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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객원기자 인터뷰] ‘디자이너의 자리매김’ - 제너럴그래픽스 문장현

2025-02-03

[편집자주] 본 기사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홍익시디 소식지 기자들이 진행하는 인터뷰입니다.

 

 

 

Q. 자신에 대해 소개한다면?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91학번 문장현이다. 25년 정도 그래픽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제너럴그래픽스라는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Q. 대학 재학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

 
저학년 때는 조형 연습 수업이 많았다. 평면이나 입체로 조형 요소를 반복적으로 밀도 있게 배열하는 내용의 수업이다 보니 다소 재미가 없었다. 대학에 오면 입시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본격적인 디자인을 할 줄 알았는데 살짝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2학년 때 안상수 선생님의 타이포그라피 수업을 들었는데,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일단 학생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언어와 단호한 태도가 남달랐고, 타이포그라피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계셨다. 예를 들면, ‘그래픽디자인은 타이포그라피다’와 같은. 당시에는 바짝 긴장해서 가장 열심히 들은 수업이었다. 

 

Q. 대학 생활 당시 하고 싶었던 디자인은 어떠했는지, 현재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1학년 때는 학교에 적응을 잘 못 해서 ‘이런 게 디자인이다’라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수업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이 ‘나는 영상을 할 거야’, ‘난 광고를 할 거야‘, ‘나는 편집디자인을 할 거야’ 등등 대부분 본인이 가고 싶은 길을 정했는데, 뭘 해야 할지를 몰라 오랫동안 방황했다. 대학 시절에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고, 하고 싶은 디자인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질문에 맞는 답변은 어렵지만 대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분야를 선택하고 일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졸업을 한 학기 정도 앞두고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에 IMF가 터졌다. 대기업에 합격한 친구들도 취업이 취소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당시에 웹 디자인 분야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그나마 활로가 생겼다. 지금 보면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아주 단순한 초기 웹 형태인데, 기업들의 수요가 많아서 전문 에이전시가 많이 생기던 시기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늘 시대를 앞서가시던 안상수 선생님이 4학년 편집디자인 수업에 책과 웹을 동시에 다루셨다. 웹 디자인은 다분히 기술을 중심에 두는 명명한 분야 같은데, 실제 다루는 내용을 보면 콘텐츠를 편집하는 디자인이다. 해당 수업을 통해서 콘텐츠를 다루는 편집디자인에 조금 관심이 생겼고, 당시 친구들이 많이 선택하던 광고나 영상 그리고 CI보다 편집디자인이 내 기질과 맞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졸업을 앞두게 되었고, 일단은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은 없어진, 이동통신 회사 중의 한 곳에 면접을 봤다. 어색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강남역 근처 빌딩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아주 넓은 한 층의 공간이 구분없이 다 터져 있었는데 천장에는 부서 사인이 줄 맞춰 매달려 있고, 일정한 간격의 파티션이 빼곡하게 들어찬 실내는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그날 소위 심층 면접 형식으로 팀원 전체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장소를 식당으로 옮겨 식사도 하게 되었는데, 음식과 함께 술을 시키더니 건배하면서 기업을 위한 응원가 같은 구호를 외치는 등의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서 도저히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분야를 결정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고, 학업을 좀 더 연장해서라도 길을 찾아야겠다 싶어서 대학원 시험을 봤다. 지금처럼 정원이 많지 않고 경쟁률도 높았지만 다행히 합격했고,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학부 시절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작업을 하고 분야를 모색한 것 같다. 

 

선배의 권유로 학교 디자인연구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주로 학교 홍보물과 교재를 디자인하는 부서였다. 실무 경험이 전혀 없어서 일머리가 없었는데, 선배로부터 이런저런 자극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늦게나마 무언가 해보기 시작했다. 

