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7
5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세종대왕 나신 날 629돌 기념식에 다녀왔다.
무대 중앙에는 근엄한 세종대왕 어진이 걸려 있었고, 어린 학생들은 궁중 복식을 입고 축하 공연을 펼쳤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한글을 만든 위대한 군주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기념행사일 수도 있지만, 오늘은 내게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세종대왕을 기리는 국회 행사장 한편에서, 나는 거대한 역사 속 한 이름 없는 조연처럼 남아 있는 내 선조를 떠올렸다.
세종대왕을 바라보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선조, 정분(鄭苯) 할아버지.
진주 정씨 충장공파의 시조이자, 조선 초기의 중신이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을 기억할 때 대개 상징이 분명한 사람들을 먼저 떠올린다. 세종대왕처럼 위대한 군주, 사육신처럼 극적인 충절의 주인공들 말이다.
오늘 행사 역시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우리 집안의 선조 정분(鄭苯) 할아버지도 바로 그 시대를 살았구나.
세종과 같은 시대의 공기를 마셨고, 같은 조선의 하늘 아래에서 나라의 일을 맡았던 사람.
그는 세종·문종·단종 시기에 걸쳐 여러 관직을 지낸 대신이었다. 우의정까지 오른 정치인이었지만, 내가 요즘 새롭게 발견하는 정분(鄭苯)의 모습은 정치가라기보다 실무형 국가 경영자에 가깝다.
세종실록을 보면 그는 숭례문 개축 공사를 감독했고, 왕실 건축과 성곽 축성, 왕릉 조성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공공건축 디렉터이자 국가 인프라 프로젝트 매니저쯤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평생 디자인을 업으로 살아왔다.
브랜드를 만들고, 도시의 얼굴을 설계하고, 공공기관의 정체성을 디자인하고, 문화공간을 기획해왔다. 최근에는 ‘여행이야기미술관’을 구상하고, 세계 도시 로고를 모아 ‘세계 로고 이야기미술관’ 조성을 꿈꾸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 관심은 늘 비슷했다.
공간, 상징, 공공, 기억.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600년 전 내 선조가 맡았던 일의 키워드와 묘하게 겹친다.
물론 혈통이 직업을 결정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족보가 사람의 삶을 설계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조금 감상적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을 기리는 국회 행사장 한편에서, 나는 거대한 역사 속 한 이름 없는 조연처럼 남아 있는 내 선조를 떠올렸다.
사육신도 아니고, 생육신도 아니다. 교과서에 굵은 글씨로 남는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 시대 한복판에서 나라의 공간을 만들고, 질서를 세우고, 국가의 형태를 다듬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600년 뒤,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무엇을 만들며 살아야 하는가.
공동체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가.
오늘 세종대왕을 기리는 자리에서, 나는 세종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한 선조를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 안에 흐르는 시간의 길이를 생각했다.
629년.
세종대왕 나신 날이 내게는 조금 특별했던 이유다.
글, 사진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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