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4
[편집자주] 본 기사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홍익시디 소식지 기자들이 진행하는 인터뷰입니다.
정성훈 프로덕트 디자이너 ⓒ 정성훈
Q. 자신에 대해 소개한다면?
시각디자인과 01학번 정성훈. 졸업 후 바로 삼성전자의 Visual Display 사업부로 입사해 스마트 TV를 디자인하다 SK플래닛으로 옮겨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LeEco와 NIO라는 회사에서 각각 1년 정도 근무했다. 이후 페이스북의 Emerging Business 팀에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현재는 쿠팡 이츠의 Marchant UX 팀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Q.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재학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
학교 수업 중에는 타이포그래피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기초 디자인 수업이 많아 디자인하는 데 있어 토대가 되는 내용을 많이 배웠는데, 그중 하나가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다. 그때 배운 것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디자이너로서 나의 강한 무기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안 계시겠지만 안상수 교수님이 우리 수업부터 저학년 수업까지도 맡아서 진행하셨는데, 당시 수업 내용, 교수님의 카리스마, 그리고 다른 학부생이나 선배들이 청강하려고 뒤에서 수업을 들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석재원 교수 등 당시 동기들과 이것저것 도전하며 재미있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 같이 했던 것 중 하나가 간단한 디자인 아르바이트였는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내면서 살았다. 아르바이트 외에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일을 했다.
이후 정식 인턴으로 모토로라 코리아 스튜디오서 일하게 됐는데, 인하우스 디자인 스튜디오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또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지원해서 합격했는데, 1년 6개월 정도 활동하며 삼성전자 일도 같이 했다. 삼성전자 제품을 인턴이 직접적으로 디자인할 수는 없지만, 대신 개발자 위주로 운영되는 기술연구소에서 간단한 디자인을 했다. 기술력은 충분해서 디자인을 적용하고 싶은 제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용화할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단계까지 디자인했었다.
Q. 대학 시절 진로를 정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다. 군 제대 후 복학한 지 며칠도 안 된, 아직 디자인이 어색했던 시기에 조교실 도우미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조교님과 안면이 있는 선배님들이 찾아왔다. 이노이즈라는, 삼성전자를 클라이언트로 하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분들이었다. 이분들께 지나가는 말로 일을 시켜 달라 했더니 선뜻 일을 시켜 주셨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전자 제품과, 웹사이트, 프로토타입 등을 접했다. 아마 이 시기부터 디자인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나 싶다.
Q. 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어떤 디자인을 하고자 했나? 현재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지?
대학교 때와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변함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웹사이트 디자인도 일종의 뉴미디어 디자인 혹은 인터랙션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서 관련하여 많은 기술도 익히고 경험도 쌓았다. 재학시절 뉴미디어 관련 수업을 한두 개 정도 듣기도 했다. UX 디자인 혹은 프로덕트 디자인에서는 사용자와 디자인 간의 꾸준한 상호작용이 있다. 나는 디자인이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혹은 반대로 사용자의 반응을 통해 디자인이 개선되어가는 과정을 무척 흥미롭게 생각한다. 학부생 시절에도 같은 맥락이었다. 디자인이 단순히 전달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피드백을 얻고 개선해 나가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페이스북 재직 당시 ⓒ 정성훈
페이스북에서 동료들과의 협업 ⓒ 정성훈
Q. 기억에 남는 협업 경험이 있는지?
뛰어난 개발자들과의 협업이 기억에 남는다. 개발자들은 프로덕트의 기능이나 작동 원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고, 또 생각보다 디자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기능과 UX 플로우 등이 훌륭할 때가 많다. 그런 아이디어들을 반영해서 디자인을 개선했던 일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하나의 예로,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근무할 때 개발자와 소통했던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 우리 팀은 페이스북의 보이스 포스팅 기능을 만들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텍스트만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쓰기 어려운 사람들까지 고려해 목소리를 녹음 및 포스팅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취지를 가졌다. 이런 기능을 논의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뒤에 팀 개발자가 그 기능을 구현했다며 나를 불렀다.
논의 단계에만 있었던 기능을 개발하고, 인터랙션도 어느 정도 완료하고,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개발한 것에 대한 디자인을 서포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이렇게 뛰어난 개발자들이 디자이너들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앞서 나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신선한 협업 경험이었다.
