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인터뷰

[서유경 변호사의 내일, 인터뷰] 한국의 예술가구를 소비자의 품으로

2023-02-05

No.3 아이엠히어 (1부)

 

아이앰히어(Iamhere)는 가구를 사랑하는 회사다. 가구를 인격체처럼 대하며, 그 속에 담겨 있는 가구 디자이너와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물건에 고유한 이야기가 깃들면, 그 물건은 예술품이 된다. 아이앰히어는 가구를 유통하는 플랫폼이면서도, 예술계와 콘텐츠 분야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회사다. 

 

루체드의 소파에 앉은 아이앰히어 정혜원 대표(좌), 더쿼드 우드웍스의 소파에 앉은 법률사무소 아티스 서유경 변호사(우)

 

 

정혜원 대표는 오랜 대기업 생활에서 얻은 합리적 비즈니스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가구 디자이너들의 삶을 조명하며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한 명의 창작자가 만든 가구가 한 사람의 삶의 공간에 자리 잡을 때 하나의 의미가 발생한다.

 

실제로, 백화점과 전시공간, 쇼룸을 통해 아이앰히어가 판매하는 가구들을 감상할 때 꼭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브랜드 가구들은 일관된 테마를 갖추고 잘 제련된 가구를 소개하는데 비해 아이앰히어는 달랐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가구들이 "나 여기에 있어요!"라며 소리 내어 말을 거는 듯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존재감을 가진 가구들이었다. '이 가구는 도대체 누가 만든 거지?'라는 호기심이 생길 때, 비로소 "I am here"라는 문장이 브랜드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구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아이앰히어

 

윤재훈 작가의 다이닝 체어(좌), 구상우 작가의 바운스 체어(우)

 

 

(서변) 아이앰히어가 소개하는 가구를 살펴보면 도대체 디자이너, 작가가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 아이앰히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아이앰히어) 원래는 건설분야 대기업을 다녔습니다. 2003년부터 18년 동안 일하며 건축 외관부터 제품디자인, 가구, 조명까지 다루었죠. 그 당시 아파트 회사들의 모델하우스에서는 고급스러운 가구는 대부분 수입해서 인테리어를 했어요. 수입이 아니라면 알아주지 않는 문화였습니다.

 

아파트 커뮤니티센터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저는 홍대 가구공방 이런 곳들을 다녀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나라에도 정말 좋은 가구디자이너가 많다는 걸 알게 됐지요. 그분들은 정말 좋은 재료를 쓰고, 좋은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드는데, 유통망이 없으니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막상 대기업 프로젝트에 그런 분들의 가구를 구해다 적용해 보려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마음속으로 내 나이가 60이나 70이 되더라도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정말 가구만 생각하며, 좋은 가구 디자이너들을 소비자들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일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 가구시장은 대량생산 체제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며 쉽게 가구를 소비할 수 있도록 형성되어 있지만, 분명히 어떤 작가가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며 작품성 있는 가구들을  원하는 소비자들도 있어요. 좋은 가구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시켜 주고 싶었고, 그렇게 아이앰히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 가구를 선택하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호기심

 

인터뷰어 서유경 변호사 (법률사무소 아티스)

 

 

(서변) 대량생산체제를 염두에 두면 누구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야 한다기보다는 누구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희생될 때도 있지요. 작가적 성격의 가구 디자이너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똑같은 양산형 가구들에 익숙해진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 소비자들이라면 자신의 개성에 맞는 가구들을 찾아 나서겠지요. 

 

(아이앰히어) 대기업에 재직할 때, 약 12년 동안 대규모 아파트 건설사업에 대량생산되어 들어가는 가구들을 충분히 살펴봤습니다. 해외영업을 담당하면서 6년 동안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선진국들의 주거문화를 접할 수 있었는데, 아파트이든 빌딩이든 그 어느 공간이라도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사람의 삶은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요. 다양한 삶에서 개성이 나오고, 인테리어는 삶의 공간으로서 다양한 모습을 반영합니다. 소비자들이 굉장히 오픈 마인드로 개성을 표출하고 싶다면 시장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만큼 공급자도 다양하게 생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 우리나라도 이제 그런 시대를 맞이한 것 같아요.

