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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포커스 인터뷰] 문맥, 역사성, 장소성 있는 조형물 세워져야, 김종균 디자인문화연구가

2024-08-20

지난 7월 서울시가 ‘Seoul, my soul’ 조형물 설치를 발표했다. 신규 도시브랜드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Seoul, my soul’ 조형물은 서울시의 주요 공공이용시설과 관광 명소 등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포함해 도심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29개의 ‘아이 서울 유(I SEOUL U)’ 조형물을 철거했다. 그 양은 14톤에 이른다.

 

서울시가 ‘Seoul, my soul’ 조형물 설치를 발표했다. (이미지 출처: 서울시)

 

 

서울시는 새 조형물 제작을 위해 철거한 기존의 조형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포스코와의 협력을 통해서다. 서울시는 포스코에 14톤의 철거조형물을 제공하고, 포스코는 제철소 공정에 폐조형물을 투입, 재활용하여 탄소 배출량을 감축한다고 한다. 

 

철거조형물을 재활용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듯한 이번 발표는 얼핏 보면 긍정적인 취지를 지닌 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철거조형물을 재활용하는 것 이전에 왜 철거조형물이 생겨나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철거조형물 재활용’이 앞선 이번 안은 이 일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다른 방안은 없는지, 그렇다면 이번에 새워질 신규 조형물은 또 언제 철거가 될지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갖게 만든다. 김종균 디자인문화연구가로부터 서울시의 신규 조형물 설치에 대해 들었다. 



김종균.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충남대 특허법무대학원에서 법학석사를, 영국 런던 킹스턴대학에서 현대디자인큐레이팅 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History of Design and Design Law>, <Encyclopedia of Asia Design>, <한국의 디자인>, <바우하우스>, <디자인전쟁> 등 저서가 있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05, 2021) 기획전, 런던온라인필름페스티벌(2020)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Q. 서울시에서 ‘Seoul, my soul’ 조형물을 제작, 곳곳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밀턴 글레이저의 ‘I♡NY’입니다. 이 도시 브랜딩의 성공사례 이후, 전세계 도시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브랜드를 일제히 선보였지만, 성공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1977년에 성공한 ‘I♡NY’을 2024년 서울에서 리바이벌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게 이모티콘화 시키고, 이것을 조형물로 만들어서 설치하고 랜드마크화 한다고 하니 의아합니다. 

 

I♡NY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랜드마크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독창성과 역사성을 가진 조형물이 시민의 사랑을 받을 때 랜드마크가 됩니다. 대개 기념비적인 스케일이나 쉽게 잊기 힘든 독창성, 역사적 사건이나 시민들과 함께한 역사성 등이 갖춰진, 시민들이 어느 장소를 떠올릴 때 처음 생각나는 장소나 대상을 랜드마크라 합니다. 일본 후지산, 북경 자금성, 서울 경복궁, 파리 에펠탑, 런던 런던아이, 국회의사당 시계탑 등 도시와 연관되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자, 도시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먼저 사용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시민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자랑하듯 사진을 찍고, 여행자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가 보는 그런 장소를 만드는 힘을 가진 조형물이 랜드마크라 할 것입니다.

 

건축을 예로 들면 우리는 서울의 롯데월드타워, DDP 같은 건물을 대표로 내세우지만, 외국인들은 서울남산타워를 떠올립니다. 남산타워는 애당초 방송송신탑으로 계획되었는데, 2015년 CNN이 선정한 500대 관광지 중 340위권에 들었습니다. 50년의 역사성이 더해진 탓일 것입니다.

