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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글 대나무숲_ 기자방담] 공공기관 디자인용역 입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

2024-01-31

정부대전청사전경 (사진출처: 조달청)


새해가 시작된지 어느덧 한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1년동안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CI, BI 등 디자인용역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반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부분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CI, BI 용역을 진행하다보면 개발단계에서 수 많은 변수를 맞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개발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입찰제도에서도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고 있다.

 

그동안 디자인정글은 기자방담을 통해 공공기관의 디자인 용역 입찰제도의 문제점을 수차례에 걸쳐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기자방담에서도 현장 실무에 임하는 전문가의 관점에서 생생한 경험담, 깊이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디자인용역 입찰제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자 한다.

 

진행자: 4차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모든 업무들이 온라인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의 업무도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에 맞추어 브랜딩이나 디자인 업계도 공공기관의 CI, BI 관련 입찰공고를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제안서를 준비하게 된다. 오늘 기자방담에서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 그들의 일처리 방식의 문제점을 이야기해보자.

 

기자A: 대부분의 입찰은 제안서 제출 시 발주처에 직접 방문하여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달청은 공공기관 입찰의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e-발주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를 활용하는 공공기관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디자인용역 입찰에 참여할 때마다 수십 부의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입찰 참가업체 입장에서는 너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기자B: 어디 그뿐인가? 제안서를 제출할 때 제안서와 제안요약서의 2가지 타입을, 심지어 별도의 발표자료까지 3가지 타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심사위원의 숫자가 7명에 불과한데도 제출 부수를 그의 2배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과다하게 제안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낭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심사현장에서는 PT 평가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발주처가 지방일 경우 업체 입장에서는 입찰 참가를 위해 수반되는 기회비용이 너무도 크다.

 

기자C: 그 정도만해도 양반이다. 제출양식을 엄격하게 따지는 발주처의 경우, 제안서와 제안 요약서로 구분된 두 개의 내용이 완전히 같더라도 꼭 각 10부씩 총 20부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입찰 평가 시 심사위원이 제안 PT를 대하면서 동시에 두 개의 자료를 볼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심지어 제안서는 한글 파일로 작성하도록 하고, 제안요약서는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게 하는 발주처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같은 내용을 양식만 다르게 해서 준비하게 하는 것은 입찰 참여업체로 하여금 시간과 비용만 낭비하게 만드는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기자D: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는 ‘ESG 경영‘ 실천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과도하게 제안서 제출을 요구하는 상황은 정말 말뿐인 ‘ESG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PT 발표장에 가보면 심사위원이 발표자의 설명을 들으며 화면만 응시할 뿐 제출된 제안서를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자E: 입찰공고문이나 제안요청서 등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소위 다른 발주처의 내용을 그대로 ’복붙‘해서 만들어진 경우를 많이 본다. 내용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제안요청서인데, 이를 작성한 공무원이 과업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화 문의를 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달청 사진 (사진출처: 조달청)


기자A: 사업총괄 책임자만 PT 발표를 하도록 제한하는 경우도 문제다.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 모든 제안 프로젝트에 사업총괄 책임자가 일일이 PT 발표를 한다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입찰 참여기업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자리라면 실무에 참여하는 인력 중 누구라도 PT 발표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진행자: 좋은 지적들을 해주었다. 우리나라는 ‘나라장터’라는 전자조달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고도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아서 문제다. 어찌 보면 모든 입찰을 가장 투명하게 하려면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방법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온라인으로 접수를 하고, 온라인으로 평가하고, 온라인으로 결과 발표를 해야 가장 투명하다.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제안서를 일일이 인쇄해서 제작하고, 이것을 발주처에 직접 방문하여 제출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야 좋을지 이야기해보자.

 

나라장터 홈페이지 (사진출처: 조달청)


직접 제출과 10부 이상의 종이 제본 방식을 선호하는 공공기관 (사진출처: 구글)




기획재정부 사진 (사진출처: 기획재정부)


기자A: 방금 지적한대로 온라인 제출을 이용하면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제안서 규격 시비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도 없앨 수 있다. 공공기관들이 더욱 투명하게 입찰과정을 진행하려면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기자B: 물론 온라인이 최선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제출이 불가피하다면 차선책으로 발표자료까지만 제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심사위원 숫자보다 더많은 부수를 요구하는건 정말 자원낭비에 해당한다. 심지어 제본방식까지 까다롭게 지정하는 것도 문제다. 제출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해서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자C: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제안서와 요약서로 구분하여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불합리하다. 100페이지 이내의 제안서에 요약서는 왜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다.