 

신세계 백화점 본점 아이앰히어 팝업스토어 (사진제공: 아이앰히어)

 

 

(서변) 아이앰히어가 가구를 홍보하는 방식이 색다릅니다. 가령, 대기업 팀에서 내놓는 가구들을 살펴보면 "당신에게 어떤 삶을 제안합니다. 그러니 우리 가구를 사용하세요"라는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단 걸 느껴요. 그런데 아이앰히어는 가구의 독특함에서부터 출발해서, 이 가구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 가구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소비자에게 물음표를 갖게 해요. '이 가구를 선택하면 내 삶에서 어떻게 변화가 생기는 거지?'하고 말이에요.

 

(아이앰히어) 정말 디자인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적 알맹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거예요. 제 마음속에서 디자인의 결과적 외관만 보여주거나 기능의 우수함을 강조한다거나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서 경쟁하려는 건 크게 없었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단지 아이앰히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디자인의 알맹이였어요. 왜 이런 디자인이 나왔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죠. 아이앰히어 팝업쇼나 쇼룸을 열 때 가구들이 가진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소비자들이 재미있어 하죠.

 

이제는 생각도 그렇고 라이프 스타일도 점점 유연하게 바뀌는 것 같아요. 판박이처럼 신뢰도를 가진 삶 대로 꾸며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그것에 맞는 디자인과 기능을 추구하게 됩니다. 아이앰히어를 찾는 자신이 원하는 가구를 발견하면 굉장히 반가워해요. 그 모습을 보며 더욱 열심히 가구 디자이너들을 널리 알리고, 소비자들을 만나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지요.

 

(서변) 내가 살고 싶은 환경과 몸에 맞는 가구에 대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어떤 공간에서 살고 싶은지에 관한 질문은 결국 나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게 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는 거죠.

 

아이앰히어,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표하는 말

 

인터뷰이 정혜원 대표 (아이앰히어)

 

 

(서변) "아이앰히어(I am here)"는 문장이잖아요. 상호가 영화 제목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앰히어) 브랜드 론칭을 하며 바로 상표권으로 등록을 했지요. 그런데 불과 몇 달 후에 영화 <아이엠히어(I am here)>가 나오더군요. ‘아이앰히어’는 이전 직장에 다닐 때부터 2년 넘게 구상했던 상호이자 브랜드예요. 문장 그대로 ‘여기에 있어요’라는 뜻이지요. 가구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반겨주잖아요. 사람들은 가구들로 구성된 공간에서 누워 쉬고, 앉아서 일하고요. 가구란 늘 그 자리에서 오래 살아있는 존재이고, 사람에게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죠. 장소성이 있는 거예요. 그런 장소성(場所性)을 뜻하는 말이 바로 아이앰히어였어요. 

 

가구의 장소성을 떠올리면 가구가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있어요. 나를 편히 대해주세요. 나에게 오세요." 이런 느낌으로요. 제가 가구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은 항상 어딘가 기대거나 눕거나 앉거나 그런 가구들이죠.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곳도 가구고요. 어느 순간 가구를 특별하게 보게 됐어요. 가구는 어떻게 항상 사람들 곁에서 편리함을 제공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도 늘 같은 자리에 있어줄 수 있을까요? 이런 마음을 가장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했죠.

 

(서변) 장소성이라니. 굉장히 멋진 말인데요? 그 장소만의 특별한 성격, 즉 아이덴티티(identity)잖아요. 가구를 단지 물건으로만 보고 있지 않으시네요. 인격을 갖춘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가구가 여기에 있으니 소비자들이 찾아올 수도 있겠군요.

 

(아이앰히어) 아이앰히어는 가구의 장소성을 뜻하기도 하지만, 다른 하나의 의미는 가구 디자이너들의 좋은 가구와 소비자들을 연결해주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 가구 디자이너들은 좋은 재료로, 좋은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면서도 고군분투해요. 공방을 여는 것부터 재료를 수급하고 제작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에서부터 나중에 CS까지. 아이앰히어를 통해 홍보 채널을 열어주고, 유통환경을 개선해 주고, 고객을 관리하는 문제까지 플랫폼으로서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구 디자이너들이 "나 여기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소비자님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아이앰히어가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는 거죠. 

 

박은총 작가, 쓰임이 있는 오브제 "벤치" (사진제공: 아이앰히어)

 

 

(서변) 아이앰히어란 생각보다 굉장히 의미가 풍부한 말이네요.

