈골목전〉 전시 멤버들이다. 〈골목전〉은 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재미있는 소규모 전시를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첫 전시는 부산의 한 작은 골목 갤러리에서 열렸고 작년에는 홍대 골목에서 개최했다. 올해 전시는 오는 8월 14일 부산에서 열 계획이다. 〈예술! 나눔의 가치〉 전시에는 〈골목전〉 작가들 외에도 캘리그래피, 디자인 작가 등 이수철 교수의 지인들이 함께 참여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은 조각, 설치, 회화, 사진, 동양화 등 다양하지만,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수철 교수는 이번 전시와 같은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는 사회 활동의 변화에 기인하며, 프로보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 예술가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국내 예술가들 자체가 빈곤하기 때문에 기부가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참여는 더욱 의미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자신 또한 나눔을 할 만큼 여유를 갖지 못한 예술가임을 밝혔다.

“솔직히 나눔이 쉽지는 않지만, 없는 속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이상 약자를 돌보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자 도덕적 의무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 더 불우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해당하며, 기부의 형태로 밖에는 실현될 수 없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눔은 마음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관심, 약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상기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소외된 역사와 상처받은 약자, 이웃에 대한 관망(사회적 책임 회피)은 어쩌면 나 자신을 사회로부터 소외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이 세상에 잊히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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