 

Q. 상징 조형물은 어떠한가.

 

박정희 정권에서 신도시를 개발할 때 울산 공업탑(1967)이나 창원 공업탑(1979), 부산 서면로터리 기념탑(1963, 현재 철거)과 같이 큰 부지에 원형로터리를 만들고 그 가운데 높은 조형물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휑한 공터에 뜬금없이 세워진 높고 못생긴 조형물은 몇 십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하며 상징성을 가지고 각 도시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의 조형물은 너무 자주 바뀌니 역사성도 없고, 시류에 편승한 스타일이라 금세 식상해집니다. 물론, 스타일이 식상하더라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하면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을 텐데, 연례행사처럼 된 조형물 설치는 금방 다시 이루어집니다. 금방 없애고 새로 다시 만드는 겁니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고, 직접 투표로 선출된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대리인처럼 도시 상징물과 조형물을 만들어 대니, 대개 시장과 조형물이 운명을 같이 합니다. 물론 브랜딩이건 조형물 설치건 지자체의 정책대로 하는 것이겠지만, 앞선 조형물을 없애고 새 것을 만드는 것은 잘못된 습관입니다. 도시를 제품에 비유하자면, 브랜드와 랜드마크를 마치 제품에 더하는 장식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제품의 핵심부품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울산 공업탑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랜드마크에 대한 인식이 먼저 변화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서울시가 만드는 조형물은 영어 알파벳을 입체로 만드는 형태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런 조형물은 전 세계 모든 도시에 다 있습니다. 선진국부터 후진국까지 모두 그만그만하게 비슷한 문자 조형물을 대개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 도시의 한가운데나 입구에 세워 둡니다. 랜드마크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의 간판, 이정표, 안내표지 정도 수준으로 보고, 읽고, 잊어버립니다. 이런 조형물을 랜드마크라 말하는 것은 밥 한 그릇 떠놓고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말하는 수준입니다. 조형물이 랜드마크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랜드마크는 시민이 선택하는 것이지 지자체가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이승만 동상과 이순신 동상이 서울 가운데 섰지만, 이승만 동상은 성난 시민들에게 파괴되었습니다. 이순신 동상은 고증상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조형물의 상징성이 중요합니다. 서울시 슬로건의 흔한 스타일의 영문 알파벳 조형물은 대개 지자체가 흔히 만드는 보통의 도시조형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어떤 상징을 가지지도, 상징을 가질 만한 시간도 없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명성 있는 디자이너도 아닙니다. 

 

L.A.에 헐리우드 간판 만한 크기를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랜드마크가 됩니까? 차라리 BTS의 손글씨를 조형물로 만든다면 더 특별한 랜드마크가 될 것입니다. 혹은 한석봉의 서체를, 세종대왕의 서체를 이용해서 적합한 장소에 조형물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 더 상징적일 것입니다. 

 

헐리우드 사인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포스코와의 협약을 통해 재활용 철강으로 제작이 된다고 한다.

 

디자인의 윤리적인 문제가 중요해지는 분위기에 재활용 철강사용은 명분이 있습니다. 최첨단 전자부품도 재활용에너지로 생산하지 않으면 수출이 안되는 시대입니다. 아디다스는 바다의 폐그물을 회수해서 신발을 만들고, BMW는 재생자원과 에너지로 자동차를 생산하며, 커피조차 공정 무역된 커피를 구매하는 분위기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마저 이렇듯 각별한 노력을 하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이런 흐름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것이 별달리 특별한 노력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모든 국민이 분리수거를 하고 재활용품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딱 그 정도입니다. 조형물이 수익을 창출하여 그 수익을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조형물이 서울시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디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까?

 

2018년 영국 잉글랜드 리버풀에서 10만여 개의 칼로 조각상을 만든 사례가 있습니다. ‘칼의 천사’라는 이름의 8미터 높이 조각은 영국 전역에서 경찰이 압수한 살인 강도의 칼을 수거해서, 날카로운 날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으로 폭력과 무력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칼의 천사'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재활용에도 목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같은 재활용이라도 제작 과정의 스토리가 있고, 의미가 남다르고, 목적이 분명합니다. 포스코의 재활용 철강에는 어떤 대단한 스토리가 있을까요? 디자인 용역회사는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만들기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딱 돈 받는 만큼만 작업하고, 발주하는 지자체 간부들이 좋아할 정도의 작업만 만들어 냅니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면 분명 스토리를 엮어낼 것입니다. 어떤 트렌드가 뜨면 또 그렇게 만들어 냅니다. 어쨌거나 1년 내에 용역은 마쳐야 하니까요. 과거 DDP의 폐품으로 만든 해치 상징물은 어느 정도로 인지도를 가집니까? 딱 그 정도의 조형물을 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부산, 강남 등 지자체 조형물 제작 사례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지자체 조형물은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 등 순기능이 많습니다. 다만, 그 설치과정이 다분히 정치적인 탓에 모두를 위한 조형물이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한 조형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정 과정에 지자체장과 간부가 깊이 관여하고, 디자인용역을 수주하는 업체는 도시가 아닌 지자체장에게 혹할 만한 작품을 선보이는 영악함을 보입니다. 전문가 위원회는 대개 늘상 관공서에 출입하는 관료화 된 교수진들이고, 해당 분야의 이권과 관련되어 있는 지역 유지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용역비용을 심하게 낮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주한 작가들은 다시 하청 발주를 하기도 합니다. 좋은 조형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 서울의 대형 디자인기획사가 서울시 용역을 했던 포트폴리오를 들고 전국 여기저기를 섭렵한 탓에 전국 캐릭터는 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요즘에는 또 대개 펭수를 닮아갑니다. 전국 CI도 다 비슷하고, 슬로건도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됩니다. 