 

(아이앰히어) 억지로 생각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니까요. 자연스럽게도 아이앰히어라는 말이 우리가 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까지 대표하는 문장이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가구산업은 해외에서 수입해 온 가구 아니면 대량생산형 가구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물론 그 중간에서 개인적으로나 소기업 수준에서 가구를 잘 만들어서 공급하는 업체도 있지만, 그분들을 집결해 주는 플랫폼은 없었단 말이죠. 전국에 분포한 가구 디자이너들의 주요 채널이 인스타그램이에요.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면 본인의 가구를 제품화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은 1천 명 정도 되는데, 파생하여 가구목공업이나 메탈소재가공업 등까지 합치면 숫자가 더 많겠죠. 그런 분들의 가구를 발굴해서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굉장히 용기를 내어 시작한 회사예요. 그분들의 존재성을 알리는 거죠.

 

(서변) 시장에서 팔린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상업성이 있다는 것은 그 디자인을 원하는 수요자들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수요자들도 그 디자인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구매할 수 있는 거지요. 기존에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작가나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팔았나요? 


(아이앰히어) 시장에서 팔려야 선순환으로 창작도 새롭죠. 아이앰히어도 바로 그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작가나 디자이너가 작업실에서 누가 의뢰하지 않은 작업을 하고 세 피스, 네 피스 정도 가지고 있다가 페어가 열린다 그러면 지원해서 선정되고 전시하는 거지요. 그러다 안되면 할 수 없는 것이고. 본인들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열심히 올리고, 더 나아가 더 부지런한 작가들은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운영하지요. 이렇게 했을 때 대략 3년 정도가 되어야 그나마 알려지고 주문이 발생하고, 기존 고객들이 아는 사람을 연결해 주고 하지요. 그런데 아이앰히어가 플랫폼으로서 팝업 스토어, 오프라인 전시, 앱을 통한 홍보활동을 하면서 작품이 팔리면서 수익이 발생하고 있지요. 이렇게 작업을 알리면서 만 2년 정도 지나니까 기업형 비즈니스(B2B) 의뢰도 들어오고, 하이엔드 주거시설 홈스타일링 서비스 위탁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트퍼니처 스토리텔링, 작가와 소비자를 잇는 새로운 방식

 

쇼룸에 전시된 구상우 작가의 의자 모형(좌), 루체드의 소파(우), 오리진(Orijeen)의 서현진 디자이너와 아이앰히어의 백광호 디자이너가 협업한 컬러플로우 유닛(배경)

 

 

(서변) 아이앰히어가 가구를 판매하는 것은 기존의 가구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 비즈니스와 같다고 생각되거든요? 일종의 콘텐츠 매니지먼트 같기도 하고요.

 

(아이앰히어) 그 부분도 맞아요. 갤러리스트가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예술작품을 큐레이션 해서 선보이는 것처럼, 아이앰히어도 가구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요. 차이점이 있다면 그림이나 조각은 감상의 대상이지만, 가구는 실제 생활에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생활 속의 갤러리라고 봐주시면 좋을 거예요. 가구마다 이야기가 있어요. 아이앰히어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게 대략 500점 정도 되고, 앞으로 선보일 가구도 1,000여 점 정도 되거든요. 온라인에서는 가구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야 하는데, 오프라인에서 전시를 보듯 하면 실제로 가구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죠. 그때가 제일 재밌어요. 

 

(서변) 플랫폼, 콘텐츠, 디자인, 예술작품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보면 색달라요. 아이앰히어의 가구를 살펴보면 미술시장처럼 재판매(resale)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작가가 만든 디자인 작품으로서 가구는 한정되니까요. 아이앰히어는 어떤 방향으로 가구를 소개하나요?

 

(아이앰히어) 크게 세 가지 방향입니다. 첫 번째는 아트퍼니처(art furniture)인데, 작가로서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회화나 조각처럼 아트퍼니처 고유의 예술성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관리합니다. 두 번째는 비스포크(bespoke), 요즘 많이 쓰는 말인데, 그야말로 맞춤형 디자인이에요. 기본형태의 프로토타입은 있지만, 소비자의 생활환경에 맞춰서 길이, 폭, 높이, 재질 등을 맞춤형으로 제작하지요. 세 번째는 디자이너 자체 브랜드 제품이에요. 작가들이 양산형 체제를 열심히 익히고 자체적인 브랜드를 갖춰가고 있지요.

 

최동욱 작가, Patterned vase (사진제공: 아이앰히어)

 

 

(서변) 저도 예술작품을 구매한 적이 있어요. 그 작품을 보면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며 고심하며 골랐죠. 나와 작품이 맺을 관계성에 대해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이니까요. 상품으로 판매에만 치우치다 보면 가구도 작품으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몰랐을 거예요.