 

대학원 수업에서 다루는 매체의 편집장도 맡아서 학부 때와는 다르게 주도적으로 작업을 진행해 보았다. 미학을 전공하는 다른 과 대학원생들과 협업으로 대학원 신문 디자인을 했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전시와 홍보물도 기획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편집디자인에 빠져들었고, 결국 대학원을 수료하고 편집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에 입사해서 밤낮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신문 8호

 

홍익대학교 대학원 기획전 '인간관계로(人間關係路)' 전시 포스터

 

홍익대학교 2001년 연하장

 

 

Q.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제너럴그래픽스라는 본인만의 스튜디오로 독립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계기가 무엇이었나? 


다니던 에이전시는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질적으로도 수준이 높은, 당시에 꽤 유명한 회사였고, 솜씨 좋은 선후배 디자이너가 많아서 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입사 후 얼마되지 않아 작은 목표를 세웠는데, 바로 디렉터가 되는 것이었다. 노력과 운이 따라서 몇 년 후 디렉터가 되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다만 업무의 양이 너무 많아서 조금 지쳐갔고 디자인 방법적으로도 매너리즘이 생겼다. 고용된 입장이다 보니 의사결정에 있어 나의 생각이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독립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 스튜디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언젠가 독립해야지’ 했는데 경험도 꽤 쌓였고, 시기가 돼서 40대 초반에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Q. 회사 소속과 독립, 두 생활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에이전시에 다닐 때 나름 즐기면서 열심히 했는데,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 때는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 '독립해서 내 스튜디오를 갖게 되면 발걸음이 훨씬 가볍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렵고 힘든 점이 많았다. 

 

독립하면 아무래도 회사를 소규모로 운영하게 되니까 인력이 부족해져서 작업, 미팅, 회계, 심지어 청소도 직접 해야 한다(웃음).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독립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다. 의사결정 면에서 자유로워진 대신 모든 면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Q. 제너럴그래픽스의 작업 크레딧을 보면, 직접 디자인을 하기보다 아트디렉팅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디자이너와 달리 프로젝트의 아트디렉터로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디렉터로서 스텝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지향점, 즉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디렉터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리드해야 한다. 크고 작은 기준을 잘 마련해야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마감이 흔들리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선 클라이언트가 일을 의뢰한 사정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대부분 존재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통은 늘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팀의 리더로서 크고 작은 기준을 다루며 작업을 디렉팅한다. 스텝들과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하다 보면 작업을 풀어갈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나오곤 하는데, 디렉터는 빠른 판단으로 캐치해서 프로젝트 전반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맥락화한다. 스텝들의 능력을 북돋는 것도 물론 중요한데, 이 부분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노력하고 있다. 

 

Q. 제너럴그래픽스의 브랜딩, 그래픽 작업에서 프로젝트에 맞는 서체를 활용한 타이포그라피가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각물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서체를 수집하고, 디자인에 적용하기까지 본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지? 


그래픽디자인에 있어 타이포그라피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타이포그라피의 시작은 언제나 ‘서체의 선택’이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그리고 스튜디오 스텝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이 있다. ‘서체의 선택’이 타이포그라피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서체를 선택해서 적용하는 것에 특별한 노하우는 없지만,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프로젝트에 걸맞은 서체를 고르려면 우선 ‘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서체의 세부 디테일과 함께 조판 형태도 살펴봐야 하고, 더불어 많이 보고 많이 다뤄야 한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려면 인내심과 체력도 필요하다. 당대의 디자이너들에게 선택을 많이 받는 서체를 체크해서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능한 새로운 서체를 찾아서 매칭한다. 특히 영문 서체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를 찾아 후보군을 만들고 최종 결정된 서체를 구입해서 적용한다. 최근에는 서체 디자인 도구와 시장성 향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한글도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선택의 폭이 꽤 넓어진 것 같다. 이제 서체를 고르는 기준도 많이 변하고 있고, 다양하게 형태를 변주하는 디자이너들의 시도가 소비자들에게 수용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보편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본다. 더불어 타이포그라피의 규칙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금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지금까지 많은 클라이언트와 작업해 오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업이나 클라이언트가 궁금하다. 