타협할 때는 디자이너가 심미적인 부분의 개선이 사용성과 비즈니스적인 성공에 어느 정도 임팩트가 있는지 답할 수 있는 상태여야 성공적인 타협이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디자이너들이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아이콘을 심미적인 관점에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PM이나 개발자들은 대부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아이콘을 바꾼다고 우리 비즈니스가 잘 될까?”라고 답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면 디자이너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않더라도 제시한 개선점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버린다.
하지만 이럴 때 디자이너들이 “이 아이콘을 바꾸면 어떤 식으로 클릭률이 올라갈 수 있고, 클릭률이 올라가면 해당 기능에 대한 컨버전이 높아질 수 있다.”, 혹은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이 데이터를 보라, 여기 아이콘으로 바꾼 사례가 있는데, 아이콘을 변경함으로 인해 사용성을 개선했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성공적인 타협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꾸준히 자료나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고, 이 자료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협할 때도 상대방에게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디자이너의 리더십과 아우라를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필요한 디자인 전략 수립,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Q. 과거와 현재의 협업 방식에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에 삼성전자에서 일했을 때는 개발팀, 디자인팀, 마케팅팀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다른 팀과 협업이 필요할 때 내가 직접 말하지 못하고, 매니저가 해당 팀으로 찾아가 전달하곤 했다. 즉, 디자인팀에도 실무자와 매니저가 별개로 존재하고, 마케팅팀에도 실무자와 매니저가 별개로 존재했다.
이런 방식이다 보니 소통 과정에서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하고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일로 조직 방식을 채택하는 IT 회사들이 많아져 마케팅 팀원, 개발 팀원, 디자인 팀원, 그리고 심지어 데이터 애널리틱스 같은 사람들까지 모여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한 팀으로 일을 한다. 협업이 필요할 때 옆자리를 쳐다보면서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라고 직접 물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과거와 다른 협업 방식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Q. 학부 시절의 디자인과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하는 디자인의 차이점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사용자가 존재하는 디자인이다. 누군가에게 디자인을 보여주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학부 시절에 했던 디자인들은 그런 목적이 생기기 힘들다. 어떤 가상의 문제를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가 디자인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진짜로 해결됐는지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학부생 때 하는 디자인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은 본질적으로 프로덕트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문제가 어떤 식으로 발생했는지,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지 등을 분석하고 솔루션을 찾아내 구현한다. 이후 사용자들이 프로덕트를 사용하고 나면 사용에 기반한 데이터가 계산되고, 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그 문제로부터 새로운 솔루션을 찾아내고 구현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이런 프로세스로 보건데,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하는 디자인은 내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Q.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지녀야 할 태도나 자질은?
요즘은 회사마다 기업 문화가 다 달라서 이런 유동적인 환경에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궁합이 맞지 않는 회사에 가서 기업 문화에 맞춰 자신을 바꾸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사에 적응하고 자신의 성향을 조금 맞출 수는 있겠지만, 너무 궁합이 맞지 않으면 그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맞는 기업 문화를 가진 다른 회사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고유명사처럼 일반화해서 지녀야 할 태도나 자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 보통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자질들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자기만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이런 점들이 중요할 듯하다.
Q. 직장 내 디자이너의 역할이나 업무에도 변화가 있는가?
대표적으로 체감되는 건 연봉이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는 디자인 팀이 개발팀 밑에 있었던 적도 있고, 마케팅팀 밑에 있었던 적도 있고, 항상 디자인 팀이 다른 팀 밑에 서브 조직으로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은 IT회사의 팀들이 직군별로 나뉘기보다는 한 팀 내에 마케터, 개발자, 디자이너가 한꺼번에 존재한다. 이렇게 팀 구조가 바뀌다 보니 과거에는 기획자와 개발자가 디자이너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요즘에는 디자이너와 기획자, 개발자가 거의 비슷한 연봉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Jio Phone 프로젝트 ⓒ 정성훈
Jio Phone 프로젝트 필드 리서치 과정 ⓒ 정성훈
Q. 성장에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프로젝트는?
페이스북에서 했던 JioPhone 프로젝트를 언급하고 싶다. 전체 프로덕트 관점으로 봤을 때 일부분을 다루는 다른 프로젝트들에 비해 JioPhone 프로젝트는 관여하는 범위가 매우 넓었기 때문이다. 내가 페이스북에 합류한지 반 년 정도 지난 무렵,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하게 돼서 문제 정의부터 해결책까지 만들어갈 수 있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JioPhone 프로젝트는 나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시각디자인과 출신이고, 그래픽이나 비주얼을 디자인하는 데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기획에도 참여하게 됐고, 기획 부분에서도 강점이 있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Q.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업무에 도움되는 감각을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는 일단 제품을 많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경쟁사의 제품들을 봐야 한다. 그 제품들도 아무 제품이나 보는 게 아니라 잘 디자인된 제품들을 봐야 한다.
