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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계의 1세대 원로이자 환경 및 전시디자이너 한도룡 전 홍익대학교 교수 별세

2021-06-29

한국 디자인계의 1세대 원로이자 환경 및 전시디자이너인 한도룡 전 홍익대학교 교수가 6월 28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한도룡 교수의 생전 모습 (사진출처: 한국디자인진흥원)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장지는 광릉 추모공원이다. 

 

디자인정글은 국내 디자인계 원로들의 최근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특별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했으나, 미처 인터뷰를 시행하기도 전에 고인이 되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네이버 지식백과에 실린 ‘디자이너 열전’을 인용, 게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한도룡은 한국의 현대 공예 및 디자인계를 개척하고 선도해 온 1세대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여명기인 1960년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교육 및 행정과 실무 디자인 활동을 통하여 한국의 디자인 교육의 활성화, 체계화는 물론 디자인산업의 진흥과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40여 년간 대학에 적을 두었던 디자인 교육가이자 공예, 디스플레이, 환경, 산업 디자인 등 여러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한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그의 활동과 업적은 한국 디자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도룡은 1933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 시절 미술부 활동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민철홍과 조영제를 동기생으로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되었고, 졸업 후 한도룡은 홍익대학교 교수로 제품 및 환경 디자인 분야에서, 민철홍과 조영제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각각 산업 디자인과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 활약하며, 1세대 디자이너로서 당대 디자인계를 개척해갔다.

 

한도룡은 재학 중이던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공예 부문에 첫 출품한 작품이 특선에 선정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1959년까지 4회 연속 특선하며 일찍부터 공예 디자인에 대한 예술적 재능과 감성을 인정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인 1960년에는 동 전람회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추천작가가 되었으며, 1961년에는 20대 최연소 서울시 문화상 공예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예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1959년 국내 최초의 산업 디자인 관련 국가 연구소인 ‘한국공예시범소’에서 디자인 부장으로 재직하다가, 1961년에 홍익대학 미술학부 강사로 교직에 첫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이후 1966년 홍익대학교 공예학부의 전임교수로 임용되며 디자인 교육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교육과 병행하여 각종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편, 교육ㆍ행정ㆍ문화ㆍ산업계의 디자인 관련 사업과 프로젝트의 지도 및 자문 등 전문위원 및 디자인 개발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울러 국전 공예부문의 추천ㆍ초대작가와 상공미전(현,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공업미술부문의 초대디자이너 자격으로 작품을 출품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도룡이 지금까지 수행하거나 추진한 수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환경 디자인, 제품 디자인, 시각 디자인 등 주요 디자인 영역 전반에 걸쳐 있다. 

 

환경 디자인 작업은 도시 환경 디자인의 범주에 드는 각종 공간계획과 시설물의 디자인 개발이 주를 이룬다. 공원에서 경기장, 문화의 거리에서 도시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공공 및 상업 공간, 주거 공간의 실내 디자인 작업을 비롯하여, 가구에서 가전 제품을 아우르는 제품 디자인, 그리고 CIP 계획과 사인물 등의 시각 디자인 작업까지, 한도룡은 폭넓은 디자인 작업을 진행해왔다.

 

한도룡 교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대전엑스포 한빛탑 (사진출처: 페이스북)

 

 

그러나 한도룡의 디자인을 살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디스플레이 디자인이다. 1967년 한도룡은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EXPO) 한국관의 설계와 감리에 참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수많은 국내외 전시관과 세계박람회 한국관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거의 도맡다시피 진행하며,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엑스포 대부’이자 ’디스플레이 디자인의 대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박람회는 당대 산업 사회의 첨단을 펼쳐 보이는 경제, 정치, 문화적 이벤트이다. 전후 산업 성장을 기치로 하던 한국 역시 국내외 박람회 행사를 적극 개최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사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문제만큼이나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제시할 것인가 역시 중요했다. 

 

한도룡은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와 1968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 등의 디스플레이 작업을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 다수의 국내 박람회 및 전시회, 전시관 디자인은 물론 해외 세계박람회의 한국관 디자인을 맡아, 당대 개념조차 생소했던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보편화하고 한국의 전시 디자인 영역을 새로이 구축하고 확립하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이처럼 한도룡은 수많은 해외 박람회 전시관 설계 및 현지 감리 과정을 통해 당대 국제적 디자인 기법과 감각을 체득하였고, 이를 국내 디자인 프로젝트 및 대학에서의 교육을 통하여 전파하였다. 

