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0
우리의 도서관은 책을 빌리러 가던 곳,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 도서관은 책이나 공부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이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도서관이 변화하고 있다. 책을 읽기 위한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책이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곳곳의 도서관은 열린 구조를 통해 물리적으로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시민들과의 연결과 융합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금기시되었던 대화가 가능한 공간도 마련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장으로써 역할하기 위해서다. 지역에 있는 작은 도서관도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으로서의 변화를 꿈꾼다.
한국에는 20,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다. 수많은 도서관들은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역할을 하고 펼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이러한 도서관을 위한 대표적인 도서관 단체로, 한국의 도서관 발전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가도서관,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전문도서관, 학교도서관, 병영도서관, 작은도서관 등 2만 2천여 개의 도서관과 10만 도서관인을 대표하며,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정수 사무총장으로부터 우리나라 도서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한국도서관협회 이정수 사무총장. 한국도서관협회 제13대 사무총장으로, 대학에서 도서관학(현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국내 경제일간지에서 조사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보도사진 데이터베이스 구축 업무를 담당했다. 2005년부터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관장으로 일하며, 서대문구의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통합해 서비스하는 지역사회의 공공도서관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다. 서울도서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제4기 대통령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 정부혁신협의체 위원, 한국도서관협회 서울, 인천, 경기지구협의회 회장, (사)공공도서관협의회 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문헌정보학 박사과정을 수료, 공공정책학을 전공해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박사과정 논문을 바탕으로 한 출판한 <공공도서관 정책환경과 법제변동사>로 제30회 한국출판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Q. 한국도서관협회에 대해 소개한다면.
한국도서관협회는 1945년 8월 30일에 창립되었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후 2주일만에 창립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한국도서관협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도서관단체로, 한국의 도서관 발전과 사서 권익을 위하여 일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공도서관 1,300여 개관, 작은도서관 7,000여 개관, 학교도서관 11,500여 개관, 대학 및 전문도서관 400여개 관이 있다. 또한, 사서자격 소지자는 10만명에 이른다. 협회는 이들이 소속한 도서관과 사서의 여러 현안에 대해 함께 대응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정책파트너로서 도서관 관련 법제와 정책에 관해 협력하고, 선도하기도 한다. 매년 10월에는 전국도서관대회를 개최하여 전국의 사서들이 모인 가운데 세미나 및 정보교환,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협회가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협회 80년사 발간, 앰블럼 및 영화제 공모 등의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100년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Q. 현재 우리나라의 도서관들은 어떠한 변화를 이루고 있나.
최근 건립하는 국내 도서관은 공간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예전의 도서관은 네모 반듯한 건물에 서고와 공부하는 공간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탁 트인 서가와 열람공간을 중심으로 북 까페, 수유실이나 유아실이 설치되어 있으며, 여러가지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 소공연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미술관과 도서관이 결합한 미술도서관, 음악 감상이 가능한 음악도서관, 문학작품 중심의 문학도서관처럼 특화된 주제의 도서관이 증가하고 있으며, 한옥도서관, 숲도서관 등 건물과 환경이 잘 어우러진 곳도 많다.
도서관을 잘 찾지 않던 청소년들에게 그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어르신과 장애인 등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마을의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장으로써의 역할도 한다. 한국의 도서관은 이제 ‘K-라이브러리’라는 브랜드로 외국의 도서관과 겨룰 만큼 많은 발전을 이뤘다.
서울도서관 관장시절 서울도서관 로비에서
Q. 서울시가 관내 122개 공공도서관에 대해 야간운영 계획을 밝혔다. 직장인 및 학생들의 독서 기회 확대를 위한 반가운 소식인데.
공공도서관 개관연장 사업은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낮 시간에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는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이 사업에 해마다 참여하는 도서관 수가 늘어나고 있다. 야간시간에 도서 대출이나 열람은 물론 인문학 강좌, 동아리 활동 등이 이루어진다.
