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리뷰

예술가 어머니와 과학자 아버지가 만든 로봇

2009-12-29

로봇은 인류가 가장 만들고 싶었던 꿈과 이상이다. 오랫동안 인류는 자연이나 우주 속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들을 관찰하고 응용하면서 풍부한 상상력으로 진화해왔으며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로봇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느님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했듯이 인간은 디자인의 표본이며 아름다운 예술과 첨단기술이 합하여 사람과 닮은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Humanoid)가 탄생된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 제공 | 소마미술관


예술과 과학이 함께 만든 로봇이라는 주제로 소마미술관이 12월 17일부터 '아이로봇, i Robot'展을 개최했다. 전시에서는 백남준, 고근호, 백종기, 낸시랭, 이해민선, 최우람, 이기일 등 총 16명의 설치작품이 전시되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 인간의 상상력이 현대사회의 심리상태와 얽혀 시각화된 로봇을 소재로 작가적 감성을 어떻게 다양하게 풀어내는지 볼 수 있다. 지난 세기 로봇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진화해온 흐름을 엿보는 이번 전시는 2010년 3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즐거운 상상 / 인간, 로봇을 꿈꾸다 / 로봇 인간을 꿈꾸다 / 인간과 로봇의 결합으로 나뉘어 보여진다. 이질적으로 여겨졌던 로봇과 인간, 두 영역이 인간의 상상력으로 조화롭게 만나 미래를 그리는 것이다. 로봇의 역사를 비롯하여, 백남준, 구보다 시게코의 로봇,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상상이 만든 로봇들을 60여 점이나 볼 수 있다.


로봇은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산물로, 고대 신화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SF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해 온 오랜 상상의 주인공이다. 그런 상상의 주인공인 로봇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영원불변한 영웅으로 자리해왔다. 인간의 모습을 띄면서도 인간의 콤플렉스를 뛰어넘어 로봇을 현대 젊은 작가 14명이 저마다의 색깔로 표현해 내어 관람자의 흥미와 무한한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아이로봇, i Robot 전'은 아시모프가 쓴 원작 『아이, 로봇 (I, Robot)』에서 차용되었다. 아시모프의 이 소설은 다양한 연대, 캐릭터, 장르로 엮여 있는 아홉 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을 내레이터로 하여 연속성을 갖는데, 이를 토대로 프로야스 감독이 시퀀스로 모아 <아이, 로봇> 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번 전시의 스토리텔링은 소설 『아이, 로봇』과 같은 인간과 로봇의 대결보다는 상생의 개념에서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전시의 로봇들이 꿈꾸는 것이 기계적 인간인가, 인간적 기계인가를 굳이 복잡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 작가란 무릇 꿈꾸는 자인 것을, 그들의 상상력이 현대문명의 산물인 로봇과 합작하여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로봇시대와 함께 분명 우리 인간의 삶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할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곧 우리 앞에 다가올 현실을 '아이로봇, i Robot 전'을 통해 마음껏 상상해 보고, 인류와 함께 살아갈 동반자이자 21세기 새로운 키워드인 로봇과 함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꿈꿔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로봇을 만든 작가들

고근호는 동화속의 주인공을 우리 시대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만들고 그려 나간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유희적 표현으로 회화적 릴리프를 만든다. 밝은 원색으로 돈키호테와 물레방아, 누드 여인, 철 투구, 옷, 방패와 창을 든 동화속의 영웅이 탄생된다. 이들은 찰리 채플린, 마릴린 먼로, 배트맨 등 영화나 만화 속에서 만나던 당대의 스타들로 우리 내면에 언제나 살아있는 대중적 도상이다. 작가는 대중적 아이콘을 통해 개인의 추억은 물론 동시대 사람들 사이의 이해와 대화를 매개하고자 한다.

김동호는 폐기된 전자제품을 주워 모아 그것을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무당벌레와 사슴벌레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대개 트랜지스터와 같은 기계 부속들로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버려진 전자부품들이다. 작가는 차가운 산업사회 폐기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정감 넘치는 따스한 생명체로 변신시켜 우리에게 감동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부산물인 동시에 미적 감수성의 대상으로 주목되어야 한다.

김 석은 소재와 주제 양 측면에서 인간과 로봇의 경계, 교차 지점을 강조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갖는 환타지와 비현실적 모습으로 로봇은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두드러진다. 그의 로봇은 인간 능력을 뛰어 넘는다. 하늘을 날아 로켓주먹을 쏘고 악의 힘을 물리치는 일은 한계를 초월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준다.

김영호는 <인공돼지의 꿈 그리고 물고기> 를 제작한다. ‘인공돼지’와 ‘물고기’의 익살적인 이미지는 상당히 풍자적이다. 각각의 조형은 대체로 매우 개성이 강하며 다양한 표정을 지닌 것으로, 사적인 동시에 일반적인 사회의 단면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제작소를 칭하는 ‘factory'는 동일한 용기로 획일화 시키는 기계공장으로 다양한 물고기를 일상 속의 대중을 떠오르게 한다. 특유의 상징적 표현이며, 새로운 시대의 해학으로 주목된다.