프로젝트나 클라이언트의 인상은 두 가지로 남는 것 같다.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 후자는 드물어서 잊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나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요구하는 클라이언트와 수용하는 디자이너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좀 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로는 ‘서울 궁궐 사이니지’ 작업을 꼽고 싶다. 대상이 문화재다 보니 절차도 복잡했고 여러 사람과 기관이 관여한 장기간의 공공프로젝트였다. 당시 국내 사이니지 디자인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거칠게 보면 상업영역의 사이니지는 꽤 높은 수준이었지만, 공공영역은 취약한 편이었다. 수준 높은 디자이너들이 공공영역의 사이니지 작업에 참여하기에는 경제적, 제도적, 관습적 문제가 많았고, ‘서울 궁궐 사이니지’ 프로젝트는 특히나 우여곡절이 많아서 그 스토리를 기록해 책으로도 만들었다. 

 

사이니지 디자인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좋은 기억도 훨씬 많이 있는 프로젝트이다. 특히 함께한 클라이언트, 협력사와의 협업이 인상적이었다. 형식적인 협업이 아니라 정말 협업다운 협업이라고 느꼈다. 

<궁궐의 안내판이 바뀐 사연>, 아름지기 지음, 안그라픽스 출판(2008)


서울 궁궐 사이니지 작업 이미지

 

 

Q. 클라이언트 없이 제너럴그래픽스만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디자인 과정에 관련된 콘텐츠를 발행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사소한 것, 작고 디테일한 것을 다루고 싶다. 기본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에 직접적이고 과감한 표현 방식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익숙해진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스튜디오 자체의 브랜딩이기도 하다. 

 

Q. 디자이너의 성장 목표를 ‘제너럴리스트'로 잡아야 하는지, 나만의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 ‘스페셜리스트'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쪽에 조금 더 동의하는지? 


둘 사이의 순서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긍정적 의미의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면 먼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하면 제너럴리스트적인 시각이 생길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제너럴(General)이란 단어의 의미에는 '장군'이라는 뜻도 있는데, 병사와 장교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만약 제너럴리스트를 꿈꾼다면, 선택한 분야에 정착해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통찰력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제너럴리스트적인 시각과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디자인 현장에서 스페셜리스트는 접할 수 있지만 제너럴리스트다운 디자이너는 드문 것 같다. 

 

Q.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공통적인 고민 중 하나는 디자이너의 직업적인 수명이라고 생각한다. 한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멘토로서, 혹은 한 분야의 시니어 선배로서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로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 의견이 궁금하다. 


지금도 여전히 정체될 때도 있고, 성장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어떤 때는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결핍이 오히려 에너지가 되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되돌아보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 해야 할 일이 계속 쌓이는 중이다. 

 

디자이너의 수명과 관련해서 한가지 조언을 한다면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을 지니라는 것이다. 젊을 때는 별 필요를 못 느끼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력을 포함한 모든 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부디 미래의 체력을 미리 끌어다 소모하지 말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작업하는 습관을 갖기를 바란다.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평생의 숙제이다.

 

Q.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나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자인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별한 방법이나 비결은 없다. 다만 디자인 트렌드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예전과 달리 관심이 생겼다. 전에는 시대와 상관없이 가치를 지닌, 소위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런데 브랜드를 다루다 보니 당대에 소비되는 디자인의 경향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동년배나 선배 디자이너들과 만나 대화하다 보면 트렌디한 디자인이나 유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본인의 전성기를 기준으로 두고 저 작업은 ‘좀 이상해, 잘 모르겠어, 그냥 별로야’ 이렇게 말한다. 그때 느꼈다. ‘우리가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지’ 하는 것을 말이다. 