 

기자A: 앞서 이야기한 PT 발표자 지정 제한에 대해 말해보겠다. 입찰 공고에 이러한 제한을 두는 이유는 PT만 전문적으로 하는 아나운서 전문가를 일시적으로 고용해서 발표하게 하는 등 실제 업무수행과 무관한 사람이 PT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입찰금액의 규모가 작은 디자인 용역에서 아나운서까지 고용해서 PT를 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행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온라인 입찰이 가장 공정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나 공공기관들은 왜 그 방법을 쓰지 않을까? 뭔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거나 부정이 연루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디자인 용역 입찰에서 공정성이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공정거래위원회 사진 (사진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제안평가 모니터링 현장 (사진출처 : 구글)

온라인 제안PT 심사평가 예시 (사진출처:  구글)


기자A: 요즘 들어 개찰 결과를 공개하지 않거나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서만 정성평가 결과만을 공지하는 경우가 많다. 개찰 결과 점수는 정량, 정성, 가격평가 점수의 합산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 정성평가 부분만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심사과정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 수 있다.

 

기자B: 나라장터를 통해 충분히 개찰 결과를 업로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를 합산하지 않고 둘 중 하나만의 결과를 업체에 통보하는 경우가 있다. 입찰에 대한 결과 공개를 투명하지 않게 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발주처의 의무를 회피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기자C: 더불어 이렇게 입찰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행위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입찰 참가를 준비한 제안업체로 하여금 정당한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개찰 결과 및 평가 점수에 대한 공개는 입찰 및 심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과 비리를 방지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기자E: 하다못해 담당부서에 전화를 해보거나 공식사이트를 통해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개찰 결과를 알기 어렵고, 1순위 협상적격자 선정 여부만 확인가능한 경우도 허다하다. 디테일한 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용역 입찰이 정말 비일비재하다.

발표순서 결정에 일반화된 제비뽑기 방식 (사진출처: 구글)


 

진행자: 사실 입찰 참가업체의 능력을 계량화하여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더더욱 결과 공개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에 크나큰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점이 문제이고 또,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기자A: 정성적 평가 즉, 제안서 심사와 PT발표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익명성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 심사위원이 평가한 점수는 무기명으로 공지하되, 어떤 분야의 심사위원이 참여했는지는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전문분야를 평가하는 것인 만큼 심사위원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는지 공개하는 것이 평가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기자C: 입찰에 참가한 모든 업체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평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풍조가 형성되기 위해선 발주처인 공공기관이 입찰의 전과정을 공정하게 집행하려는 성의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자E: 거기에 심사위원들의 심사 의견도 공개되어야 하고 평가 점수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투명한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진행자: 공정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엔 PT 현장에서의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부분의 입찰과정에서 PT는 업체선정의 당락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단계다. 그러나 발주처 또는 심사위원들의 이해부족으로 불합리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기자A: 이제 디자인용역 입찰에서의 PT 현장은 프로젝트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설명의 자리가 아니다. 용역의 내용과 상관없는 현란한 사운드와 화려한 영상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자리로 이미 변질되었다. 10~15분동안 진행되는 그 짧다면 짧은 순간에 본질을 흐리면서 얼마나 심사위원을 현혹시키느냐가 당락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기자C: 근본적으로는 제안서의 페이지 제한도 필요하다. 페이지 제한이 없는 경우, 제안서의 질을 떠나서 참여 업체간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초래하게 된다. 과도하게 많은 양의 제안서는 10~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평가를 실시해야 하는 심사위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기자B: 실제 PT 현장에서 보면 입찰 참가업체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상태에서 발표순서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것도 정말 비효율적이다. 제안업체는 평가를 받기위해 PT현장까지 이동해야 하는 데 인원, 시간, 비용 뿐만 아니라 현장에 도착하여 발표까지 대기하는 시간을 그냥 허비하게 된다. 특히 지방에서 PT를 해야 하는 경우, 한나절의 시간을 온전히 대기실에서 보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제도는 현재 딱히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업체들을 대기시켜 놓고 현장의 오디오나 빔 프로젝트의 컨디션, 발표자료의 정상작동 유무를 확인할 수 없게끔 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PT 발표를 하려는데 제대로 컨디션 체크가 되어있지 않아 발표를 망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기자E: 용역 심사 현장에 급하게 불려나온 심사위원들은 아무래도 해당 용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심사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제안서의 내용이나 PT 발표는 안중에 없고 질의응답 시간에 해당용역과 상관없는 내용을 질문하기도 한다. 일부러 특정업체에 부정적인 질문을 던져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여 자신이 밀어주고 싶은 업체를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진행자: 여기저기 디자인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얼굴을 내미는 소위 ‘심사꾼’들이 있다. 이들은 업체로부터 로비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에 대한 규제나 처벌은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공정한 선거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라는 기관이 존재하듯 용역 입찰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별도의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지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기자C: 제안서의 페이지 제한을 두되, 표지, 간지 등을 제외하고 30~35p로 하는 것이 제안 내용을 충분히 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어떤 업체는 페이지 제한 때문에 영상 삽입을 통해서 제안서 내용을 늘리는 편법을 쓰기도 하는데, 페이지 제한하는 경우 무조건 영상물을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하는게 필요하다.