낸시랭은 대중적 팝아티스트로 유명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로봇의 모형사진과 명화, 인물사진 등을 콜라쥬한다. 이번 전시에서 ‘터부 요기니’는 그가 고안한 천사와 사탄을 의미하는 합성어이다. 잘려진 신체와 금속, 로봇의 몸에 어린아이나 여인의 얼굴을 한 이 캐릭터는 ‘낸시랭’이라는 캐릭터와 하나가 되어 예술과 소비상품의 극적인 대조와, 강함과 유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우리시대의 젊은 초상으로 주목받는다.

노진아는 기계적 형태의 로봇이 아닌 변종의 유기체와 인간 형상을 조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인간과 기계의 소통에 대한 질문을 해왔던 작가는 인간이 보지 못하던 영역에 엄연히 존재하는 생물을 제시함으로써 미생물로 규정해오던 것을 다시 보게 한다. 작가는 상상적 세계에서 발견되는 생물을 통해 인간과 기계 혹은 생명 자체에 대한 관습적 문제를 제시한다.

백종기의 <노란 태권브이> 나 <아톰> 은 어린 시절의 우상처럼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이다. 소통을 위한 로봇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그는 특히 어린 세대들과의 교류를 강조한다. 캐릭터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등 참신한 표현방식을 통헤 보다 흥미로운 회상을 유도한다.

왕지원은 현대적 앙코르와트나 보로부두르 사원처럼, 플라스틱 모형의 인물상을 설치한다. 이러한 인간상을 통해 “사이보그 기술을 통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현재의 인간이 아닌 유한한 육체를 초월한 그 무언가로 바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인간의 몸과 사고를 닮는데서 그치지 않고 종교마저 갖는 사이보그, 이러한 사이보그 형상을 통해 왕지원은 과거와 미래의 인간 실존에 대해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용관은 시각적 차이를 다루는 옵티컬 회화를 제작한다. 시차적 표시영역은 회화의 새로운 영역으로 나타난다. 그의 그림은 시각 현상의 입체적 관측과 양식으로 치밀하게 그려진다. 장난감 블록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그의 작품은 일견 친숙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회화양식은 이율배반적인 원리에 의해 재현된 만큼 모순적인 구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칭판단으로 포착할 수 없는 현상들을 암시적으로 지시한다.

유영운의 경우는 코믹한 형상들의 모형으로 잡지나 전단지, 텍스트, 인쇄물, 스티로폼으로 제작한다. <해태> 형상과 <오바마> , <배드맨> 등으로 작가는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이용한 캐릭터 조각을 가지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물질적 실체로 포착한다. 그의 캐릭터 모형은 인쇄물이라는 물질로부터 출발했다. 잡지와 전단지 같은 인쇄물을 매스 미디어의 면면을 대변하는 물질로 파악하고 그것을 캐릭터 조각의 피부가 된다. 대중적인 아이콘들이 가지고 있는 허구적 판타지를 지적한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 실재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시각화함으로써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물질적 존재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기일은 담뱃갑으로 로봇을 만들거나 철근 구조물로 거대한 입체 로봇 조각을 제작, 설치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프로파간다’ 시리즈는 ‘프로파간다’ 자체의 허구적 속성과 시대적 상황에서 전개되는 여러 선동적 행위들의 전략적 면모에 대한 관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을 기반으로 작가는 자본시장체제에서 권력적으로 작용하는 숨은 구조와 선전성에 대한 논리를 다룬다.

이해민선은 컴퓨터 드로잉은 하이브리드 동물을 그려낸다. 그는 건축도면과 같은 물질문명의 레디메이드를 재조합함으로써 일종의 로봇과 같은 형상을 이끌어낸다. 건축도면에 지시하는 오늘날의 생활공간은 매우 자동화 되어있으며 사람들은 암암리에 공간의 질서에 따라 획일화된다. 이때 총체적인 공간을 토대로 변형된 로봇은 그런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뿐 아니라 규정된 사회의 틀 속에서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정우철의 작품 안에는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다세대 주택들이 마치 블록을 끼워 맞춘 듯 존재한다. 서울 안, 작가가 직접 수집한 '다세대 주택'이라는 모듈은 작가의 임의대로 조립되어 있으며 평면 투시로 표현되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이미지는 장난감처럼 희화적이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매우 냉소적인데 이는 도시민의 획일적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냉소적 태도는 매체 속 환상과, 실재 사이의 괴리에 관련되어 있다.

최우람의 곤충 형상의 로봇 조각은 실물처럼 움직인다. 공학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일종의 기계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의 기계생명체는 실제 자연의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생명체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강조되고 있다. 작가는 기계생명체 각각에 고유한 학명과 특성을 부여하고 기술적으로 실제 생명체와 못지않은 모습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는 매체환경과 과학기술의 변화가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과 더불어 기계적으로 진화하는 또 다른 자연과 우주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인공생명체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