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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디자인] 디자인으로 발산된 동물 영혼

2020-09-29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와 익살, 장난,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 영상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요즘 현대인들의 동물에 대한 시각과 대우도 과거에 비해 참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개는 집 지키기를 하고 도살되면 유용한 음식재료로, 고양이는 야밤에 오가는 도둑고양이와 다름없는 반야생 가축으로써 집 바깥에 두고 키웠다. 

 

서구로부터 애완동물 키우기 문화가 도입되고 1인 가구의 증가세로 외로움을 달래줄 반려동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개, 고양이, 심지어는 인간의 손길에 길들여진 작고 귀여운 야생동물이 인간 사회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해 들어와 또 하나의 가족구성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자 흐렌 비주얼(Iza Hren Visuelle), 스위스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회 ‘동물적 에너지’ 포스터,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2019, ⓒ ZHdK  

 

 

구글(유튜브 모회사)이 2017년 실시한 조사도 그 같은 트렌드를 입증했다. 이미 전 세계인 10명중 8명은 TV보다 유튜브 시청을 선호할 만큼 유튜브(YouTube)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TV를 압도했다. 먹방, 연예인 가십, 상품 리뷰, 튜토리얼 장르 영상과 나란히 요즘 가장 많은 유튜브 애청자 수를 확보하고 있는 장르는 바로 반려동물 영상이다. 최근 모바일용 게임으로 출시된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포켓 캠프는 주인공 게이머를 제외한 모든 출연 캐릭터가 동물이다. <동물의 숲>의 동물 캐릭터들은 지능과 감정을 지닌 사람처럼 의인화(anthropomorphic) 되어 주인공 게이머와 교류관계를 맺고 함께 생활한다.

 

인류는 고래로부터 동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활동 영역과 임무를 주어 길들이고 사육하며 인간과 동물 사이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해왔다. 요한 찬(Johann Zahn),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Specula physico-mathematico-historica notabilium ac mirabilium sive mundi mirabilis)>, 뉘렌베르크, 1696년. 개인 소장. Photo: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21세기판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 관계. 올 초 닌텐도가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한 <동물의 숲> 모바일 비디오 게임 장면 중에서. Courtesy: Nintendo 

 

 

안타깝게도 아름다움(beauty)은 잔인함을 동반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동물의 숲> 마을을 지나치는 동물들은 인간들이 하듯 동종의 다른 동물들을 요리해 음식으로 취하기도 하고, 동물 가죽을 옷이나 실내장식품으로 쓰기도 하면서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 보다 더 평등한’ 게임 속 동물계로 인간 게이머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인간이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된 동물계에서 동물계를 지배하고 동물을 희생하고 취해오던 인간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영역은 음식과 패션이다. 오랜 과거로부터 인간은 동물을 길들여 사육하여 음식의 재료와 생활용품의 원료로 사용할 줄 알면서 인류는 종족 번식과 기술의 진보를 거듭해왔다. 

 

그래픽 디자이너 카츠마사 나가이의 작품은 깨지기 쉬운 자연의 연약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주제로 한다.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Poster Collection © Kazumasa Nagai and DNP Foundation for Cultural Promotion 

 


그 같은 시선 변화는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채식주의와 비거니즘 운동은 좋은 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이 동물에서 유래된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다양한 문화권의 식사 규율과 음식 섭취의 윤리적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예컨대, 비거니즘(veganism)은 인간에 의한 동물 착취에 대항 저항으로 식습관에서 동물성 식재료를 피하는 것을 넘어서서 가죽, 양모, 깃털 등으로 만들어진 의복과 제품까지 금한다. 해마다 급증하는 지구상 총인구수에 반비례해 매년 약 9천 종의 생물체들이 멸종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우려 속에서 현 인류는 지금이라도 21세기판 노아의 방주 속에 남은 동물들을 보호해야 할 것인가?

 

획스터(Höchster) 도자기 공장 제작 <도자 접시에 놓인 멧돼지 머리 테린> 디자인: Johann Gottfried Becker, 1748/53년경, Museum für Kunst und Gewerbe Hamburg. Photo: Roman Raacke

 

무명 디자이너의 금속제 달걀 포장 카톤, 1930년대.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Design Collection. Photo: U. Romito & I. S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20세기 후반기 경제성장과 물적 풍요와 함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육식 또는 식음료품 포장 디자인과 광고 디자인으로 동물성 가공식품 소비가 널리 보편화되는 데에 기여했다. 깨지기 쉬운 달걀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고안된 포장 식기, 질긴 고기를 연하게 저며주는 연육 망치 등 요리를 위한 준비를 돕는 디자인 용품에서 도살한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가공한 훈제(燻製) 세르벨라트 소시지(cervelat)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우리의 음식 문화 속 필수 요소이며, 20세기 이후로 육식과 동물성 식생활이 건강에 좋다는 홍보를 통해 단백질 위주의 현대적 식생활이 자리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버터와 함께 건강하고 건전하게(Healthy and good with butter)’라는 슬로건의 1951년대 스위스의 버터 섭취하기 장려 캠페인 포스터. 디자인: Donald Brun.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Poster Collection ⓒ Roland Kupper

