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7
우리는 매 순간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간다. 그 메시지는 감정일 수도 혹은 생각일 수도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출판인 이재욱 대표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지닌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행위 중 하나인 글, 그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에 35년 이상 집중해왔다.
세상에서 책을 만드는 일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는 카피라이터로 첫 발을 내디뎠다. 출판인으로 오랜시간 책을 만들어온 그는 카피를 쓰는 일이나, 시나 소설을 쓰는 일 모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재욱 대표
카피라이터에서 출판인이 된 그는 출판업에 뛰어들기 위해 잠시 AE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90년대 실록출판사를 만들었고, 94년 출판사를 (주)새로운사람들 법인으로 전환했다. 모두출판협동조합(협동조합출판사 모두북스)도 그가 만들었다. 책을 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2017년 조합을 결성한 것. 두 출판사의 대표인 그는 <문학뉴스>의 대표이사 발행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출판활동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 700권이 넘는 책들을 만들어왔다. 책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책으로 만들어온 그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출판플랫폼 ‘숲’을 통해서다.
‘숲’은 가장 합리적인 비용, 최소화된 비용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으로,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플랫폼을 활용해 책을 낼 수 있다. 연고가 없는 작가라해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면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출판에 대해 정보가 없어도 괜찮다. 여러 명의 출판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책 내기에 대한 모든 과정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출판에 한번 발을 들이면 결코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출판인 이재욱 대표가 숲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Q. 처음 카피라이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취업이 되지 않았는데 선배들의 도움으로 기업의 기조실에 입사를 했다. 당시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도 없을 때였다. 카피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Q.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어떻게 문학 쪽으로 오게 됐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욕망이 있다는 것. 카피를 쓰는 것이나 문학인들이 글을 쓰는 것이나 출판인이 책을 내는 것은 모두 같은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신문 매체에 기사를 써서 올리는 것도 같은 욕망이다. 이것의 기본은 모두 ‘메시지’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카피도 쓰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것도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메시지의 전달이다. 생명체는 모두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카피를 쓰는 것과 책을 내는 것 모두 똑 같은 행위라 생각한다. 똑 같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이다.
Q. 새로운사람들에서는 주로 어떤 책을 만드나.
책이 되는 건 다 한다. 정치적인 책의 경우에도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논의될 만한 주제라면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학, 사회, 인문학, 교양 등 내지 않는 책이 없다. 지금까지 낸 700여 권의 책 중엔 희한한 책들도 있다.
새로운사람들은 ‘기획 출판’이라는 말을 가장 처음 쓴 곳이기도 하다. ‘기획 출판’을 통해 많은 책을 냈고,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만들었다.
이재욱 대표
Q. 모두출판협동조합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출판사, 출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모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원으로 가입을 하면 평생 회비를 내게 되는데, 모두북스에서 나오는 모든 책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숲’의 원시적인 형태라 보면 된다.
Q. <문학뉴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문학뉴스는 어떤 매체인가.
문학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문화예술 일반을 다루고 있다. 전시, 공연 등이 모두 포함된다. 문학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나. 생활 전체를 다루는 종합예술 언론이다. 단, 정치와 종교는 다루지 않는다.
Q. 출판플랫폼 ‘숲’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023년 병원신세를 질 일이 있었다. 건강이 무척 악화되어 병원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고, 가족과 임종도 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회복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을 했다. 앞으로 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에 대해서. 그때 생각한 것이 ‘숲’이다.
글이 아무리 멋있어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면 좋은 책을 내지 못한다. 책을 35년 정도 만들다 보니 돈이 없어서 책을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정들을 많이 봤다. 그런 상황을 그냥 지나가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생각했다. 너무 안타까워 머리를 굴린 것이 ‘숲’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책이 되는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서 고심 끝에 시작하게 됐다.
'숲'의 메인 페이지 (supnsup.co.kr/)
Q. ‘숲’에 대해 설명한다면.
‘숲’은 플랫폼 형태로, 출판 기능을 한다. 연재하는 원고들부터 원고가 완성되어 있는 상태의 글까지 여러 카테고리의 글들, 책이 될 만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모인다. 현재 약 50명 정도의 작가들이 각자의 방을 만들어 글을 올리고 있다. 작가들을 숲으로 모시는 거다.