 

과거에도 선배들은 후배들의 작업을 낯설어하고, 후배들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 스타일을 전복하고 싶어했다. 재밌는 건 그렇게 비판받던 후배 세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받고, 그들의 작업이 주류가 되는 거다. 아마 이런 흐름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디자인 트렌드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면이 있다. 새로운 스타일이 나오고, 낯설어하다가 따라 하고, 유행하면서 보편적인 스타일이 되고, 흔해지고 많아지면서 새로운 스타일에 밀려 사라지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면, 이미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있지만 약간 어설퍼도 곧 주류가 될 거라는 확신이 가는 작업이 있다. 요즘에는 그들이 만드는 흐름을 살펴보면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떠올려 본다. 

 

Q.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의뢰 받은 일에 스튜디오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곧 ‘디자이너로서 운신의 폭을 넓혀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한데, 사고의 유연함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또, 이러한 ‘유연함'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조언을 듣고 싶다. 


다수의 사람이 퀄리티가 높다고 느낄 수준의 결과물을 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검증된 방법, 실패가 적은 방법을 쓰고 싶은 유혹이 있는 거다.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빠른 시간에 퀄리티를 내기 위해 선배들이 구축해 놓은 스타일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시절이 있었다. 어느 정도 스타일이 익숙해지면서 작업 속도가 빨라지니 실력이 늘었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슷한 스타일로 서로 다른 클라이언트 작업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클라이언트인데 결과물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일정한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이 획일화되지 않고 맞춤형이 될 수 있도록 다져 나가야 한다. 

 

말이 쉽지, 클라이언트에 맞게 각기 다른 결과물을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결과물을 구축하는 방식은 검증된 몇 가지 방법을 유지하되,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은 클라이언트의 기호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방법론은 일정하더라도 스타일을 내는 시각적 장치는 다양하게 사용해야 한다. 여러 상황에 다양하게 변용할 수 있는 시각적 경우의 수를 마련해 둔다면, 자기 복제를 어느 정도 피하면서 지속적으로 디자인을 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부지런함’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Q. 그런 종류의 ‘부지런함’이라면 결국 창의력의 속성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창의력(Creativity)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제일 부담스러운 단어다. 상대적으로 나는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창의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작업을 내는 디자이너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에 더해 익숙한 방법론과 테크닉으로 훈련되어 있다. 직업인으로서 디자이너는 적정량의 창의력을 안정되게 실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Q. 디자인을 전공하고 25년 정도 직업 디자이너로 활동했는데, 오랜 시간 디자인계에 몸담으며 몸소 느낀 변화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스타일적인 면을 볼 때 디자이너가 어디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것이다. 과거에는 소위 디자인 선진국의 스타 디자이너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주로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들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유행을 시킬 만큼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특정 국가나 디자이너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실시간으로 이미지와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니 국가와 상관없이 서로 간에 느슨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주기가 짧아서 많은 변주가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둘째는 유명세에 대한 것이다. 과거에는 순수하게 디자인 작업 자체만으로는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기회도 적었다고 생각된다. 학벌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필수 조건이었으며, 여기에 더해 어떤 회사에 다녔는지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유명세를 형성하는 거의 모든 조건이다. 이 부분은 확실히 진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빠른 시간에 유명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런 사례를 접하면서 젊은 세대들은 유명세를 얻기 위해 큰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 자체도 단기간에 관심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테크닉이 발전하는 듯하다. 유명해지면 여러 가지로 유리한 면이 있다. 돈을 벌기도 좋고,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적인 삶을 지향할 수도 있다. 다만 빨리 유명해진 만큼 실력을 검증받거나 유지해야 할 시간이 길어진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Q. 본인의 디자인관을 변화시켰거나 성장하게 해주었던 변화, 계기 또한 들어보고 싶다. 


