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2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탄핵을 외친 시민들은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고,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또 하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시민들이 보여준 시위문화는 가히 놀라운 것이었다.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창의적인 깃발과 피켓은 시위라는 무거운 분위기를 희석시켰을뿐 아니라 ‘축제형 시위’라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냈다.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연령의 세대들은 하나가 되어 목소리를 높였고, 마침내 시민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이 안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움직임도 볼 수 있었다. 몇몇 디자이너들은 SNS를 통해 시각적 메시지를 전했고, 여러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한 것. 시각 디자이너들은 재능기부로 시위물품을 디자인해 목소리를 냈다. 디자이너들의 이러한 행동은 국민으로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통해 시위를 이끈 움직임이었다.
(이미지 출처: EOK)
디자이너들의 재능기부로 디자인된 시위물품은 시민운동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MBC뉴스)
이러한 사례들은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디자인’이 실제로 어떻게,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하 디자이너 역시 이번 디자이너들의 활동에 참여했다. 빨간 바탕, 굥이라는 검은 글씨 위에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자 105인의 명단과 지역구를 표기한 그는 디자인이라는 전문성을 발휘해 더욱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문제를 전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데 힘을 더하고 있다.
이번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디자인을 통한 시위문화를 선보인 박영하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박영하 디자이너
Q. 디자인 재능기부를 통해 시위에 참여했다. 디자인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계엄 내란 사태에 비주얼 언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던 차에 몇몇 선후배 그래픽 디자이너분들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시각적 메시지를 올리는 것을 보고 동참하게 됐다. 그러던 중 시민연대에 참여하는 지인이 나의 포스팅을 보고 시위대 깃발과 피켓 등 집회 물품제작 참여 제안을 해주었고,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하여 재능 기부를 하게 됐다.
Q. 이번 작업에서 어떤 디자인을 선보였나.
내가 만든 이미지의 컨셉은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최초 표결에서 여당 105인의 불참으로 인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직후, 해당 105인의 명단과 소속구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들의 이름을 텍스트로 배치하고 ‘굥’이라는 글자를 크게 넣었다. ‘굥’의 의미는 본래 대선 때 ‘공정’을 외치던 윤석열 후보를 비꼬기 위해 ‘윤’을 뒤집은 형태로 사용되다가, 취임 후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처럼 쓰여왔다. 이는 곧 글자형태 그대로 계엄선포로 인해 바닥에 고꾸라진 그의 당시 상태를 상징한다.
박영하 디자이너의 작업
Q. 디자인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표결에 불참한 105인의 명단이 역사에 기록되도록 하고자 했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명단을 박재하여 알리고 싶었다. 반대표를 던지는 한이 있어도 표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참은 국민을 대표해서 일해야 하는 그들의 도리가 아니다.
디자이너들의 재능기부로 디자인된 시위물품 (이미지 출처: EOK)
Q. 이번 움직임을 통해 느낀 부분이 있다면.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번 내란은 진영의 문제가 아닌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협하고 엄청난 위험에 빠뜨릴 소지가 다분한 비상식적인 행동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그래픽디자인 씬에서 그런 움직임들이 많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반증이었던 것 같다.
Q. 디자인을 통한 시민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에는 정치성향을 드러내면 반대성향의 정부나 광고주 관련 일을 못하게 될까봐, 소위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의 소신은 필요하다고 본다. 해외에서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인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나 나의 학부시절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랜스 와이먼(Lance Wyman)처럼 오히려 작업물로써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셰퍼드 페어리의 디자인
랜스 와이먼의 디자인
또한 비상식적인 이슈에 대해 패러디 등을 통해 신랄한 풍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성숙한 문화와 시민의식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에 앞장설 계획인지, 디자인을 통한 시민운동에 있어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외조부께서 5선 의원을 포함해 한평생 정치를 하셨다. 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를 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그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치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보수, 진보 진영을 떠나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시민운동의 계획은 특별히 없지만, 앞으로도 누가 보아도 정도가 지나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거나, 탄핵심판이 기각된다면 주저없이 나설 것이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
사진제공_ 박영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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