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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디자인정글 칼럼] 윤리없는 디자인이 사람잡는다

2021-07-30

글_ 김종균

 

지난 7월 15일 국회는 지난 13일 보건복지위원회가 전체회의를 열어 식품이 아닌 물품의 외형을 모방한 펀슈머(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신조어) 식품을 금지하는 ‘식품 등의 표기·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말표 초코렛, 딱풀 캔디, 서울우유 바디워시와 같은 펀슈머제품을 규제한 것인데, 디자인의 테마를 법으로 제약한 국내 첫 번째 사례인 것 같다.

 

디자인은 산업이면서도 예술의 탈을 쓰고 있어서, 늘 법을 멀리해 왔다. “법과 예술이 만나면 서로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When law and art chance a meeting, they should do their best to avoid each other)”라는 말이 있다. 규제하는 법률과 파괴하는 예술은 서로 상극인 측면이 있고, 법은 최대한 미술을 멀리하려고 애쓴다.

 

현대디자인은 근대 아방가르드들의 후손이다. 아방가르드들은 구제도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던 낭만가들이었다. 윤리적인 비난이 일고 법적인 고민을 안겨주는 것이 마치 예술의 역할인양 여겨지고, 많은 예술가들이 기꺼이 ‘또라이’ 역할을 맡고 인간이 만든 가치관을 마구 부숴 왔다.

 

하지만, 디자인은 산업에 편승하여 대량생산과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예술로부터 독립한 당돌한 영역이다. 그런데 조금은 예술가 피가 남아서, 돈만 벌고 규제는 안 받겠다는 심리가 강하다.

 

법이 없으면 윤리가 작동해야 하는데, 디자인 윤리는 빅터파파넥 이후로 공염불이 되었다. ‘Design for the Real World’가 1971년에 발간되었으니, 그동안 거의 무법지대로 살아온 셈이다.

PFM-1 지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윤리의식없는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는 PFM-1 지뢰를 꼽을수 있다. 일명 나비지뢰로 알록달록 예뻐서 장난감같이 생겼다. 비행기에서 대량으로 뿌리면 날개 때문에 민들레씨 마냥 널리 퍼진다. 장난감이 부족한 아프간, 파키스탄의 아이들이 들판에서 장난감인줄 알고 주워서 놀면 손목도 잘리고 죽기도 한다.

 

왜 아이를 죽일까? 전쟁터에 소년병들은 아주 상대하기 힘든 적이다. 성인 군인보다 어린이의 살상이 적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 그런데 이 지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무기다. 제작사는 부인하지만 피해자 95%가 어린이라 하니, 아무리 부인해도 목적이 분명한 소위 ‘굿디자인’이 분명해 보인다. 싼 값에 타겟을 정확히 공격하니 말이다.

 

레고모야의 Block19 권총 (사진출처: BBC News)

 

 

얼마 전 미국 총기 커스터마이징 업체 ‘컬퍼 프리시젼(Culper Precision)’이 레고 블록 모양 권총을 시판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작년에 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 2020년 벨파스트(Belfast)의 예술가 데이비드 터너(David Turner)가 만든 권총과 기관총의 복제품이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할리 갤러리(Harley Gallery)에서 열린 레고 전시회에 선보였는데, 이때도 전시철회를 요구하는 측과 열띤 찬반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총은 미술관 내에서만 전시된 작품, 즉 판매하지는 않는 총이어서 그나마 상황이 달랐다. 미국에서는 2020년 한해 동안 총기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2만명, 스스로 자살한 사람도 2만 4000명에 달한다. 이 중 어린이 희생자는 300명에 육박한다. 하루 평균 100명이 총기로 죽는 미국이라면, 상식적으로 만들어 팔아선 안 되는 디자인이다. 총기소지가 자유롭고 표현의 자유가 있으면 사람 한두 명쯤 실수로 죽어도 될까? 답은 자명하다.

 

서울우유 바디워시 (사진출처 :홈플러스)

 

 

무시무시한 지뢰나 권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구두약 초콜렛, 딱풀 캔디, 우유같은 바디워시 역시, 총만큼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로 개발했다가 발생할 사고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 돈을 벌기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다. 디자인에도 윤리가 필요한 이유다.

 

영국의 담뱃갑 디자인 (사진출처: NewScientist)

 

 

과거 국내 흡연률이 떨어지자, KT&G는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담뱃갑 디자인을 계속 선보였다. 특히 레종 담배의 디자인은 청소년에게 어필했는데, 줄어드는 흡연율을 만회하기 위하여 새롭게 청소년 흡연율을 높이는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국과 같은 일부 국가는 담배갑에 디자인 자체를 금지하고 끔직한 사진들만 붙여서 흡연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의외로 디자이너의 무지가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작은 레고의 머리에, 또 볼펜의 뚜껑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입에 넣었다가 삼켰을 때 질식사 할 것을 우려하여 만들어 둔 것이다.

 

소송의 천국, 미국에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지키는데 자주 등장하는 법이 일명 ‘레몬법’이다. 겉은 탐스럽고 맛있어 보이는데, 맛은 쓴 상품, 겉과 속이 다른 상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은 일종의 나쁜 디자인 퇴치법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 잘못했다가 실수로 사람이라도 다치면 일벌백계하고 기업을 파산시킬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법이다.

 

휴고 보스의 나치 군복 컬렉션 (사진출처: Debating Design Blog)

 

 

디자인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히틀러가 휴고 보스 에게 나치 군복을 맡긴 일화는 유명하다. 소위 ‘간지’나는 명품으로 치장한 멋진 군인은 청소년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군인으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멋만 부린 군복 때문에 혹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엄청난 수의 독일군이 동사했다. 러시아군의 군복은 추운 러시아의 날씨를 감안하여 투박하고 두꺼워 방한이 잘 됐는데, 독일군복은 애당초 멋을 강조하여 보온에는 형편없었던 탓이다. 독일군이 2차대전에서 패전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이 전투의 승패는 양국의 군복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은 소련군에게 졌다기 보다는 스탈린그라드의 매서운 추위에 졌다. 이후 쇠약해진 독일은 미군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비약하자면 결국 나치 패전은 휴고 보스의 공일지도 모른다. 독일로서는 멋부리다가 망한 사례라 할만 하다.

 

디자인은 엄밀히 말해서 예술이 아니다. 의식있는 디자이너와 디자인 윤리가 필요한 시대다.

필자소개 

김종균 (Jongkyun Kim)

대학에서 디자인, 특허법무, 큐레이팅을 전공하고, 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비평한다. 

저서로는 한국의 디자인(안그라픽스, 2013)등 10여권이 있고, 한국 디자인역사와 디자인/브랜드 관련 논문을 20여편 썼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05,2021), 런던온라인필름페스티벌(2020) 등 다수의 전시기획을 했다. 현재 영국에 체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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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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