모두 작가지만 모두가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책을 내고 싶은데 전혀 연고가 없고, 여기저기에서 구박을 받는다면 ‘숲’으로 오면 된다. 글을 쓰고자 하고 책을 내고자 하는 모두가 대상이다. 이 글들을 100% 책으로 만드는 것이 ‘숲’의 목표다. 전부 종이책을 기본으로 한다.
Q. 어떤 책이 만들어지나, 책이 될 원고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장르를 구분 짓진 않는다. 책이 될 만하면 모두 책으로 만든다. 그 판단은 출판 감독의 역할을 하는 운영위원들이 한다. 대체로 책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자란다 싶으면 조언을 통해 책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
Q. 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나.
‘숲’에 있는 약 50여 개의 방을 분야별 운영위원들이 각각 담당한다. 1:1로 멘토링이 이루어진다. 한 달에 두 번 대면회의를 하고, 운영위원 토론방에서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어느 한 사람의 결정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글, 원고가 가장 첫 번째 소스다. 누구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입맛에 맞게 만들지 못할 뿐이다. 혼자서는 진행하기 힘든 이 과정이 운영위원들의 조언을 통해 이루어진다. 필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고, 다락방 깊숙이 처박혀 있는 것들을 꺼내게 할 수도 있다. 처음 시작할 때 1년 정도의 기간을 잡으라고 한다. 1년간 숙성을 시키면 책이 안 될 것이 없다.
책이 나올 때는 운영위원과 작가가 모두 모여 편집회의를 한다. 공정한 룰과 방식에 따라 책이 제작된다. 책을 쉽고 편하게 만들 수 있고, 의논을 해가면서 만들 수 있다. 출판사에 책을 맡기면 모든 것이 담당자에 의해 진행돼 당사자는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 알기가 어렵다. 숲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만드는 과정이 모두 오픈 된다.
디자인, 교정 교열, 인쇄비까지 모두 책정을 해놓고 그 내용을 기본으로 출간 부수만 정하면 되는 방식이다. 구태여 권수를 채울 필요도 없다. 디지털 인쇄로 10권, 단 한, 두 권의 책만 만들 수도 있다. 이익을 챙겨갈 출판사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작단가가 낮아지고,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책을 낼 수가 있다. 출판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굉장히 합리적인 방식이다. 저자에게 인세가 주어지는데, 러닝 개런티로 주어진다.
'숲'엔 메아리의 숲, 연재의 숲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마련되어 있다.
Q. ‘숲’이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반응이 어떤가.
‘나도 방을 만들어달라’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책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 권의 책이 제작 중에 있고, 곧 출간 예정이다.
Q. ‘숲’이라는 브랜드명은 어떻게 지어졌나.
‘숲으로 사람들이 모인다’라는 의미다. ‘사람이 책을 만나는 숲’이다. ‘숲’은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다. ‘함께’가 키워드다.
이재욱 대표
Q. ‘숲’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싶고, 누구나 다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 돈을 주면 책이 나오는 시스템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 그 방식은 별로 흥겹지 않다. 숲에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책을 만들 수 있다. 책의 품질은 최대로 높이고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개념이다.
아직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기업들의 메세나, 후원을 통해 책을 만드는 방식도 계획하고 있다. 후원하는 만큼 책을 기업에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Q. 출판의 매력은 무엇인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가장 재미있는 일이 출판이다. 출판에는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전부 새로운 내용 아닌가.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잘 아는 분야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분야를 다루게 되면 그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아야 책이 된다. 얼마나 재미있나. 어떻게 메시지를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래서 출판에 한번 발을 디디면 떠날 수가 없다.
‘숲’도 그런 재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책을 편하게 많이 낼 수 있으면 가장 좋지 않나. 우리만 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다. 누구든 할 수 있다. ‘돈도 안되는데 이런 노력 봉사를 해야 하나’ 하는 사람들은 못하겠지만, 노력 봉사라도 재미있다면 하는 거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지난해 20여 권의 책을 냈는데 올해는 ‘숲’을 통해 40여 권의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AI를 통해 많은 것이 이루어지는 사회지만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지능의 방식을 통해 뚝심으로 꾸준히 뚜벅뚜벅 나아가고자 한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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