낮 시간대 도서관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부나 어린이, 중장년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라면, 저녁 시간대의 도서관은 직장인이나 학생 등의 이용으로 활기차다. 예전에 근무하던 도서관이 시설개선 공사로 두 달 정도 휴관한 적이 있었는데,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게 되자 이용자들이 밤 시간대에 어김없이 환하게 불 밝히던 도서관이 어둠의 적막에 쌓여 있어 마음이 허전했다면서, 그동안 도서관의 소중함을 몰랐었다고 하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밤늦은 시간에도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설을 쾌적하게 관리하여 시민들이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도서관 직원들이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Q. 오는 10월에 개관하는 경기도서관은 효율적인 운영 및 서비스 강화를 위해 민간위탁 운영을 추진했다가 이를 철회, 직영운영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경기도서관은 경기도의 대표 도서관이다. 대표도서관은 일반적인 공공도서관이 아니라,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도서관 시책을 수립하고, 기초 지방자치단체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해당 광역 지자체의 도서관 협력과 연구 조사 등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대표도서관은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중요하고, 공공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경기도는 그동안 대표도서관을 별도로 설립하지 않고, 수원시의 선경도서관을 지정하여 최소한의 대표도서관 역할을 부여했고, 정책 역할은 경기도 도서관정책과가 수행해 왔다. 경기도서관은 정책은 경기도가 담당하고 경기도서관은 민간에게 위탁하여 서비스하는 모델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공성이 매우 강한 공공도서관을 민간단체에 위탁하는 것은 경기도의 도서관정책에 대한 의지의 부족으로, 위탁 주체에 따른 도서관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결여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도서관협회를 비롯한 도서관계가 일제히 반대를 했다.
그 과정에서는 드라마틱한 일도 있었다. 마감일 닷새를 남겨놓고 ‘경기도 청원’에 어떤 분이 올려놓은 경기도서관 위탁운영 반대 의견을 발견한 것이다. 1만명이 넘으면 경기도지사가 답변을 하는 것이었는데, 고작 5명이 청원한 상태였다. 한국도서관협회가 리더십을 발휘, 학계와 산하 협의회 등이 노력으로 11,500명이 넘게 청원을 했고, 비로서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서관의 직영과 전문 관장 영입 등을 약속했다.
청소년도서관서비스발전방안토론회
Q. 도서관이 라키비움(도서관+뮤지엄)의 형태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도서관은 당대의 모든 출간물을 후대에 전승하는 문화시설이다. 따라서 현재 이용과 함께 보존의 역할도 한다. 또 책에만 한정되지 않고, 디지털자료와 신문, 사진이나 그림 등을 수집하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는 뉴욕공공도서관의 사진 자료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도서관의 사진자료에서 앤디 워홀이 영감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훔쳐갔다고도 한다. 일반인부터 예술인까지 모두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수집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라키비움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그것은 각 영역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자료나 유물, 작품을 수집하고 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금은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과 통합을 통해 더 새롭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Q. 지자체 도서관 역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도서관이 더 많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작업이 필요할까.
지역사회의 공공도서관은 많은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도서를 구입하고, 보존하며 대출하는 일은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전자책이나 디지털 환경이 그 기능을 많이 약화시키기는 했다.
공공도서관의 또 다른 역할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은 ‘핵개인의 사회’라고 할 만큼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디지털로 연결된 초연결된 사회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고립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고립, 외톨이들이 모여 ‘인간’의 정체성, 고유성을 잃지 않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공공도서관이 하게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서동아리’다. 그런 역할이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공도서관의 사서는 지역사회 구성원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이용자를 더욱 세분화하여 삶과 괴리되지 않는 맞춤형 정보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서관협회정기총회(국회도서관)
Q. 이상적인 도서관의 역할과 우리나라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해준다면.
우리나라 도서관은 정보 외에 문화와 평생학습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능이 지속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는 재정적 지원이나 안정적 인력의 부족 등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지방자치단체 고유사무인데, 지방자치단체마다 시책과 지원의 차이가 많다.
이용자들은 국가나 지역적으로 균형발전을 이루어 어디에 살더라도 공평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정책과 법의 정비, 사서와 도서관 직원의 역량 개발, 저자나 출판과의 협업 등을 더 많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이정수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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