 

기자B: 입찰 참여업체 수가 많을 경우, 발표순서를 미리 정해 놓고 업체들에게 해당 시간을 통보해 주면 참여 업체들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PT가 시작되기 전에 참여 업체들로 하여금 오디오 상태나 발표자료의 정상작동 여부를 체크하는 시간도 마련해주어야 한다.

 

기자D: PT평가 시 심사위원들에게 개별 태블릿이나 모니터를 제공한다면 구태여 인쇄된 종이 제안서가 필요할까? 모니터를 보면서 평가하면 제안서를 여러권 쌓아놓고 뒤적거릴 필요도 없을 뿐더러 쉽게 검색이 가능하니 평가하기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공공기관마다 회의실에 모니터 시설들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고도 이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기자E: 그리고 심사위원 당 질문의 개수도 제한했으면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위 ‘심사꾼’의 훼방으로 현장 분위기가 이상하게 휩쓸려서 특정업체에 몰표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실제로 PT 현장에 가서 질문을 하나도 받지 못해 썰렁한 분위기를 감지한 경우도 있었고, 인신공격성 질문을 받아 당황한 경우도 수 없이 경험했다.

 

기자D: 발주처 담당자들로서는 심사위원들의 발언을 너무 맹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예상 질문지들을 취합하여 질문의 적합성을 미리 검토해보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블라인드 방식으로 심사하지 않는한 이런 불합리는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진행자: 이제 화제를 바꾸어 정량적 평가의 불공정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정량적 평가’란 용역 참여업체가 믿을만한 회사인지, 그동안의 실적은 어떻게 되는지, 회사의 규모는 어떠한지 등, 계량적인 부분을 산정하여 등급을 나누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 분야의 평가라 함은 조사분석을 잘하고, 이미지를 잘 만들고, 제안서 구성을 얼마나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는지가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간혹 정량평가 점수로 인해 입찰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가 있다.

 

기자A: 정량평가 기준은 크게 참여인력, 사업수행실적, 신용평가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참여인력 기준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하는 ‘산업디자인 개발의 대가기준’에는 디자이너 등급별 노임단가와 디자이너 등급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디자인 개발(CI, BI, 브랜드, 캐릭터 개발 등) 용역의 경우 해당 기준을 활용하여 참여인력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디자인용역 입찰의 경우 참여인력의 평가기준을 박사학위, 석사학위 등 학력위주로 설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자C: 학력주의를 철폐하고, 능력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지금의 시대와 동떨어진 평가기준이다. 디자인을 공부했던 인력 중에 과연 몇 퍼센트나 석사,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게 과연 디자인 분야에서 제대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효용성 있는 스펙인지 모르겠다.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분야에서 가장 꽉 막힌 방식인 학력을 척도로 삼는다는 것은 이 분야를 대하는 공공기관의 태도가 상당히 고지식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기자A: 정량평가 중 사업수행 실적의 경우, 최근 3~5년 이내 유사용역 수행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조달청의 일반용역 적격심사 세부기준에 따르면 해당 용역규모 대비 사업수행실적 누적금액이 100% 이상일 경우 만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입찰에 따라 요구하는 실적기준이 조금씩 상이하긴 하나, 일부 디자인용역 입찰의 경우 너무 과도하게 실적금액 또는 실적건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기자B: 한 해에 나라장터에 게시되는 디자인용역 입찰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이로 인해 규모만을 내세우는 대형업체로만 용역이 몰리거나 작은규모의 회사는 입찰의 참가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량평가 점수에 따라 용역 입찰의 당락이 좌우되다 보니 덩치 큰 대형업체가 시장을 독식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세업체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덩치 큰 업체가 이런 디자인 용역들을 대부분 독식하게 되면 결국 디자인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이 시장독점을 조정하는 기관이 나서서 개선을 해주어야 하는데 디자인 분야는 워낙 시장규모가 작다 보니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손이 닿지 않는게 문제다. 