 

또한, 각국의 국력 경연장과 다름없던 세계박람회에서 한국관의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전담하며,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기반한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 외교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가 이처럼 수많은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데는 ‘인타디자인연구소’의 공이 컸다. 한도룡은 1960년대 초부터 디자인 작업을 위한 독립적 공간이자 싱크탱크로서 인타디자인연구소를 설립, 운영하였다.

 

1965년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에서 시작하여 조선호텔의 ‘스페이스디자인연구소’를 거쳐 1976년 인타디자인연구소로 개칭되었고, 1992년에 마련한 사옥 ‘인타디자인하우스’로 이전하기까지, 연구소 특유의 펠로우십을 만들어가며 디자인 컨설팅과 매니지먼트를 통해 국내외 영향력 있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연구소명의 ’인타‘는 한자어 ‘人妥’와 영어 ‘INTER’의 중의적 표현으로, 人妥는 나와 너 사이의 상호반응관계(인터페이스)에서 ‘~을 위한’다는 공생적(Symbiotic) 의미를, INTER는 나와 그것(I-IT) 사이의 상호작용관계(인터랙션)에서 ‘~사이’의 공동체(Community) 의미를 나타낸다. 

 

인타디자인연구소는 이러한 의미의 ‘인타’를 전제한 디자인 연구 조직이 되었고, 인타디자인의 정신은 곧 한도룡의 디자인 철학이 되었다.

 

한도룡은 그동안 수행한 많은 프로젝트들 중 자신의 디자인 이념과 감각이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독립기념관 상징탑인 ‘겨레의 탑’과 1992 세비야 엑스포의 ‘한국관’, 1993대전엑스포 상징탑인 ‘한빛탑’, 서울지하철 CIP계획(1982) 그리고 ’88서울올림픽 사인시스템을 든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에서는 그의 전통 문화적 감성과 모던 디자인 정신이 절묘하게 대칭적 조화를 이루어, 민족의 기상과 기백을 명쾌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세비야엑스포 ‘한국관’에서는 전통문화유산에 기반한 고유의 한국적 이미지와 정체성을 현대적이면서도 국제적인 감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대전엑스포의 ‘한빛탑’은 옛 조상의 진취적 창조정신과 첨단 과학기술의 이미지를 융합시켜 엑스포의 주제인 ‘새로운 도약의 길’을 명쾌하게 형상화하여 현대적인 상징탑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빛•과학•우주를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된 한빛탑에는 세 개의 시간대가 쌓여 있다. 과거를 표현하는 하단부는 첨성대의 모습을, 현재의 중앙부는 우주정거장 형태의 고리형 전망대로 중심부의 눈은 살아 숨쉬는 한국인의 예지의 눈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나타내는 상단부에는 금속 원뿔이 자리한다. 이는 미래를 향한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미래로의 도약 의지를 상징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도룡은 ‘지혜로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한줄기 빛’이라는 의미를 디자인에 함축해 담았다.

 

한도룡 교수의 생전 모습 (사진출처: 김종균 페이스북)

 

 

디자이너 한도룡은 한국 디자인 역사에서 아직 디자인이라는 장르가 제도화되지 않았던 초창기부터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디자인을 개척하고 체계화해 왔다. 

 

그 동안 그가 개발하거나 추진한 환경, 실내, 디스플레이, 제품, 시각 디자인 프로젝트는 450여 개에 이르며, 이는 다수의 서훈과 수상 경력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는 동시에 교육자로서1998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정년퇴임 후에도 그는 홍익대 명예교수, 동아대 초빙교수, 경기대 대우교수로 활동하며 그간의 경륜을 후학에게 전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외교통상부 문화외교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통일부, 문체부, 행안부, 한국공항공단, 서울특별시, 전주시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공공기관의 디자인관련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의 자문과 심의, 개발위원 등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디자인고문(현대자동차)과 최고경영진(부관훼리)을 역임한 바 있으며, 디자인 전문가단체의 명예회장(한국공간디자인학회)과 고문(부산국제환경디자인포럼) 등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수행하면서 디자인계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에디터_정석원 편집주간(jsw@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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