 

(아이앰히어) 작가가 만든 가구에 에디션 넘버(edition number)를 매기고, 작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카드를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전달합니다. 예전 르꼬르뷔지에(Le Corbusier)나 찰스 앤 레이 임즈(Charles & Ray Eames)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요. 소비자들은 그 어떤 해외 수입형 가구를 받은 것보다 훨씬 기뻐합니다. 작품에 대한 로열티를 누릴 수도 있고요.

 

가구가 판매됐다고 해서 포장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가구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관계성을 유지해주고 싶어요. 이 가구의 희소성, 이 가구가 가질 생명과 영속성을 드리고 싶어요. 가구를 매개로 해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요. 작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가구의 에디션 넘버를 어떤 맥락과 스토리에서 구매했는지 소비자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아트퍼니처를 재벌 같은 사람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가령, 30대나 40대 정도의 고객들이 ‘저 가구가 마음에 드는데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기도 해요. 명품 가구를 산다기보다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가구를 가고 싶다는 니즈(needs), 그리고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희소한 작품성에 대한 안목, 다양성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가진 분들이지요.

 

(서변) 중고가구라고 하면 흔히들 가성비를 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술품은 오히려 중고, 즉 누군가가 소장했던 작품의 가격이 더 뛰어올라요. 굉장히 특이한 시장이지요. 왜냐하면 그 작품이 가진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 역사와 가치를 사게 되는 것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아트퍼니처라면 재판매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해서, 이때 중요한 게 보증(warranty)과 이력관리예요. 예술품에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가 있는 것처럼요. ‘레조네’라는 건 ‘검토한다, 고찰한다’ 이런 의미가 있잖아요.

 

(아이앰히어) 기성 양산형 가구는 보증기간이 대략 1년 정도 되거든요. 파손에 대비해서요. 하지만 아이앰히어의 아트퍼니처는 기본 보증을 2년으로 합니다. 워낙 웰메이드 가구이고 20년 지나고 30년 이상 지나서 후대에 물려줄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해요. 그래서 품질에 대한 보증뿐만 아니라 에디션 관리와 작품에 대한 이력관리도 차별화해 보는 거지요. 이 일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5년마다 한 번씩, 10년마다 한 번씩 고비가 찾아오잖아요. 그런데 아이앰히어를 말년까지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일과 활동들에 대해 너무나도 기대가 생기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청춘처럼. 그런 마음을 먹으니 날아다니며 일해요.

 


헤겔의 유명한 공식, 정반합(正反合)을 떠올려본다. 정돈된 모습으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기성 가구의 테제(thesis)와 안티테제(antithesis). 아이앰히어는 각지에서 다양한 개성으로 고유의 독자성을 발휘하던 가구들을 소비자 앞에 선보였다. 예술성과 산업성이 결합하기란 쉽지 않지만, 합치고 나면 비로소 시장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건설분야 대기업에서 18년 동안 근무했던 정혜원 대표에겐 비즈니스를 관리할 수 있는 합리성이 있고, 재야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가구를 일구어 가던 작가, 디자이너에게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것을 이어낸 진테제(synthesis)가 바로 가구 플랫폼, 아이앰히어다.

 

정혜원 대표는 해외영업 경력에 기반해, 우리 가구 디자이너를 해외에 선보이며 ‘K-가구(케이가구)’를 전파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우리 가구의 아름다움이 보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법인가 보다. 아이앰히어는 한국식 가구의 장점을 근원적인 편안함, 자연을 닮은 선의 아름다움, 재료의 물성을 고려한 이음새와 견고함이라고 말하며 깊은 애정을 표현한다. 

 

다음 2부에서는 창작자와 소비자를 잇는 플랫폼으로서 비즈니스와 더불어, 아이앰히어가 한국 가구디자인의 조형언어를 모색하는 아카이브이자 뮤지엄으로서 비전까지 소개한다.

 

인터뷰어_ 서유경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변리사)
인터뷰이_ 정혜원 (아이앰히어 대표)
사진_ 이준범(스튜디오 관조)

facebook twitter

#디자이너출신변호사 #서유경변호사 #서유경변호사의내일인터뷰 #가구 #가구유통플랫폼 #한국가구 #아트퍼니처 #아이앰히어 #정혜원대표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