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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미래 공상과학 미학의 아버지를 찾아서_ 시드 미드의 ‘시각적 미래주의’

2020-12-30

2019년 로스앤젤레스, 대기업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구조가 지배하는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수많은 네온 간판과 광고 영상 빌보드로 뒤덮인 초고층 건물들로 수 놓여 있다. 하늘은 일 년 내내 걷히지 않는 스모그 구름으로 뒤덮혀 어둑하고 지구황폐화로 인한 극심한 대기오염이 낳은 산성비 때문에 대기는 늘 축축하다. 거리와 빌딩 표면에 고인 물기는 도시 만물을 거울처럼 반사시키며 곳곳에 수경화(waterscape)를 자아낸다. 현란한 도시 조명 속에 무질서해 보이는 거리상점과 시끌거리는 인파로 북적대는 거리 속 폐허의 텅 빈 마천루들 사이사이로 ‘스피너(Spinner)’라는 가상의 하늘을 나는 경찰차가 24시간 맴돌며 순찰한다.

 


시드 미드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중 미래 다운타운 LA의 광경 일러스트레이션 ⓒ Syd Mead, 1981

 

 

이 도시에서는 소수의 대기업을 소유한 지배층 지배하에서 빈곤층 인간 대중과 그 밑에서 인간이 기피하는 일을 하며 생존하는 ‘리플리컨트’라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각박하게 경쟁하며 살아간다. 이 가상세계는 1982년에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필립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자 양을 꿈꾸는가?>라는 1968년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철학적 걸작 공상과학 액션 개봉작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펼쳐진 배경이다.

 

시드 미드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중 다운타운 LA에 번개가 치는 모습 일러스트레이션 ⓒ Syd Mead, 1981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했던 1980년대 초엽으로부터 불과 약 40년 후인 서기 2019년 인류의 미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듯하다. 때마침 스콧 감독은 시드 미드(Syd Mead, 1933~2019)가 출간한 일러스트레이션 북 <센티넬(Sentinel)>(1979년)에 깊이 감명받았던 터였다. 그리고 그는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 겸 디자이너 시드 미드를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 콘셉트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영화계 최초의 사이버펑크 테크누아르 공상과학영화의 시초가 된 <블레이드 러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미래주의 도회 미학 - 위협적인 고층 마천루, 을씨년스러운 거리, 비행자동차, 고도로 디테일하게 묘사된 인테리어 풍경 등 - 은 모두 이 영화를 위해 시드 미드가 창조한 일러스트레이션에 기원한 것이다.

 

시드 미드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중 미래 다운타운 LA의 건축 상상도 ⓒ Syd Mead, 1979

 

 

미국 출신의 산업디자이너이자 일명 ‘신(新) 미래주의 콘셉트 아티스트(neo-futurist concept artist)로 불리는 시드 미드는 2019년 12월 30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고층 건물, 세련되고 날렵한 비행자동차, 아름다운 남녀들이 있는 낙관적인 하이테크 미래 유토피아 이미지의 원형은 현대인들의 뇌리에 길이 남아있다. 그 같은 시드의 일명 ‘시각적 미래주의(visual furturism)’ 미학이 탄생한 때는 탁월한 천문학자이자 스타 과학저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난해한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파하던 1970년대로 대중 과학의 전성기였다.

 

시드 미드, 미래 도시 마리나 풍경 ⓒ Syd Mead, 1986

 

 

시드 미드는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최고조를 달했던 1933년에 태어나 1959년에 포드 자동차사 고급 디자인 스튜디오에 디자이너로 입사하며 직업 세계에 입문했다. 네 살부터 드로잉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기업 조직생활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61년형 포드 자이론(Gyron)의 2륜 미래주의차 콘셉트 디자인과 63년 출시형 포드 팔콘퓨츄라 모델의 미등 디자인을 한 후 퇴사했다. 전후 경제성장과 부흥으로 나날이 풍요를 거듭하던 1960~1970년대에 걸쳐 시드 미드는 퇴사 후에도 포드, 링컨, 머큐리 등 대형 미국 제조업체와 필립스 전자, 노르웨이 캐리비언 라인 크루즈선,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과 같은 국제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시드 미드, 미래의 도쿄 ⓒ Syd Mead, 1991

 

 

시드 미드가 로스앤젤레스로 거주지를 옮긴 직후인 1980년, 할리우드 영화계는 이 산업 디자인 업계의 총아를 영화계로 초대해 무대 디자이너로 변신시켰다. 시드 미드는 <스타트랙: 모션픽쳐>(1979년 개봉작)에 등장한 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 우주선, 각종 미래 이동수단, 도시 설계와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뒤따라 두 미래 공상과학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트론(Tron)>(1982년), 이어서 <2001 우주여행>(1984년)과 후속작 <2010>(피터 하이암스 감독)에 등장한 우주선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특히 <2010> 두 편의 영화 속 우주선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과학적 타당성에 근거한 미래 우주 기술을 적확하고 심오하며 실감나게 묘사한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주와 외계생명에 대한 인류의 막연한 낙관주의와 희망이 조금씩 무뎌져 가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와 21세기에도 할리우드 영화계를 위한 그의 상상 속 미래 우주시대 자동차와 하드웨어 기계 디자인 창조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참여한 <에일리언 2>(1986년), <엘리시움>(2013년), <투모로랜드(Tomorrowland: A World Beyond)>(2015년),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년)에 등장하는 ‘미래 도시’ 풍경에 담긴 미드의 양식은 영원한 미래주의 도시설계사 겸 건축가로서 시드 미드의 입지를 굳히며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공상과학영화 디자이너와 콘셉트 아티스트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시드 미드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위해 그린 미래 다운타운 LA의 밤 스카이라인 풍경 일러스트레이션 ⓒ Syd Mead, 1981

 

 

2020년 오늘날, 미국 서부의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스카이라인은 40년 전 리들리 스콧 감독과 시드 미드가 상상했던 그대로는 아니다. 시드 미드의 드로잉과 일러스트레이션 속에는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강철 쿠튀르(Steel Couture)’로 장식된 물적 풍요와 아름다움, 알 수 없는 ‘미국적 특유의 낙관주의’가 깃들어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파멸적 충동으로 인해 미래 인류 사회는 디스토피아로 치달을 것이라 전망했던 염세주의적 리들리 스콧 감독과는 분명 대조적이었다.

 

도미넌트 미래주의 미학의 창시자인 시드 미드는 지난 근 40년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 공상과학 영화계와 컴퓨터 게임계, 디자이너들에게 결정적인 시각적 영향력을 끼쳤다. 시드 미드의 <블레이드 러너> 일러스트레이션 중 미래 다운타운 LA의 밤거리 풍경 ⓒ Syd Mead, 1981

 

최신 출시작 컴퓨터 비디오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도시 및 건축 미학, 자동차, 캐릭터 묘사도 시드 미드의 미학의 계승이다. ⓒ CD Projekt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기술의 발달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계, 넷플릭스와 같은 온디맨드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 컴퓨터 게임을 통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공상과학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도미넌트 미래주의 미학의 기원을 추적하고 재음미해 볼 수 있는 디자인 전시회 ‘시드 미드의 미래 도시(Syd Mead - Future Cities)’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미술관에서 2021년 2월 7일까지 계속된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자료제공_ Graz Museum Schloss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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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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