 

Busan is good 조형물 (이미지 출처: 부산시)

 

 

Q. 실패의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밀턴 글레이저가 만든 ‘I♡NY’ 로고 하나로 범죄도시 뉴욕의 이미지가 개선되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것이 아닙니다. 뉴욕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선택하고 캠페인을 펼치며 자발적으로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활용한 것입니다. 뉴욕시는 ‘I♡NY’가 아닌 다른 어떤 로고였더라도 성공할 만한 자원과 환경을 갖추고 있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1885)은 프랑스가 제작해서 미국에 선물했고, 프랑스 혁명을 대변하는 ‘마리안느’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 독립의 기념비로서 뉴욕 맨하튼의 입구에 세워져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고 맨하튼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맨하튼 월가에 이탈리아 예술가가 성난 <황소상>(1987)을 몰래 설치하자 당국은 불법설치물이라며 철거했지만,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다시 설치되어 현재까지 사람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맨하탄 중심에는 타임스퀘어, 센트럴 파크가 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소호, 하이라인파크, 브루클린교, 퇴역한 항공모함 등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장소와 조형물은 도시의 후광으로 완성되며, 시민들과 부대끼며 역사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만일 서울시가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된다면 그것은 한류 덕분이지, 관청이 만든 조형물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는 그저 익숙해지기도 전에 사라지고 다시 등장하는 수많은 로고 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유의 여신상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조형물 설치에 있어 염두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설치되는 장소도 중요합니다. 경남 진해 충정 로터리(1952, 윤효중), 부산 용두산공원(1956, 김경승), 서울 광화문(1968, 김세중) 광장에 충무공 조각이 있습니다. 모두 당대 최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전국에 수백개 이상의 동상이 있습니다. 어느 충무공 조각이 유명합니까? 단연 광화문입니다. 경복궁 앞에서 비바람 맞으며 왕을 지키는 충신의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용두산공원은 놀이공원에 세워진 캐릭터처럼 이해되고, 진해는 작은 도시에 커다란 원형 로터리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어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성공한 조형물 대부분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장소성이 있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이미지 출처: 광화문광장)

 

 

Q. 어떻게 해야 지자체 조형물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 

 

지자체 조형물들이 해당 장소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고 세워지는지 이해할 수 없고,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사랑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마치 강남 대치동 길거리에 늘어놓은 유리부스, <테라피존>(2023)들처럼 문맥도 없고, 외면 받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 강에 프로포즈 장소를 만들고, 한류가 유행이면 강남스타일 말춤 손목을 코엑스 앞에 그로테스크하게 세웁니다. 왜 그곳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방정부는 연예기획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되는데 자꾸 숟가락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세금으로 말입니다. 

