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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칼럼] 권력 앞에서 침묵한 디자인 - 김건희 사태가 드러낸 디자인계의 부끄러운 자화상

2025-12-29

요즘 대한민국의 시선은 법정으로 향해 있다.
윤석열과 그의 배우자 김건희를 둘러싼 재판과 수사는 ‘국정농단’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다시 소환한다. 정치 권력, 사법 판단, 국가 시스템 전반이 시험대에 오른 지금, 이 거대한 사건의 그늘에 가려 거의 언급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언제부터 정치의 외주가 되었는가

 

디자인은 정치와 무관한 중립 지대가 아니다.
공공 디자인은 정책의 얼굴이며, 문화 디자인은 권력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다. 그럼에도 디자인계는 오랫동안 “디자인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말을 방패처럼 사용해 왔다. 이번 사태는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 자기기만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권력이 디자인에 손을 뻗을 때, 디자인계는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해 왔다. 우리는 침묵했고, 고개를 숙였으며, 때로는 자발적으로 줄을 섰다.


‘디자인 박사’라는 가장 매끄러운 통로

 

김건희는 ‘디자인 박사’라는 이력으로 디자인계와 반복적으로 접점을 만들어 왔다. 국내 유일의 디자인 정책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거나 연계된 주요 디자인 행사, 디자인 관련 공식 석상에 영부인으로서, 혹은 디자인 전공자라는 명분으로 등장했다.
그 타이틀은 행사장의 초대장이 되었고, 인사의 명분이 되었으며, 권력과 디자인을 연결하는 가장 매끄러운 윤활유로 작동했다.


의전의 무대로 바뀐 디자인 행사

 

행사장에 권력이 들어오는 순간, 공간의 성격은 달라진다.
디자인 행사는 토론과 비판의 장이 아니라 의전의 무대로 바뀌고, 축사는 메시지가 아니라 신호가 된다. 그날의 사진 한 장은 이후 관계의 증명이 된다. 디자인계는 이 과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질문은 없었고, 검증도 없었으며, 불편함을 표현하는 목소리조차 거의 없었다.

 

디자인 행사는 공공성과 전문성이 교차하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행사는 권력의 동선에 맞춰 재편되었고, 발언의 내용보다 참석 여부 자체가 의미를 갖는 자리가 되었다. 디자인은 스스로의 언어를 잃고, 권력의 제스처를 해석하는 역할로 밀려났다.


표절 앞에서 무너진 디자인 학문의 최소 기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학계에서 드러났다.
김건희의 석사 및 박사 논문은 표절 논란 끝에 학위 취소 및 무효 절차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연구윤리 문제가 아니다. 논문을 심사하고 학위를 부여한 학문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 수반되는 사안이다. 특히 디자인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분야다. 그런 디자인 학계에서 표절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제도의 허술함을 넘어 학문 윤리의 붕괴를 의미한다.

 

 


(사진 출처: 구글)

 

 

학문 공동체는 왜 침묵했는가

 

그럼에도 디자인 학계는 오랜 기간 침묵했다.
양심 선언도, 공개 토론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적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구조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학계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디자인 박사’라는 허울이 권력의 신뢰를 보증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것을 방조했다.

 

지금에 와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논문을 심사한 디자인 관련 학과 교수들은 어디 있었는가. 표절이라는 학문 공동체의 가장 치명적인 금기를 눈앞에 두고, 단 한 명의 양심 선언도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산업 현장에서 반복된 과잉 친절

 

더 부끄러운 장면은 산업 현장에서도 벌어졌다.
디자인 관련 정부부처 또는 그 산하기관이 연계된 각종 디자인 행사들을 떠올려 보라. 김건희가 ‘디자인 박사 출신 영부인’이라는 이유로 초대되고, 축사와 사진 촬영의 중심에 서고, 디자인계 인사들이 그 앞에서 일제히 고개를 숙이던 장면들. 그것은 단순한 의전이 아니었다. 권력에 대한 과잉 친절이었고, 향후 무언가를 기대하는 몸짓이었다.


전시와 협찬, 문화는 언제부터 거래가 되었나

 

문화·전시 영역으로 시선을 넓히면 풍경은 더 노골적이다.
코바나컨텐츠를 둘러싼 각종 협찬 논란은 단순한 사법적 유무죄를 넘어, 권력과 문화가 어떻게 거래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업의 협찬은 ‘예술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고, 전시는 문화적 성취라는 외피를 둘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줄 서기, 관계 맺기, 보험 들기가 작동했다. 디자인과 전시는 그 거래의 무대가 되었다.


디자인은 공공의 언어인가, 권력의 장식인가

 

이 모든 과정에서 디자인계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권력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과연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일인가. 영부인이 참석한 행사가 디자인의 공공성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디자인을 권력의 이미지 관리 도구로 전락시키는가. 학계와 산업계, 공공기관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러한 질문을 회피해 왔다.


권력과의 거리를 설정하지 못한 결과

 

‘디자인정글‘이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번 사태는 특정 인물의 일탈을 넘어, 디자인계가 얼마나 쉽게 권력의 언저리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공공성을 말하려면, 권력과의 거리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거리를 설정하지 못하면, 디자인은 언제든 정치의 장식이 된다.

 

 

(사진 출처: 구글)

 


디자인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이제 디자인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침묵을 유지한 채 ‘정치적 사안’이라며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계의 윤리, 공공 디자인 행사의 운영 방식, 권력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인가.

 

디자인은 ‘기술’이기 이전에 ‘태도’다.
권력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그 분야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이번 사태는 디자인계가 그 태도를 다시 묻지 않는다면, 같은 장면이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것임을 경고한다. 시론은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지금 디자인계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권력’의 곁에 설 것인가, ‘공공’의 편에 설 것인가.”

 

디자인 업계의 시계 바늘도 어느덧 한 해의 마감을 가리키고 있다.

 

글_ 정석원 편집주간 (jsw0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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