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8
<‘한우’와 ‘한돈’이 나란히 쓰이듯, ‘한글’과 ‘한말’도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이름은 대상을 부르는 도구이면서, 그 대상을 이해하는 틀이다. 익숙한 것도 이름을 얻으면 새롭게 보이고, 흩어져 있던 것들도 하나의 이름 아래 정체성을 갖는다. 디자인이 형태를 만드는 일에 앞서 이름과 의미를 설계하는 일인 이유다.
<‘한돈’의 탄생이 보여준 이름의 힘>
우리에게는 ‘한우’라는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반면 국산 돼지고기를 함께 아우르는 이름은 오랫동안 마땅치 않았다. 개별 업체의 브랜드는 있었지만, 소비자가 수입산과 구별해 부를 공통의 이름은 ‘국산 돼지고기’라는 설명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9년 대한양돈협회가 추진한 국민 대상 명칭 공모와 브랜딩 전문회사의 개발 작업이 만나 ‘우리돼지 한돈’이 탄생했다. 그해 12월 22일 전국돈육생산자대회에서 공식 선포된 이름이다.
필자가 경영하던 브랜딩회사가 이 명칭과 로고를 개발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목표는 여러 국산 돼지고기 브랜드를 포괄하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을 나타내는 ‘한’과 돼지를 뜻하는 ‘돈’을 결합하고, 태극과 돼지꼬리의 이미지를 로고에 담아 대표성과 친근함을 함께 표현했다. 이름과 시각적 상징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론 ‘한우’는 품종에 뿌리를 둔 이름이고, ‘한돈‘은 국산 돼지고기를 아우르는 통합브랜드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일상에서 두 이름은 우리 축산물을 구별하고 기억하는 익숙한 짝이 됐다.
’한돈‘ 역시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명칭인지 브랜드인지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홍보와 사용을 거치며 한돈자조금, 대한한돈협회라는 조직의 이름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름이 산업의 공통 언어로 성장한 사례다.
<우리글에 ‘한글’이 있다면, 우리말에는 ‘한말’이 있다>
이 경험을 떠올리며 우리 언어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우리 문자는 누구나 ‘한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 언어는 ‘한국어’, ‘한국말’, ‘국어’, ‘우리말’로 다양하게 불린다.
각각 정확성과 쓰임이 있는 이름이지만, ’한글‘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친근하고 간결한 이름은 일상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 이름이 있는데도 그렇다. 바로 ‘한말’이라는 이름이다.
나는 우리 언어를 ‘한말’로 널리 부르기를 제안한다. 우리글은 ’한글‘, 우리말은 ’한말‘로 부르자는 것이다. 이 짧은 대응에는 언어와 문자의 관계를 쉽게 이해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한글은 우리 언어를 적는 문자 체계이고, 한국어는 어휘와 문법을 갖춘 언어다. 한글을 읽을 줄 알아도 단어와 문장의 뜻을 모르면 한국어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 언어는 한글 창제 이전에도 존재했다.말과 글자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국립국어원이 언어를 가리킬 때 ‘한국어’, 문자를 가리킬 때 ‘한글’을 구별하도록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이 경계가 종종 흐려진다. ‘한글로 말한다’거나 한국어 수업을 모두 ‘한글 수업’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때 ‘한말을 한글로 적는다’고 설명하면 관계가 분명해진다. 언어는 ‘한말’로, 문자는 ‘한글’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한말‘은 입으로 하는 말뿐 아니라 글로 표현된 언어까지 포함하는 한국어의 이름이다.
우리 문자는 누구나 ‘한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 언어는 ‘한국어’, ‘한국말’, ‘국어’, ‘우리말’로 다양하게 불린다. 각각 정확성과 쓰임이 있는 이름이지만, ’한글‘과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친근하고 간결한 이름은 일상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미 그 이름이 있는데도 그렇다. 바로 ‘한말’이라는 이름이다.
<이미 뿌리를 가진 이름, ‘한말’>
’한말‘에는 이미 사용의 역사도 있다. 1986년 창립한 ’한말연구학회‘는 우리말인 ‘한말’과 우리글인 ‘한글’을 연구해왔다. 학회는 ‘한말’을 ‘우리 겨레의 말’이라는 뜻으로 설명하며, 주시경이 사용한 ‘한나라말’을 줄인 이름이라고 밝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국립국어원 국어 연감에도 이러한 설명이 기록돼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한말‘의 대중화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우리 언어를 ’한말‘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에는 기존의 사용과 연구가 뒷받침돼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이름을 교육과 문화, 일상의 대화로 넓히는 것이다.