나도 지금 디자인하고 있는 제품의 경쟁 제품들을 정말 많이 본다. 그리고 진짜 많이 본다는 것은 그냥 빠르게 넘겨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면밀히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제품의 어떤 디자인 요소를 해결하려고 하면 경쟁 제품에도 있는 그 디자인 요소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봐야 경쟁 제품을 만들 때 고민했던 지점들을 더 깊이 깨닫게 되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디자인을 분석하거나 벤치마킹 할 때는 프로덕트의 모든 플로우를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플로우만 사용해보고 ‘카카오뱅크 한번 써봤는데 좋은 것 같아, 디자인 잘 된 것 같아’라고 해선 안 된다. 훨씬 더 세심하게 들어가야 한다. 모든 스크린샷을 다 찍고 한 페이지에 놓은 후 전체 플로우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부터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플로우들이 어떤 식으로 바뀌어 가면서 만들어질지 등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제품의 디자인을 분석했다' 혹은 '벤치마킹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Q. ‘성공한 디자인’이란?
나는 디자인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분기의 사업적 지표를 얼마만큼 달성하겠다거나 특정 페이지의 어떠한 탐색률을 얼마만큼 높이겠다는 목적들 말이다. 그래야 이 목표에 맞춰서 디자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비즈니스적 목적에 부합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 디자인은 아니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디자인 원칙을 지키고 있어야 하고, 사용성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사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자주 했던 실수 중 하나가 ‘나는 디자이너니까 무조건 이 사용자를 만족시키겠어’라며 사용자를 전적으로 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진행한 디자인이 성공한 디자인이 아닐 때가 아주 많다. 좀 강하게 표현하자면, 사용자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어서 비즈니스의 목적과 사용자의 목적이 부딪히는 경우들이 많다. 사용자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했을 때 사용자들은 행복해지는데 반해 비즈니스적으로는 손해라면, 디자이너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사용성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디자인의 기본을 갖추고, 비즈니스적 목표를 우선시하며 전체적인 성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Q. 비즈니스 관점에서 수치에 집중하면서 작업하는 디자인 업무란 어떤 것인가?
어떤 디자인이든 즉, 편집 디자인이든 포스터 디자인이든 상품 디자인이든 디자인을 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발생한다. 그런데 발생할 결과를 예상하고 디자인하는 것과 예상하지 않고 디자인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영화를 만드는데 ‘관객들에게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할 거고, 총 관객 수는 얼마 정도 될거야!’라고 예상하고 영화를 만드는 것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든 본인이 만든 디자인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맞추어 디자인하고, 결과를 계속 트래킹해서 디자인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볼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이 시각적으로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예쁜데, 거기에 따른 데이터나 수치, 어떤 결과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과값이 없는 디자인은 실무에서는 무용한 디자인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아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의 디자이너들도 다 동일한 생각을 할 것 같다.
디자인은 한 번 완성하면 끝이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그 디자인이 적용된 프로덕트가 없어질 때까지 반복 수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 강연에서도 더더욱 데이터가 중요하다, 수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Q. UI 분야의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현재 UI 디자인의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많은 디자이너들이 UI를 제법 그럴싸하게 뽑아내고 있다. UI 가이드라인이 워낙 꼼꼼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 그것을 지키기만 해도 기본적인 디자인 완성도는 충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게 UI 가이드라인을 만든 목표였기도 하고.
그런데 가이드라인도 한번 만들어진 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바뀐다. 새로운 테마들도 추가가 된다. 예를 들면 다크 모드나 새로 나온 인터랙션 같은 것들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거기에 들어가는 디자인 리소스가 엄청나다. 이렇게 UI 지식이 쌓여가는 만큼, 더 미세하고 더 세분화된 디자인의 차이가 제품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또, 예전에는 UI상의 접근성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다가 요즘에는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UI에서 추가해야 할 부분이 많기도 하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거나 오디오 음성을 넣는 등, 접근성을 위한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UI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Q. UI 디자인 실무에서 ‘완료된 상태, 끝’의 의미는?