디자인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킬 만큼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단, 평소에 조금씩 쌓여가던 작은 생각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구체화되어 확신을 하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변화의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과거에는 형태적으로 엄격한, 완성도 높은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요즘은 특정 스타일이 우월하게 느껴지지는 않고, 좋아하거나 받아들이는 폭이 좀 넓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영문 서체를 선택할 때, 과거에는 익숙한 완성도를 따졌다.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보편적으로 완성도를 갖춘 서체를 선호했다. 타이포그라피도 기능적 완성도가 높아야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현재는 ‘의도를 품은 형태’를 지닌 서체를 선호한다. 의도가 잘 구현되었을 때, 완성도가 높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오랜 기간 디자이너로 살면서 선택의 기준, 아름다움의 척도가 서서히 변한 듯하다. 

 

Q. 2014년 인터뷰에서 최근 근황을 묻는 말에 대해 '뚜렷한 방향은 아직 찾지 못했고 방황 중'이라고 답변했다. 9년이 지난 지금, 이때와 비교한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그때 말한 ‘방황’이라는 게 아마 주력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디자인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변한 것이라기 보다는 환경이 바뀌었고 걸맞게 방향을 수정한 셈이다. 

 

나는 타이포그라피에 흥미를 느꼈고, 편집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책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책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페이지네이션 위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그리고 지우면서 작업하는 것을 즐겼다. 단순 레이아웃을 넘어 책의 글과 이미지에 깊게 관여하면서, 작업 전체를 컨트롤해 나가는 디렉터로서 기업 홍보에 관련된 많은 책을 만들어 왔다. 

 

시간이 흘러서 기업 환경이 변했고 홍보에서 브랜딩으로, 마케팅에서 브랜딩으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기업 전체를 홍보하던 것에서 브랜딩의 일환으로 인쇄물을 만드는 환경이 되었다. 하는 일은 과거와 비슷해도 이제는 브랜딩 디자인을 간판으로 걸어야 하는 시대이다. 게다가 요즘은 기업이 더 이상 책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원래는 브랜드 관련 디자인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 분야의 디자인이 뭔가 과시하고 과장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근래에 많은 사람이 하도 브랜드를 강조하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확인도 하고 싶어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것이다. 관련 포트폴리오가 없어서 최근 몇 년간 브랜딩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 마침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분야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브랜딩 디자인은 그 중요성 때문인지 매우 통합적인 방식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디자인의 거의 모든 영역이 브랜딩으로 녹아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또한 과거에 비해 과장과 과시가 많이 사라지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제는 내가 갖고 있던 브랜딩 디자인에 대한 편견과 우려가 많이 사라졌고, 관심과 재미를 갖고 브랜드 관련 프로젝트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방황은 마치고 브랜드가 걸맞은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나름의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한다. 

 

Q. 현 시점에서 다음 목표 및 꿈이 무엇인지? 


가장 큰 목표는 디자인 작업을 못 할 때까지 지속하는 것.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한창 젊을 때보다 이런저런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 몇 년 전까지도 진로를 고민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대부분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젠 오롯이 스튜디오와 프로젝트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홀가분하다. ‘작업만 하면 되는’ 목표가 분명해졌으니까. 건강 관리도 하고, 꾸준하게 일해서 나의 마지막까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사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70대 현역 디자이너들이 꽤 있다. 최근 작고한 나카조 마사요시 씨 같은 경우는 시세이도의 아트디렉터로서 상업 디자인의 현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했다. 그가 70대에 작업한 결과물을 보면 그 수준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84세의 나이로 작고한 미세이 이야케도 패션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분야를 넘나드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재작년에 고인이 된 빔 크로우웰 선생도 90세가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하신 걸로 안다. 국내에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디자이너는 있긴 하지만 좀 드문 편이다. 

 

사실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당연한 책무인데 목표라고 하니 좀 우습기도 하다. 경쟁이 치열한 환경 때문인지 어느 정도 지위나 명예가 생기면 허탈감이 생겨서 디자인 작업을 손에서 놓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객원기자_ 손주현, 오다은, 정시윤, 최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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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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