 

때가 되면 세우고, 때가 되면 부수는 여러 작품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코엑스 앞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이 여러 개 있고, 각 시기별로 대표적인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그 어느 것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다양한 조형물을 보았지만, 거의 대부분 문맥이 없었습니다. 올림픽 조형물처럼 거대한 이벤트로 국민의 기억에 각인될 환경도 아닙니다. 문맥이 없는 조형물도 오랜 시간 그곳에 있다 보면 문맥이 생기고 역사성이 생길 텐데, 또 그렇게 오래 남아있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대치동에 설치된 스트레스 프리존 (이미지 출처: 서울시)

 

 

Q. 세계 각 도시와 대표 조형물들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나.

 

최근 파리 올림픽 방송에서 에펠탑이 단연 두드러집니다. 과거 모든 파리시민에게 비난받던 흉물이 현대에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파리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파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니 이보다 성공적인 사례는 더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에펠탑과 똑같은 탑이 동경에 있습니다. 어떤가요? 대부분은 동경에 에펠탑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왜 에펠탑이 동경에 있는지를 의아해합니다. 역사적이지도 않고, 독창성도 없고, 장소성도 없어서 동경을 상징하지도 못합니다. 

 

흡사 라스베이거스에 세계 유명 조형물들을 다 모아 두어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잡동사니 같아 보이고, 도시를 짝퉁처럼 만듭니다. 오히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 지었다면 더욱 장소를 풍부하게 만들 것입니다. 브라질 리우 예수상, 로마의 트레비 분수, 싱가폴의 사자상, 네델란드 오줌싸개 소년 같은 것을 해마다 한 개씩 서울광장에 만들어도 서울시의 상징이 되지 못할 것이며, 테마 놀이공원처럼 변할 것입니다. 조형물을 만들어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파리의 에펠탑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시 조형물, 상징물의 성공사례가 있다면.

 

1990년대 초중반부터 지방자치제 이후 부천시를 필두로 각 지자체가 CI나 캐릭터 등 도시브랜딩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도 조순 서울시장 시절에 시와 구 단위로 다양한 브랜딩이 이루어졌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중에서 현재 성공한 사례라거나, 지역의 명물이 되거나, 기억에 남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성공인데, 현재까지 남아서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요? 제가 기억하는 것 만도 수 십여 종 되는데, 당시에 제작되었던 서울시 상징물과 슬로건과 CI들이 대부분 폐기되었고, 대부분 이벤트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셈인데 또 만듭니다. 

 

브랜딩이 7전 8기의 정신으로 도전해야 하는 분야가 아닌데, 마치 브랜딩 시장을 관청이 나서서 키워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자주 만들고 바꿉니다. 저는 관청 발주로 만들어진 CI, 캐릭터, 상징물, 조형물 중에서 성공한 사례를 하나 들라면,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한 중앙정부 태극 CI가 그나마 법적 강제성이 있는 것이라 지속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나마도 정권이 바뀌면 언제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지자체 조형물과 상징물은 인상깊은 것들이 많은데 성공사례라 꼽을만한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정부 상징문양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Q. 외국의 경우엔 어떠한가.

 

외국에서 시 조형물로 각광받는 곳은 거의 대부분 역사적인 장소에 위치합니다. 영국은 각 마을의 중심에 큰 고딕 시대 성당이 자리잡고, 그 주변으로 중세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가옥은 외부의 개보수를 허용하지 않고, 바닥은 돌멩이로 채워서 포장하여 울퉁불퉁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세우는 것이 없고, 더하지 않았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동상이나 탑이나 시설물이 위치합니다.

 

몇 백 년 된 간판은 그 자체로 마을의 상징이 되고, 성의 문장이 CI가 되고, 마을의 명물이나 상징이 됩니다. 마을 주민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그 곳에 있던 것들로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역사가 함께합니다. 이탈리아를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였고, 프랑스는 꽤 세련되고 새로운 것이 많았지만 도시의 중심은 대부분 영국처럼 고전적이었습니다. 대개 유럽권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인상이고, 오래된 것이 자연스럽게 도시의 상징이자, 명물이자, CI이고, 조형물이었습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역사가 짧고 내세울 전통이 없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2-300년 되는 전통을 새로 쌓아 올리고, 그 속에서 상징을 도출했습니다. 시카고 화재 때 남았던 급수탑이나, 금세기 기술력의 상징인 금문교 등 근대 이후의 유산들도 자신들의 전통이자 상징으로 내세웁니다. 굳이 별도로 독립된 브랜딩 성공사례를 만들려 노력한다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도시의 역사는 한두개의 상징물로 대표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처럼 눈이 큰 꼬마 동물캐릭터나 커다란 스테인리스 구조물이 도시 입구에 서 있다거나, 헬베티카 느낌의 큰 입간판 글씨를 세워 두는 것은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본 것 같습니다. 