 

기자A: 디자인 용역 입찰에서는 1위만이 승자 독식의 기회를 얻는다.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한 업체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 마치 선거판에서 1위로 당선된 사람만이 성공의 열매를 독차지하는 것과 같다. 2위, 3위를 한 업체에게도 최소한의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기자B: 물가상승에 따라 각종 경비나 제작비 등 모든 비용은 오르고 있지만, 정작 용역비 규모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는 디자인 업계를 가볍게 여기고 디자이너의 전문성과 인건비를 저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기자C: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발주처의 주먹구구식 행정 사례를 하나 사례를 들고 싶다. 발주처에 입찰 제안서 양식을 문의 시 처음엔 영상 첨부가 불가능하다고 하다가 제안서 제출 막바지에 가능하다고 연락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 용역 입찰공고에 영상물 사용 가능여부를 명시해놓거나, 규정을 어기고 영상물로 과포장했을 경우에는 감점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해둘 필요가 있다.

 

기자D: PT 일정을 명확하게 기입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 전에 통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제안 참가업체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참가업체에 대한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제안서 보상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고시 제정 (사진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2018.01.18)


진행자: 그런 황당무계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앞서 이야기한 탈락보상금에 대해 얘기해보자. 소위 ‘리젝트피(Reject fee)’라고 하는 보상비용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모든 업체들의 숙원사항일 것이다.

 

기자A: 디자인용역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들에 대한 보상제도인 탈락보상금(리젝트피)을 입찰 공고에도 명시해야 한다. 예산이 없어서 못주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근거가 없어서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가 움직여야 하겠지만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만들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이는 선거에 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하게 될 경우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 제도와도 같이 디자인용역 입찰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기자E: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입찰에 떨어진 업체들에게도 제안서 비용의 일부를 보상해주는 규정이 있다. 이렇듯 법적 제도 장치가 있으면 발주처는 이에 맞게 시행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용역 입찰의 근거로 삼고 있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도 탈락보상금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법률 개정이 어려우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만이라도 개선되어야 한다.

 

기자D: 좋은 지적이다. 공공기관 입찰 내용을 보면 과업에 따른 추정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이를 공개 입찰에 붙이면 업체들은 추정 예산 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마련이고 그에따른 차액이 발생한다. 그 차액의 일부를 탈락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보상을 해주면 입찰 참가 업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역할을 할 것이다. 하다못해 수고한 업체들에게 교통비라도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기자B: 당장 실현되기 힘들겠지만 발주처와 용역사 간 상호 평가 시스템도 필요하다. 민간 영역의 프리랜서 플랫폼 등에서 운영하는 방식과 같이 조달청에서도 용역이 마무리가 된 뒤에 발주처와 용역사가 상호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평가 데이터를 근거로 발주처는 질 나쁜 용역 업체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용역 업체 역시 발주처에 대한 평가 데이터를 확인한 후 입찰 참여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선순환적 제도가 꼭 필요하다.

 

기자C: 디자인 용역 입찰 시 공정한 경쟁을 위해선 영상 및 음향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우리 디자인 분야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이슈일 것이다. 특히 지식기반 서비스 용역 입찰에서는 그 지식서비스의 질적인 부분에만 집중해서 평가해야 한다. 영상이나 음향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그 용역 서비스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입찰 참가업체끼리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행자: 오늘 기자방담에서 우리 업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답답한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준 것 같다. 오늘의 좌담을  마무리하며, 앞으로도 디자인정글이 디자인업계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도록 기자들의 예리한 통찰력을 기대하겠다.



기자방담 참여기자 (사진출처: 디자인정글)


기자방담 참여기자_ 임한균 기자, 한승만 기자, 박아름 기자, 송윤석 기자, 김수연 기자, 김현혜 기자

좌담 진행_ 정석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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