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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삼성이 뿌린 씨앗, 삼성이 거두어라”- SADI가 남긴 교육 실험과 삼성의 선택

2026-01-12

최근 삼성의 디자인 교육기관 SADI (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가 정규 과정 종료 수순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식적으로는 ‘신입생 선발 중단’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디자인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폐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95년 설립 이후 약 30년, 한국 디자인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기관이 이렇게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씁쓸하다.

 

SADI의 종료는 단지 한 학교의 문을 닫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난 30년간 한국 디자인 교육이 어떤 실험을 해왔고, 무엇을 성취했으며, 또 무엇을 포기하려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학교’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던 SADI

 

SADI는 일반적인 의미의 대학도, 사설 학원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교육 시스템이었다. 뉴욕 파슨스의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한국적 환경에 맞게 재구성한 SADI의 모델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곳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문제 정의에서부터 리서치, 콘셉트 도출, 프로토타이핑, 비평(크리틱), 수정과 재구성에 이르는 사고 훈련의 과정이었다. 학생들은 과제를 받는 대신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결과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고의 구조였다.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 교육 방식은 이후 한국 디자인 대학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많은 대학들이 ‘프로젝트 기반 수업’, ‘융합 스튜디오’, ‘캡스톤 디자인’을 이야기하는데, 그 언어와 구조의 상당 부분은 이미 SADI에서 선행적으로 실험된 것이었다.


한국 디자인 교육이 배운 것들

 

SADI가 한국 디자인 교육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방법론’이었다.

 

첫째, 크리틱 문화를 제도화했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의 작업을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토론하는 구조는 당시 한국 교육 환경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이 문화는 이후 대학의 스튜디오 수업, 포트폴리오 리뷰, 공개 심사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산업과의 연결 방식을 바꿨다. SADI는 디자인을 학문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으로 다뤘다. 특히 제품, 테크,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현업과의 연결’을 전제로 한 교육 모델은 이후 기업 연계 프로젝트와 산학협력의 전형이 되었다.

 

셋째, 디자인을 전략적 사고로 재정의했다. SADI의 졸업생들이 단순한 디자이너를 넘어 기획자, 디렉터, 브랜드 전략가, UX 리더로 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학교는 처음부터 디자인을 ‘결과물 생산’이 아니라 ‘문제 해결 구조’로 가르쳤다.

 

SADI 30주년 기념 동문 전시 오프닝 행사
 

 

기업이 만든 교육기관의 가능성

 

SADI는 기업이 만든 교육기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매우 드문 사례였다. 한국에서 기업이 교육기관을 만든 경우는 많았지만, 대부분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나 단기적 인력 수급에 머물렀다.

 

그러나 SADI는 달랐다. 이곳은 삼성의 ‘채용 사관학교’가 아니었다. 오히려 삼성은 이곳을 통해 한국 디자인 생태계 전체를 실험했다. 교육과 산업, 로컬과 글로벌, 기술과 문화의 접점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했다.

 

이 모델은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년, 30년 뒤에 산업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그 결실은 이미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졸업생들이 한국과 해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SADI의 종료, 그런데 왜 지금인가

 

SADI의 우울한 소식을 접하며 아이러니한 것은 SADI의 종료가 논의되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학교가 가장 필요한 시기라는 점이다.

 

AI는 디자인의 도구를 바꾸고 있다. 생성형 AI는 시각화, 레이아웃, 영상, 인터페이스까지 자동화하고 있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단순한 ‘제작 기술’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SADI가 가르치던 것이었다.

 

AI 시대의 디자인 교육은 더 이상 기능 훈련이 아니라 사고 구조 훈련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SADI는 끝나야 할 학교가 아니라, 진화해야 할 학교다.

 

SADI 30주년 기념 동문 전시 포스터

 


‘폐원’이 아니라, ‘재설계’가 필요하다

 

SADI는 지금 닫혀야 할 학교가 아니라, 다시 설계되어야 할 플랫폼이다.
AI × 디자인, 기술 × 인문, 제품 × 경험, 데이터 × 스토리.
이 모든 교차점이 바로 이 학교가 다뤄왔던 영역이다.

 

만약 삼성이 진정으로 미래를 말하고 싶다면, 이런 교육 실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대담하게 확장해야 한다.

 

삼성은 최근 기술인재 중심의 조직 재편과 외부 기술 인재 영입을 통해 ‘기술의 삼성’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이재용 회장이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기술 없이는 미래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 왔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해야 힌다.

 

 


SADI 1995-2025 아카이브북 

 

 

“삼성이 뿌린 씨앗, 삼성이 거두어라”

 

삼성은 지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고공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AI, 바이오, 모빌리티, 로보틱스까지— 미래 산업의 거의 모든 축에 발을 걸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이, 이 정도 교육기관 하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이 선택은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이 어떤 기업으로 기억될 것인가의 문제다.

 

SADI는 비용이 아니다. 단기적인 ROI로 환산할 수 없는, 장기적인 사고 자본이다. 기술이 아니라 사고 구조를 설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플랫폼이었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느냐’다. 그 판단 능력을 훈련해온 곳이 바로 SADI였다.

 

삼성의 미래 전략에 기술은 있지만, 그 기술의 방향을 설계하는 사고 구조가 없다면 그 미래는 위험하다.

 

기업이 만든 학교는 기업의 철학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스스로 치우는 선택이 과연 현명한가.

 

SADI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다. ‘종료’가 아니라, ‘확장’과 ‘재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AI 시대의 교육 모델로, 기술 혁신과 인재 전략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 학교는 삼성이 만들었다. 그렇다면 책임도 삼성에게 있다.
삼성이 뿌린 씨앗이다. 이제, 삼성이 거두어야 한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사진출처_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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