우선 한마디로 말하면 UI 디자인의 끝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품이 존재하는 이상 여러 실험과 그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은 계속 변경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제품의 사용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결국 그에 맞춰 디자인을 바꿔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에서는 사용자가 계정을 생성하려 할 때 이름, 이메일 주소, 성별, 생년월일 등 6가지 질문을 물어보는 페이지가 있다. 그 페이지는 아직도 담당 팀이 주기적으로 UI 디자인을 개선하고 있다. 그런데 팀이 UI를 개선할 때마다 더 좋은 데이터 결과가 나타난다. 사용성을 고려해 버튼의 배치를 바꾼다든가 사이즈를 키운다든가, 다양한 디자인적 시도를 했을 때 전체적인 계정 생성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 페이지도 완벽한 UI 디자인이 나오고 더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완벽한 디자인이 아직까지 안 나온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페이지조차 UI 디자인을 개선할수록 사용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UI 디자인에 끝은 없다고 생각한다.
NIO 재직 당시 프로젝트 ⓒ 정성훈
Q.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국내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자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의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해외에 있는 스타트업에 가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외 경험도 하고, 스타트업에서 일도 하고, 이렇게 도전하는 의미에서 무작정 해외 스타트업에 지원을 했다. 당시 미국에 있는 패션 체인 기업 Forever 21과 스타트업 LeEco 두 곳 다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을 했다. 합격 이후 둘 중 어느 곳에 갈지 고민하다 이왕이면 디지털 시대에 맞는 회사가 좋다고 생각해서 LeEco로 가게 되었다. 이렇게 뭐든 해보려고 무작정, 이것저것 도전하다 보면 기회가 따라오는 것 같다.
Q.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을 때의 어려움은?
제일 큰 차이는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근로에 대한 보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법적으로 근로를 보장해 주지만, 미국은 근로가 보장되지 않는 조직 문화다. 회사에서 잘리면 그날 바로 짐을 싸 나와야 한다. 실제로 나도 첫 번째로 근무했던 회사가 망해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박스를 들고 나오는 경험을 해봤다. 그런 근로 환경이나 조직 문화가 달라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긴 했다. 오늘 내가 회사에서 잘렸더라도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지 않고, 2~3개월 정도의 월급을 준다거나 그동안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보장해주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들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듯 나 또한 언어적 장벽을 크게 느껴서 발표 전날 야근을 해서라도 대본을 만들고 예상 질문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노력을 했었다. 해외 취업이나 해외 대학원을 목표로 한다면 언어는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 실제로 페이스북의 매니저가 나를 뽑은 후, 내게 와서 1년 안에 영어 문제를 해결하라고 이야기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 디자이너에게는 시각성이라는 큰 무기가 있다. 단순히 언어로만 디자인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부족한 언어 문제가 해결됐던 적도 많다.
Q. 최근에 다시 국내로 커리어를 옮기게 된 계기는?
해외에 오래 있다 보니 버틸 수 있는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여기에서 나의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디자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얼마나 좋아졌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 배운 것들과 연구한 방법론을 한국의 디자인팀에도 적용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쿠팡이츠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조직 문화도 그렇고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이곳은 외국 스타일로 업무를 한다. 외국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적응하기 쉬웠다. 미국에서 배운 것들을 적용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한국 회사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을 리더급의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측면이라든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실무자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거나 결정권에 힘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야근을 많이 했다. 회사에서 무조건 6시 정도가 되면 모두 집에 간 후 집에 도착하면 밥을 먹고, 씻고, 그때부터 일을 다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과는 야근의 분위기가 다르다. 나도 삼성전자나 SK플래닛 다닐 때 야근을 많이 했는데, ‘왜 하는거지?’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미국 같은 경우는 내가 하고 싶어서 야근을 하게 된다. 미국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왜 이렇게 야근을 많이 하냐고 묻는 사람도, 야근 수당을 받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야근을 하면 디자인이 나아지고 다음 날에 말하고자 하는 바와 주장이 훨씬 더 단단해진다. 야근은 엄청나게 많이 했다. 지금도 많이 하고 말이다.
Q. 현 시점에서 다음 목표 및 꿈은 무엇인가?
디자인 조직의 총책임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쿠팡 혹은 다른 디자인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팀의 진행과 성장을 이끌고, 그 팀의 문화를 구축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방향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디자인팀을 만드는 것, 어떤 일을 하든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 조직을 꾸리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다.
객원기자_ 손주현, 오다은, 정시윤, 최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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