 

에텔리에 아이덴벤츠(Atelier Eidenbenz) 디자인 에이전시가 디자인한 벨 모르타델라 햄 광고 포스터, 1950년,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Poster Collection ⓒ Matthias Eidenbenz  

 


그런가하면 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물로부터 얻은 부산물을 늘 몸 위에 입고 살며 꾸민다. 심지어 주류 패션계가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고급 모피 외투의 소비를 반대하는 반 모피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밍크, 여우, 토끼 같은 야생 동물의 털을 이용한 모피 의류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발렌시아가나 디오르 등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진귀하고 아름다운 이 고급 원단과 재료를 이용한 하이패션을 창조하는 것으로써 자연 천혜의 아름다움과 인공적 공예를 결합시킨 희귀하고 독창적인 명품을 탄생시킨다. 그러하다 보니 여전히 캐시미어, 실크, 가죽, 깃털 등을 사용해 생산한 고급 옷과 신발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는 높고, 동물성 소재를 대체할 만한 비동물성 원료의 지속가능한 대체 소재는 실험·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발렌시아가 칵테일 드레스, 1967년.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Decorative Arts Collection. Photo: U. Romito & I. S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메종 오귀스트 보나즈(Maison Auguste Bonaz) 디자인의 곤충 모양 브로치, 1930년경.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Decorative Arts Collection. Photo: U. Romito & I. Suta

 


인간에게는 아름다운 대상을 발견하면 보고 또 보며 흠모의 대상을 감상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특히 귀하고 진귀한 동물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고 가정의 실내 공간을 꾸며주는 순수 장식용 모티프로 즐겨 사용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중 동물 문양은 18세기 도자기 예술과 장신구 공예에서 널리 채용됐던 모티프였는데, 이는 동물이 본유적으로 지닌 우아함과 힘을 동경하고 그로부터 느껴지는 신비한 야수적 영혼(animal spirit)에서 에너지를 받고 영감을 얻고 싶어 했던 인간 본능의 발현이었다.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ExxonMobil)의 에쏘(Esso) 자동차 윤활유 광고 포스터. 디자이너: Hugo Laubi, 1948년.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Poster Collection ⓒ Bettina Laubi

 

고양이를 모델로 한 츠비키(Zwicky + Co.) 사의 실크실 광고. 디자이너: Donald Brun 1946년.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Poster Collection ⓒ Roland Kupper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은 여러 동물이 지닌 독특한 외적 아름다움과 개성적 성격을 부각시키거나 이상화시켜 묘사했다. 예컨대 유럽 문화권에서 개는 본래 사냥 도우미로서의 역할에서 진화해 충성과 유희성이라는 고결한 가치를 지닌 인간의 베스트 프렌드로서 동물계 위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복고양이 마네키네코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메신저라 여겼으며, 유럽인들은 말을 폭발적 힘과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로, 딱정벌레 브로치를 용기와 행복을 주는 마법의 수호물로 믿었다.

 

반려동물의 시대인 지금 동물은 디자인을 소비하는 주체이자 동시에 디자인 감상 대상이 됐다. 스위스의 패션 디자이너 율리안 치걸리(Julian Zigerli가 디자인한 펫 패션 컬렉션(JULIAN ZIGERLI: Foulard), Camera Roll, MONTREUX / 15 7 '16 / 16:40, 2011년.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Decorative Arts Collection. Photo: U. Romito & I. Suta,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ZHdK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시대, 동물들은 점점 인간의 역할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쥐를 잡는 쓸모 있는 동물로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고양이는 오늘날 차밍한 자태와 짖꾿은 애교로 인간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제품 광고용 홍보대사로 활약한다. 20세기 초 인간 대중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출발한 근대 디자인은 이제 애완동물을 위한 예쁘고 기능적인 펫 디자인으로 거듭나며 동물에게 봉사하기도 한다. 인간 사회의 진화와 더불어 변천하는 동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디자인으로 살펴보는 전시 ‘동물적 에너지(Énergie animale)’는 스위스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에서 오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이미지 자료 제공_ 스위스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Museum für Gestaltung Zurich), (*동물의 숲 이미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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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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