이름의 구조도 자연스럽다. ‘한글’과 ‘한말’은 같은 ‘한’을 공유하면서 ‘글’과 ‘말’로 기능을 구별한다. 두 음절의 짧은 이름이 짝을 이루어 언어와 문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한글을 아는 사람에게 한말을 소개하기 쉽고, 두 이름을 함께 익히면 문자와 언어의 차이도 기억하기 쉽다. 디자인의 관점에서는 익숙한 이름의 힘을 활용해 새로운 이해를 만드는 명명 방식이다.
우리글을 ‘한글’이라 하듯, 우리말을 ‘한말’이라 부르자. 이것이야말로 한글날 100주년에 우리가 함께 시작해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국어‘의 친근한 이름으로 ’한말‘을 쓰자>
‘우리말’이 가진 따뜻함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어가 우리말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자신의 언어가 우리말이다.
그러나 ‘한말’은 우리 언어의 정체성을 담으면서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소개할 수 있는 이름이다. 처음에는 ‘한말(한국어)’로 함께 표기하고, 그 뜻이 익숙해지도록 사용하면 된다.
이 이름은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이주민과 다문화가족, 해외의 학습자도 ’한말‘로 인사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 우리 언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다른 언어를 존중하는 태도와 함께할 때 더 넓은 공감을 얻는다. ’한말‘이라는 이름에는 그 열린 소통의 뜻이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다.
한국어라는 명칭은 이미 교육과 학술, 국제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말‘의 대중화는 그 기반 위에서 친근한 이름의 쓰임을 넓히는 일이다. ‘한국어’와 ‘한말’을 상황에 맞게 함께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익숙한 이름이 되려면 실제로 쓰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국산 돼지고기를 함께 아우르는 이름은 오랫동안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2009년 대한양돈협회가 추진한 국민 대상 명칭 공모와 브랜딩 전문회사의 개발 작업이 만나 ‘우리돼지 한돈’이 탄생했다. 당시 목표는 여러 국산 돼지고기 브랜드를 포괄하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출처: 대한한돈협회)
<‘한말•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는 현장으로>
교육 현장과 문화 공간에서 그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한말•한글 교실’에서 문자와 언어를 함께 배우고, 전시에서는 한글로 이름을 쓰고 한말로 인사를 나누는 체험을 마련할 수 있다. 외국인 주민에게 필요한 안내문 읽기와 생활 대화를 연결할 수도 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 일과 ’한말‘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질 때 배움은 생활로 이어진다.
글자를 읽는 능력은 안내문을 이해하는 힘이 되고, 단어와 문장을 배우는 일은 이웃과 대화하는 힘이 된다. 한말과 한글을 함께 가르치고 사용하는 것은 문자와 언어의 관계를 실제 경험으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름의 제안이 구체적인 배움과 소통으로 이어질 때, ’한말‘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를 얻을 것이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과 미술관, 지역의 생활언어 교실은 그 이름을 익숙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한우’ 로고는 우리 토종 먹거리의 정체성을 붓글씨와 태극 문양으로 표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다. 소의 뿔과 꼬리를 글자의 획에 형상화해 건강함과 신선함을 나타내고, ‘우’의 ‘ㅇ’을 태극으로 표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의미를 담았다. 자연스러운 붓글씨는 전통적 정서와 친근함을 더한다. 한우라는 이름에 담긴 가치를 글자 자체의 모습으로 전달하는 디자인이다. (출처: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한글날 100주년, ’한말‘을 함께 부르자>
올해 10월 9일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26년 ‘가갸날’로 시작한 기념일이 한 세기를 이어온 것이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기도 하다. 이 뜻깊은 계기에 문자의 가치와 함께 그 문자로 담아내는 우리 언어의 이름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한글날 100주년을 계기로 ‘한말’을 더 많은 국민이 알고, 편하게 사용하는 이름으로 만들자.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언론과 일상의 대화에서 ‘한말’과 ‘한글’을 함께 불러보자. 이미 존재하는 이름에 오늘의 쓰임을 더하는 일이다.
‘한우’와 ‘한돈’이 나란히 쓰이듯, ‘한글’과 ‘한말’도 나란히 쓰이기를 바란다. ‘한돈’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국민들에게 정착되어지듯 이름은 제안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부르고, 쓰고, 뜻을 공유할 때 비로소 일상의 언어가 된다.
우리글을 ‘한글’이라 하듯, 우리말을 ‘한말’이라 부르자. 이것이야말로 한글날 100주년에 우리가 함께 시작해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올해 10월 9일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글날 100주년을 계기로 ‘한말’을 더 많은 국민이 알고, 편하게 사용하는 이름으로 만들자.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언론과 일상의 대화에서 ‘한말’과 ‘한글’을 함께 불러보자. 이미 존재하는 이름에 오늘의 쓰임을 더하는 일이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글_ 정석원 편집인 (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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