 

Q. 큰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큰 예산으로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가진 것을 잘 다듬고 관리하고 홍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달동네가 산토리니 같은 관광명소가 되고, 폐공장이 세계적인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석탄창고가 고급쇼핑몰로 거듭나는 것은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이룬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과정에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기존의 브랜드 중 호응도가 높은 것을 리뉴얼하는 수준에서 재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Q. 우리나라에서 시 조형물이 성공을 거둘 순 없을까. 

 

관청의 생리상 프로젝트를 저가에 발주하고, 담당과에서 지시를 하고, 국장이 안을 추리고, 시장이 최종 선정합니다. 전문가 위원회는 대개 들러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선정 과정을 거치면서 실험적이고,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고, 획기적인 모든 것이 걸러지며, 가장 욕을 적게 먹을 만한 천편일률적인 작품이 선정됩니다. 

 

무난하고 이슈가 없을 안을 선택했으니, 성공하기도 힘듭니다. 이런 공무원의 생리를 아는 용역업체들은 애당초 그런 것을 제시합니다. 소위 ‘선수’들의 영역입니다. 부족한 예산에도 실적을 위해서 수주하고, 아르바이트를 동원하여 제작합니다. 공무원과 설치물 제작 업체는 마치 공생 관계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지자체는 조형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들어야 한다면 선정과 제작 과정에서 뒤로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Q. 성공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 성공적인 것인지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만일 지자체 조형물이 성공해야 한다면 예산만 책정하고 사업관리와 유지보수 등의 운영은 분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행정은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는지 감독한다는 명분으로, 예술 창작의 모든 과정에 간섭하는 구조입니다. 여론에 매우 민감하고, 조형물을 지자체장의 치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매우 강해서 정치색을 띠게 만듭니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처럼 까다롭습니다. 

 

조선시대 유교는 일상의 생활문화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를 규정하고, 가구·도자기·옷에서부터 공예의 장식이나 색에 대해서도 규제했고, 사치는 강박적으로 경계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화려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투박해서도 안되는 세련된 도자기, 이율배반적인 도자기를 찾다 보니 화려한 고려청자는 자취를 감추고, 아무 특징 없는 백자가 등장했습니다. 민중들은 막사발을 사용합니다. 장식도, 색상도 없고, 대충 ‘막’ 만든 막사발입니다. 도자공은 천민이라 관아에서 관리하며 자기를 납품하면서도 노역에 동원되어 아무런 성취동기가 없었습니다. 

 

반면, 임진왜란 동안 왜군은 조선의 도자공을 포로로 잡아가서 공장을 지어주고 결혼을 시키고 집을 제공하고 조수를 붙여주는 등 모든 지원을 하고 오직 좋은 도자기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하니 간섭하지 못하고, 조선 도자공이 요구하는 흙을 구하기 위해서 일본 전역을 뒤집니다. 결국 일본의 도자기를 꽃 피우고, 도자기 산업을 바탕으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동안, 조선의 도자는 거의 명맥이 끊어집니다. 

 

우리의 지자체 관료들은 사대부 집안의 양반처럼 굴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프랑스에 가봤더니..., 내가 일본에 가봤더니...” 가본 곳도 많고, 본 것도 많습니다. 사공이 많으니 좋은 도자기가 나오기 매우 어렵습니다. 지자체가 할 일은 전담조직을 만들고, 훌륭하고 통찰력 있는 디렉터를 위촉하여 전적으로 책임과 권한을 일임하고, 단지 커넥션과 같은 운영상의 폐해만 감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를 ‘팔길이 정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각 지자체를 보면 조직 내에 인하우스 디자인팀을 운영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도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조직을 만들더라도 실무 디자인 개발업무를 하기 보단, 디자인 예산을 세우고 용역 업체를 지휘 감독하는 업무를 하는 ‘코디네이터’ 조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 방법 외에는 별다른 개선 방법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뷰어_ 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에디터_ 최유진 편집장(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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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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