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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이연연상 Bisociation’전

2020-12-29

헝가리 출신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가 만든 조어 ‘이연연상(bisociation)’은 서로 관련 없는 두 개의 요소를 연결해 연상하거나, 전혀 무관한 두 가지 사고패턴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가지고 하나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그의 저서 〈창조의 행위(The Act of Creation)〉에 의하면 창의적 상상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이연연상은 그동안 모호했던 생각을 적절하고 창조적인 개념의 형태로 만들어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 김채린의 작품은 관람객의 신체를 고려한 재료와 물성들로 만들어져 다양한 형태로 전시된다.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는 ‘생생화화 生生化化 2020: 이연연상 Bisociation’전이 열리고 있다. ‘생생화화 生生化化 2020’은 2013년 시작해 올해로 8년째 운영돼 오고 있는 경기예술창작지원사업 시각예술 분야의 성과발표 전시이다. 경기문화재단은 매년 경기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신작 창작을 지원하는데 올해는 22명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현지윤, 〈신중년도감〉 싱글 채널 비디오, 21분 2020

 

 

‘생생화화 生生化化 2020’은 지난 11월을 시작으로 작가들의 신작발표가 시작되었는데, ‘이연연상 Bisociatio’이란 전시명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에는 다섯 명의 작가 김재유, 김채린, 신이피, 이재욱, 현지윤이 참여한다. 
작가들은 사업의 지원 단계부터 작품 발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창의적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창작 및 계획하고 발전시키는 과정과 함께 창작가로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고민까지 스며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재유, 〈드러나 있으면서도 숨겨진 그곳〉 oil on canvas 227.3×486.3cm 2020

 

 

멈춰있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소재로 캔버스에 담아내는 작가 김재유는 대부도와 선감도의 풍경을 그려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마로 생산을 멈춘 ‘동주염전’의 풍경과 공사가 멈춰버린 석산 등을 그린 작품이 공개된다. 경기창작센터에 입주 중인 김재유 작가는 레지던시를 오가는 길에 마주한 들풀, 토끼, 들새 등 동식물을 그린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도시 개발과 정책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발이 중단되고 다시 생성되는 풍경은 작가에게 인공적이면서도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캔버스 위에 두껍게 바른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도 전에 빠른 붓질로 중첩 시킨 풍경들은 그가 목격한 순간의 감정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수단의 역할을 한다. 

 

김채린, 〈Affordance Sculpture #5 조합하기〉 경량석분점토, 유화물감, NIB 자석, 분체도장된 철 120x120x140cm 2020

 

 

딛고, 오르고, 끌고, 주무르고, 조합하는 등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가 김채린은 작품은 관람객의 신체를 고려한 재료와 물성을 가지고 오브제로 제작되었다. 
관람객은 작품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사물의 질감이나 양감, 물성을 느껴볼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들로 창작자가 겪은 창조의 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몸짓이나 언어를 조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그에게 조각은 일반적인 형태의 재현이 아닌 은유적 온기와 정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유기체처럼 보이거나, 유기체와 같은 성질을 지닌 사물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흔적이 쌓이고 서로가 남긴 흔적을 공유한 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의 작품은 생생한 온기를 전달한다. 

 

 

신이피의 작품 〈죽은 산의 냉철한 새 #2〉, 〈죽은 산의 냉철한 새 #3〉가 설치된 전시 전경

 

 

작가 신이피는 최근 도시 생태를 리서치 하며, 변화하는 생태에 적응하지 못한 새들에 비유하여 이상과 실태를 나타낸 ‘죽은 산의 냉철한 새’ 연작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도시와 생태에 대한 시선을 다룬 트릴로지 시리즈를 선보인다. 자연사 박물관에 진열된 오브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짚어보길 반복하는 작가는 정부가 주도한 계획형 신도시 아파트단지 이름이 자연물을 띈 것을 시작으로 집단의 규칙 속에서 발견되는 개별 구성원들의 관계를 미시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구제역으로 인한 예방적 살처분 명령으로 희생된 돼지들의 매립지를 조사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죽은 산의 냉철한 새 #2〉, 〈죽은 산의 냉철한 새 #3〉을 선보인다. 
영상 후반부에 등장하는 돼지 뼈와 잔해는 실제 살처분 매립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가축이라는 이유로 보존 가치조차 지니지 않는 희생된 돼지들의 액침표본이 영상과 함께 전시장에 설치된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가 이재욱의 사진들

 

 

사진으로 주변을 기록하며 그것에 얽혀 있는 사회 구조를 응시해 온 작가 이재욱은 선감도를 소재로 삼았다. 그는 어떠한 장소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특이점과 동시대 사회문화적 현상에 주목하며 그것이 발현되는 일상적인 현장을 포착해 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소년 수용소였던 ‘선감학원’ 소년들의 노역 희생을 중심으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다양한 매체로 선보이는 작가 현지윤의 〈신중년도감〉

 

 

평균 수명과 기대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고령화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반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비책 마련은 사실 미흡한 상황이다. 작가 현지윤은 중·노년층의 삶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작품으로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중년(5060)’ 세대의 사적인 이야기를 수집해 영상, 회화, 사진, 아트북 등으로 완성해 전시한다. 

 

작가는 며느리, 자영업자, 정년퇴직자이자 평범한 가장, 시니어 전문직 종사자 등을 인터뷰해 영상으로 담아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경험들을 담담하게 말하는 중년들의 이야기를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세대 간의 소통을 도우며 현시대의 단면을 고찰한다.

 

‘생생화화 生生化化 2020: 이연연상 Bisociation’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번 전시의 주제가 ‘이연연상’인 만큼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 지어 생각하게끔 만든다. 전시는 2021년 2월 14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3천 원이다.

 

글_ 한혜정 객원기자(art06222@naver.com)
사진제공_ 화이트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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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정 객원기자
경계를 허무는 생활속 ART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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