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 사진을 통해 시대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32년 작 〈Blonde Venus〉에는 전형적인 여성 복장에서 탈피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무성영화 초기 인기를 끌었던 마를렌 디트리히가 그 역할을 맡았다. ©The Museum of Modern Art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무명 사진가가 존재한다. 영화 산업의 황금기였던 20세기 중반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스틸 사진가들 역시 그들 중 하나다. 스틸 사진은 영화 홍보를 목적으로 촬영 현장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을 일컫는다. 〈티파니에서 아침을〉하면 떠오르는 쇼윈도 앞에 서 있는 오드리 헵번 사진이나 〈대부〉의 주요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결혼식 장면은 잘 알려진 대표적인 스틸 사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통해 여전히 영화 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을 만큼 스틸 사진의 힘은 막강하다.
영화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 스틸 사진의 지난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진전이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리고 있다. ‘Making Face’라는 타이틀 아래, 191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촬영된 스틸 사진이 한자리에서 소개되는 흔치 않은 전시다.
영화는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모든 분야를 하나로 집약시킨 종합예술로 불린다. 그런 까닭에 영화 속 장면을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당시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배우들은 옷차림과 화장, 표정, 그리고 동작을 통해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그리고 스틸 사진가는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에 소개된 사진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이름 없는 스틸 사진가가 남긴 이미지를 통해 당시 문화산업을 이끌었던 남성들의 사고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흑인 노예는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며, 백인 여주인공은 이런 모습을 하고 이런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화면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9년 작 〈와일드 오키드(Wild Orchids)〉에 등장한 미의 여신 그레타 가르보의 아름다운 몸짓이나, 1939년 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 등장하는 해티 맥대니얼의 살아있는 표정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은 ‘Making Face’전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이다.
흑인 의사와 백인 여성의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담은 영화 〈Guess Who’s coming to dinner〉 ©The Museum of Modern Art
〈Gone with the wind〉에서 감초 역할을 한 흑인 여배우 해티 맥대니얼의 재기 발랄한 모습. ©The Museum of Modern Art
코넬 루카스(Cornel Lucas)는 1940년대와 1950년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영화 스틸 사진의 선구자다. 당시 활발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진가들이 있다. 그들이 남긴 기록 역시 수 십 년이 흐른 뒤 이 시대를 돌아보는 또 하나의 장치로 사용될지 모른다. 사진이 지닌 강력한 힘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전시는 2017년 4월 30일까지 이어진다.
1929년 설립된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다. 수십 만 점에 이르는 소장품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전시를 기획하고, 다양한 워크숍과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화려 한 소장품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에디터_ 김민정
디자인_ 전종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