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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100년 전과 현재의 평행이론, ‘황금광시대’전

2020-10-21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전염력이 높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스페인독감이다. 바이러스라는 존재 자체가 생소했던 그 당시, 식민지 상태였던 조선에도 스페인독감으로 인한 대규모 사망 사태가 일어났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1920년에 접어들면서 사그라들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과 함께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는 금광 열풍이 불어왔다. 사람들은 그때를 ‘황금광시대’라 불렀으나 당시 언론은 금에 집착하는 세태를 전하면서 자조 섞인 풍자를 기록했다. 

 

‘1920 기억 극장 황금광시대’ 전시 전경

 

 

100년 전 도시 경성을 배경으로 동시대 예술가들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1920 기억 극장 황금광시대’전은 1920년도의 상황과 비슷하게 교차하는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주목하고 착안해 지어진 전시 명이다. 

 

프로젝트형 전시 ‘황금광시대’는 1920~30년대 발행한 민간 미디어 ‘신문’과 ‘잡지’의 기록을 재해석한다. 100년 전에 발행된 인쇄미디어의 데이터베이스를 근간으로, 잊히거나 삭제된 당대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제3전시장에 설치된 ‘신여성 편집실’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3개의 전시관에서 영상, 설치, 공연,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동시대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5개의 신(Scene)으로 구성된다. 참여작가로는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뮌(MIOON), 안무가 이양희, VR 영상 애니메이션 작가 권하윤 등이다. 작가들은 전시를 위해 1년 이상 리서치를 통해 작품을 구상했으며 이를 토대로 완성된 신작을 선보인다. 소설가 조선희의 〈세 여자〉(2017)를 전시로 구현한 자리도 마련되었으며, 192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관점에서 혁명의 서사를 재구성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뮌(MIOON), 〈픽션 픽션 논픽션 (fiction fiction Nonfiction)〉

 

 

이번 전시 첫 번째 신(Scene)의 주제는 ‘유일한 휴양처, 안락의 호-옴’이며, 제1전시실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MIOON)의 신작 〈픽션 픽션 논픽션 (fiction fiction Nonfiction)〉이 전시된다. LED 프레임들이 설치된 어두운 전시장 한편에 갖춰진 무선 헤드폰을 착용한 순간부터 시공간을 초월하는 정체가 모호한 가상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작가는 당시 인기 있었던 문화주택과 신여성으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윤성덕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했다.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한 1920년대 건축 양식으로 실존했던 문화주택의 뼈대를 그대로 전시 공간 안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얇은 LED 프레임으로 구조화해 문화주택에 거주했던 피아니스트 윤성덕의 1933년 잡지 〈신여성〉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입체 음향(Binaural Sound)의 이야기 전개로 들려준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채동선의 ‘현악 합주를 위한 협주곡’이다. 수직과 수평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함축적 공간 안에서 소리에 따라 반응하는 빛을 바라보며 관람객은 건축이 어떻게 청각적으로 구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작품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양희, 〈연습 NO.4〉

 

 

두 번째 신은 ‘뉴-시어터’이며 안무가 이양희의 작품이 전시된다.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작품 〈연습 NO.4〉는 1990년 작가가 완성한 원형(〈맥〉, 1989 안무: 정혜진)이다. 작품〈맥〉은 한국의 근대화 기점에서 서구식 극장을 위한 특정한 형식의 춤으로 신무용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연습 NO.4〉는 선형적 시간을 기준으로 수행을 촬영한 후, 편집을 통해 구성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완성했다. 이 과정 안에서 춤 선과 동작이 교차하면서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부분을 그대로 담아내 영상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그대로 노출 시킨다. 이로써 영상 편집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오로지 신체가 유일하게 완성할 수 있는 선택과 교정을 능동적으로 찾아내어 수행하게끔 만든다.

 

가상의 카바레 ‘클럽 그로칼랭’의 전경

 

 

안무가 이양희는 이번 전시에서 100년 전 살롱(salon)을 재현한 가상의 카바레 ‘클럽 그로칼랭’을 무대로 건축가 표창연, 시노그라퍼 여신동과 협업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같은 공간인 제2전시실에는 김환기, 천경자, 장욱진, 박서보 등 한국 근현대 대표작가 작품을 포함한 50여 점의 일민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이 함께 전시된다. 이외에도 클럽 그로칼랭에서는 모임별, 이윤정, 김신록 등의 초청 공연을 비롯해 워크숍, 파티, 토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예정이다.

 

제3전시장에 설치된 ‘신여성 편집실’ 전시 전경

 

 

제3전시장은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2017)를 전시로 구현한 세 번째 신으로 ‘신여성 편집실’이 마련되어 있다. 소설 〈세 여자〉는 1920년대로 추정되는 식민지 조선, 청계천 개울물에서 단발을 한 세 여자가 물놀이하는 사진으로 시작되었다. 당대의 신여성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의 존재감을 토대로 재구성된 실험적인 작품이다.

 

제3전시장에 설치된 ‘신여성 편집실’ 전시 전경

 

 

전시실에는 소설의 등장인물 중 허정숙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1922년 창간된 잡지 〈신여성〉의 편집실을 재현한다. ‘세 여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1920년대 소품으로 연출한 공간에서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100년 전 남겨진 기록의 파편을 관람객 스스로 재구성하게끔 만든다. 

 

권하윤, 〈구보, 경성 방랑〉 전시 전경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가 권하윤의 〈구보, 경성 방랑〉

 

 

일민 김상만 선생(1910~1994)의 집무실을 보존한 일민기념실과 제3전시실에 마련된 네 번째 신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권하윤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가는 가상 현실(VR)과 신문 아카이브를 결합한 몰입형 설치 작품 〈구보, 경성 방랑〉을 선보이는데,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구보 씨’의 음성과 1920년대 당시 신문에 자주 등장했던 만문 만화의 캐리커처를 따라 진행된다. 관람객은 가상공간을 통해 당시 근대 도시를 거닐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 전시 전경

 

 

마지막 3전시실에는 5번째 신이 마련되어 있다. 고미술품들이 회전목마, 회전 그네, 회전 관람차, 롤러코스터 등의 설치물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에는 ‘세상은 요지경’,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유쾌한 시골 영감’ 등 1930년 일제강점기에 발흥했던 대중가요 만요(漫謠)가 울려 퍼진다.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은 건축가 표창연과 디제이 하성채와의 협업을 통해 구성된다. 일민미술관 수장고에 보관하던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이 2020년에 소풍을 나와 관람객과 만나는 놀이동산이라는 콘셉트로 연출된다. 이처럼 100년 전의 경성의 모습을 작가들의 시선과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황금광시대’전은 12월 27일까지 열린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료는 성인 7,000원이다. 

 

글_ 한혜정 객원기자(art06222@naver.com)
사진제공_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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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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